프롤로그
이젠 넌 끝이야 -
인간은 떨어지기 위해 위로 오르고,
위로 오르기 위해 떨어진다. |보르헤르트|
“그래, 오늘은 분명 좋은 소식을 가지고 왔겠지?”
온몸을 서늘하게 만드는 보스의 목소리가 그 앞에 죽 늘어선 사내들에게 채찍처럼 날카롭게 내리꽂혔다. 방 안 공기도 보스의 목소리에서 흘러나온 살벌함으로 촤악 가라앉아 어둡고 무거웠다.
“네, 틀림없이 만족하실 겁니다.”
죽 늘어선 사내들 중 한 명이 조금 앞으로 나서면서 안주머니에서 작은 봉투 하나를 꺼내 그의 보스에게 천천히 내밀었다.
이번에는 틀림없어.
봉투를 건네준 얼굴이 험상궂게 생긴 사내는 속으로 만족스러운 미소를 애써 감추었다. 하긴 죽 늘어선 사내들 모두 한 덩치 하는데다가 얼굴 또한 험상궂어 밤거리에서건 어디에서건 비록 낮이더라도 절대로 만나고 싶지 않은 얼굴들이었다.
일명 ‘봉’클럽 파. 물론 이 클럽 밖에서는 화려한 네온사인으로 BONG클럽이라고 번쩍이고 있지만 어쨌든 그대로 읽으면 ‘봉’ 아닌가? 봉이든 뽕이든 아무튼 며칠 전, 자신들에게서 만족스러운 대답을 듣지 못하자 보스는 말 그대로 개박살 내듯 한바탕 전쟁을 치렀다.
이런 쓰레기 같은 것만 주워오지 말고 그놈도 사내놈이니까 그놈에게 붙어먹는 년이 있을 거 아니냐, 자고로 남자에게는 여자가 최대의 약점이니 지금 어느 년하고 제일 오래 붙어먹고 있는지 그런 걸 알아오라고 자신들을 짤짤 흔들어대는 보스의 목소리에 자존심을 있는 대로 벅벅 긁힌 다음 밤낮으로 쫓아다닌 결과 드디어 까다로운 보스가 좋아할 만한 소식을 들고 왔다.
「이 짓도 더러워 못해 먹겠네.」
그날 사내들 입에서 나온 똑같은 말은 바로 이것이었다. 정말 못해 먹겠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 아닌가. 이게 그들의 밥줄인 걸. 이 덩치, 이 얼굴로 이 일 아니면 어디 가서 뭘 한단 말인가. 그러니 아무리 더러워도 그들의 보스에게 충성할 수밖에.
그들의 보스, 최 사장은 방금 한 사내에게서 건네받은 봉투를 천천히 열었다. 그 속에는 사진이 몇 장 들어 있었고, 그 사진에는 잘생긴 남자와 누가 보아도 미끈한 여자가 다정하게 포옹하는 장면, 남자의 부축을 받으며 여자가 차에서 내리는 장면, 거의 남자에게 여자가 안기다시피 하여 호텔로 들어가는 장면들이 찍혀 있었다.
“그 여자의 이름은 오세라. 지금 그의 클럽에서 춤을 추고 있습니다.”
최 사장은 자신의 부하의 말을 흘려들으며 오로지 그 사진에 박힌 남자만을 뚫어지게 야리듯이 노려보았다.
재수 없는 놈. 뭐가 이렇게 반반하게 생긴 거야? 여자들까지 이렇게 줄줄이 따르고. 이놈은 힘이 없어도, 아니, 무일푼이라도 여자들 쪽에서 몸이 달아 목을 맬 것이 틀림없어. 그래서 더 재수 없는 놈.
최 사장은 그가 가지고 있는 권력이 없다면 여자들은커녕 할머니조차도 쳐다보지 않을 얼굴을 가지고 있다는 걸 그 자신도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같은 남자로서 그게 더 울화통이 터졌다. 그놈 옆에 있는 이 여자도 최 사장이 한입에 삼켜버리고 싶을 정도로 미끈미끈했고, 저절로 입에 군침이 돌 정도였다. 입에 하나 가득 고인 군침을 어렵게 꿀꺽 삼키고 있는 최 사장의 얼굴은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지고 있었다. 예전, 같이 일할 때부터 ‘눈엣가시’더니 지금은 아주 이가 북북 갈리는 놈이 바로 이놈이다.
