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이 벌어지고 있을 때의 축구경기장과 아무도 없는 축구경기장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각인된다. 똑같은 사람도 그가 우리를 좋아하는지 아니면 피하고 싶어 하는지에 따라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다가온다. 피곤하거나 몸이 아플 때는 자신에게 더 많이 집중하기 때문에 주변을 평소보다 조금밖에 지각하지 못한다. 무엇인가를 초조하게 기다리는 사람에게는 시간이 더디게 흐른다. 하지만 행복한 시간은 대개 너무 빨리 지나간다. 시간의 흐름마저 상이하게 지각되는 것이다. 우리는 옷차림이 단정하거나 인상이 좋은 사람을 만나면 신뢰감을 느낀다. 그래서 간혹 착각에 빠지거나 기만당하기도 한다. --- 1장 "지각은 종종 우리를 기만한다"에서
청소년기에는 성격과 역량이 아직 충분히 발달하지 않은 채로 다양한 요구와 직면한다. 이 시기의 아이들에게는 가족이나 다른 사람들의 보호와 지원이 절실히 필요하다. 정서적으로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이를 극복할 역량이나 외부의 지원이 부족할 때 아이는 ‘발달장애’의 위험에 노출된다. 청소년기의 발달장애는 대개 스포츠나 교통수단을 이용한 위험한 행동, 알코올과 약물 섭취, 성적 탈선 등의 형태로 나타난다. --- 2장 "청소년기:양가감정과 모순"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노년에도 가능한 한 오래도록 자립적인 삶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가능성을 최대한 촉진시키며 모자란 점을 보완하고, 이 시기에 당면하는 문제들을 효과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사교적 수완이나 의사소통 능력에 따라 사회적 접촉은 손쉬운 일이 될 수도, 힘겨운 일이 될 수도 있다. 의사소통 능력은 다시금 주의 깊게 보고 듣는 능력에 영향을 받는다. 사회적 통합은 외로움과 소외를 막아준다. 반면에 생활의 위기와 스트레스, 노인성 우울증 등은 정신건강을 해친다. 모든 신체기관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정신건강과 육체적 저항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 2장 "노년기:삶의 질을 위하여"에서
한부모 가정은 대개 ‘위기상황’을 겪고 난 뒤에 생긴다는 점에서 핵가족과 구별된다. 홀로 자녀를 길러야하는 사람에게는 파트너가, 자식에게는 한쪽 부모가 죽음이나 이별을 통해서 더 이상 함께 지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런 사건은 모든 구성원에게 평생의 흔적을 남긴다. …한부모 가정 역시 재정상태, 교육방식, 가정의 분위기, 외부와의 교류, 생활환경 등 다양한 영역에서 차이가 많이 난다. 가령 새 파트너와 함께 생활하는 경우 한부모 가정은 이제 계부모 가정으로 바뀐다. 한부모 가정에서 자라는 아이들이라고 해서 반드시 모종의 심리적 상처를 입었을 거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헤어진 친부모 사이에 갈등이 심하거나 이혼한 뒤에도 계속 남아있을 때 발생한다. --- 3장 "한부모 가정은 위기상황의 산물"에서
소유욕에 사로잡힌 사랑(‘마니아’)과 애정관계에서의 질투심 사이에도 연관성이 있다. ‘애착유형’도 질투의 강도에 영향을 미친다. 불안하고 상반된 감정의 애착유형을 지닌 사람은 회피적이거나 안정적인 애착유형의 사람보다 더 질투심이 많다. 안정적 애착유형은 질투문제에서 가장 자유롭다. 파트너에게 의존적 감정을 지니거나 다른 사람과 관계를 잘 맺지 못하는 사람도 쉽게 질투심에 사로잡힌다. 질투는 커플관계에 갈등을 불러일으킨다. 자유에 대한 욕구가 있는 반면 다른 한편으로 안정과 확실성에 대한 욕구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질투는 두 사람이 서로 다른 규범을 따를 때 관계를 위협하는 문제로 발전한다. --- 3장 "사랑과 질투는 동전의 양면"에서