여자도 끝내주네.
최 사장은 다시 죽이고 싶은 눈빛으로 사진 속, 유일하게 자신 위에 서 있는 그 재수 없는 놈을 노려보았다.
“그래서?”
최 사장은 이런 흔해 빠진 사진 쪼가리보다 뭔가 더 확실한 정보가 듣고 싶었다. 자신이 만족할 만한 결정적인 정보 같은 것 말이다.
“벌써 강민혁과 붙어 지낸 지 석 달이나 됩니다. 이건 아주 보기 드문 일 아닙니까?”
그렇게 말하고 있는 부하의 얼굴이 희미하게 빛이 나기 시작했다. 그만큼 이번 정보는 수고한 보람이 있을 정도로 자신이 있었다.
“석 달이라…….”
최 사장은 부하의 말에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방금 들은 그 정보를 곱씹어 보고 있는 중이었다.
그랬단 말이지? 그놈도 별수 없군. 옷 갈아입듯이 갈아 치우던 게 여자더니. 석 달이라……. 으흐흐흐, 빙고. 드디어 잡았어. 으하하하. 그놈의 약점을 드디어 찾아냈어. 쥐새끼처럼 잘도 빠져나간다 했더니. 이젠 넌 끝이야. 으흐흐흐.
최 사장은 얇은 입술만 실룩거리며 간신히 만족스러운 웃음을 참아내고는 두툼한 봉투 하나를 그들의 발치에다 툭 던져주었다. 마치 개에게 먹이를 던져주듯이 그렇게 툭. 밥값을 해야 먹이도 얻어먹을 수 있다는 암시를 부하들에게 풀풀 날리며 그는 아주 선심을 베풀듯이 그렇게 던져주었다.
이런 행동은 그의 버릇 중 하나였다. 남자들에게 돈을 줄 때는 일부러 그들의 발밑에 던져놓고 그것을 주우려고 자신 앞에서 몸을 숙이는 남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은근히 희열과 우월감을 느끼며 좋아했다. 자신이 이들보다 우위에 있다는 것을 이것만큼 확실히 느낄 수 있는 일도 없었다.
밑의 놈들이 굽실거리듯이 머리를 숙여 자신이 적선이라도 하듯 던져준 그 돈을 집어 드는 동작은 매번 최 사장으로 하여금 온몸에 엔도르핀이 도는 듯 마구 솟구치는 자신 안의 힘을 만끽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여자들에게는 그들의 알몸 위로 돈을 뿌리고는 그 돈을 한 장, 한 장 새빨간 손톱을 한 가느다란 손으로 집어 드는 모습을 보면 또 한 번의 엑스터시를 맛볼 수 있어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가 늘 하는 버릇 중의 하나가 바로 이것이었다.
“그 다음은 말 안 해도 다 알겠지? 빨리 끌고 와.”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재빨리 밖으로 사라지는 사내들을 지켜보는 최 사장은 실로 오래간만에 흡족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으흐흐흐, 드디어 때가 왔어. 그놈이 내 앞에서 무릎 꿇게 될 날이. 얼마나 기다렸던가. 으흐흐흐. 양념으로 미끈미끈한 그 여자도 보고. 이런 기막힌 행운이 다 있다니. 보기만큼 정말 그런지 어디 한번 맛이나 볼까? 석 달이라……. 으흐흐흐, 석 달이면 남들 10년하고 맞먹을 거다, 그놈에게는. 지 여자에게 내가 손댄 줄 알면 미치고 환장해서 돌아버리겠지? 내 말을 진작 안 들은 대가다, 이놈아. 이 재수 없는, 돌덩이같이 차가운 강민혁. 네 차가운 표정도 이젠 끝이야, 끝. 네가 무너지는 모습을 꼭 내 눈으로 보고 말 테니까. 으히히히.
최 사장은 자신의 얇은 입술 사이로 자꾸 스멀스멀 새어 나오는 미소를 더 이상 주체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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