“노동의 탈경계화”란 사람이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노동세계에 흡수되어 그 밖의 다른 가능성을 잃거나 전혀 소용이 없게 되는 상황을 뜻한다. 직장인은 회사의 목표와 자신을 최대한 동일시-마치 회사의 공동소유자인 것처럼-해야 하며, 완전히 회사 일에만 몰입해야 한다. 어떤 기업은 기존의 경영형식에서 탈피하여 근로자들에게 명확한 구조적 틀을 제시하지 않는다. 따라서 직원들은 개개인이 하위기업주로 바뀌게 되고, 여가시간에도 계속 전문지식을 쌓아야만 한다. 충분한 준비를 갖추지 못한 채 과다한 ‘자기조직화(self organization)’를 요구받기도 한다. 그 결과 취업노동이 삶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고 사생활 영역은 점점 줄어든다. --- 4장 "공간적 경계가 사라지다"에서
건강과 역량은 그때그때의 육체적ㆍ정신적 상태에 의존한다. 건강하게 살려면 물론 신체기관이 제대로 기능해야 한다. 하지만 이것이 충분조건은 아니다. 자해적 생활태도는 아무리 건강한 육체라도 급속히 허물어뜨린다. 따라서 건강한 식사, 올바른 신체관리, 심신의 컨디션 조절, 스트레스 ?소 등과 관련해서 개별적인 생활영역과 상황에 상응하는 역량이 요구된다. 개별적 생활영역에 대한 역량이 충분하면 안정적이고 폭넓게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물론 외적 생활조건들이 건강에 지나치게 유해하지 않을 경우에 그렇다. 건강을 위해 중요한 능력들을 확보하거나 개선하려는 노력을 ‘건강 동기부여’ 또는 ‘역량 동기부여’라고 부른다. --- 5장 "건강을 이해하는 열쇠, 역동성"에서
정동장애의 주요증상은 ‘기분’과 ‘정서’의 급격한 변화다. 환자는 우울한 기분(우울증)에 빠지거나 아니면 과도하게 고양된 기분(조증)을 보인다. 기분변화는 대부분 행동변화를 동반한다. 재발의 위험도 크다. 발병의 원인은 대개 가정불화나 생활의 위기상황이다. 우울증 환자의 가족에게도 20퍼센트 정도 발병위험이 있다. 그러나 가장 주된 원인은 스트레스에 약한 생심리사회적 발달장애에 있다. 가족과 헤어져 살거나 이혼한 사람처럼 신뢰할만한 보호자가 곁에 없는 경우에도 발병위험이 높다. 이를 예방하려면 다른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쌓고 폭넓은 사회네트워크에 편입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 5장 "우울증과 기타 정동장애"에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호감을 얻고 싶다면 먼저 그들의 관심사와 욕구(‘동기부여’)가 무엇인지를 살펴야 한다. 그러면 대화를 통해 각기 다르게 설정된 목표를 조정하기가 훨씬 수월해진다. 갈등이 발생했을 때 합일점을 찾지 못하는 것은 대개 이런 해법을 외면한 경우다. 간혹 문제가 계속 미해결로 남을 가능성도 있다. 상황에 관여한 사람들과 일일이 대화를 나눌 수 없는 경우에도 그들의 목표설정을 재구성하고 그에 맞는 ‘작업가설’을 개발할 수 있다. 기대들은 종종 모순적이지만 이를 쉽게 포기하지 않고 정확히 규명해야 한다. --- 6장 "상대방의 관심사와 욕구 파악하기"에서
심리요법은 법적으로 치료행위에 속한다. 따라서 관련법규에 의거해 면허를 받은 심리학자나 의사가 시행하는 것이 원칙이다. 강력한 작용력과 폭넓은 치료범위, 법적 규정, 학문적 성격 등은 심리요법을 다른 형태의 전문적 혹은 인간적 도움과 구분 짓는다. 그밖에도 심리요법은 국제적 연구수준에 맞추어 학계가 마련한 공식적 진료규정에 따라 치료행위를 실시한다. ‘진료’는 일부 사설 의료기관이나 비교집단에서 행해지듯이 개인적인, 혹은 전승된 경험만으로 함부로 실행해서는 안 된다. 성직자나 사회복지사 등과의 상담 역시 그것이 심리치료 방법을 적용하는 것이라 해도 제대로 된 심리요법이라고 볼 수 없다. 정신과에서 이루어지는 기초적인 상담과 진료도 환자에게 심리요법에 따른 치료의 필요를 일깨워주거나 보조적 진료수단으로서만 활용될 수 있을 뿐이다. 정신과 상담은 결코 전문적 심리요법을 대체할 수 없다.
--- 7장 "건강과 발달을 촉진해주는 심리요법"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