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노라마로 펼쳐지는 산들을 보면 가슴이 벅찼다. 그건 지금 이 순간 목표에 도달했다는 기쁨과는 또 다른 기쁨이었다. 다음이 있다는 기쁨, 다른 산이 있다는 기쁨, 산이 있는 한 언제든 오를 수 있다는 기쁨. 문득 지금 내가 서 있는 이곳이 작은 점처럼 느껴졌다. 이 점을 계속해서 연결하고 싶었다. 더 많은 산에 오르고 싶었다. 더 높은 곳에 서고 싶었다. ---「히말라야, 강해지고 싶어서」중에서
애쓰지 않으면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 삶의 어느 부분과, 일상의 어느 시간과, 인생의 어느 구간을 내려놓지 않고서는 쉽게 이루어질 수 없는 일들이 산에서는 쉬지 않고 일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내 마음이 끌리는 일들은 그런 일들이었다. 그건 세상 속에서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들리지 않는 이야기들이기도 했다. 그들의 정제되지 않은 거친 호흡과 날것의 언어가 사라지지 않기를 바랐다. 오직 산을 향해 열려 있는 그들의 열정과 애정이 계속해서 이 세상에 전해지기를 바랐다. 내가 그 열정과 애정을 전하고 싶었다. ---「성덕의 날들」중에서
인생의 결정적인 사건은 한계를 넘을 때, 한계를 넘고자 무리를 할 때 비로소 이루어지지 않던가. 모두 나만큼, 나보다 힘들 것이다. 해발 4천 미터 가까운 산등성이에서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더욱이 언제 다시 여기에 올 수 있을까. 몽블랑에 온다 한들 정상에 오를 기회는 또 과연 나에게 있을까. 한국에서부터 준비해온 시간은 또 얼마나 길었던가. ---「실패가 더 자연스러운 곳」중에서
나는 산을 가볍고 빠르게 달릴 때 느낄 수 있는 기운을 사랑했다. 오직 나만의 기록을 향해 달리는 데서 느낄 수 있는 환희와 내가 진짜 내 인생의 주인공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 좋았다. 새벽녘의 출발선 앞에서, 카운트다운 속에서, 작은 레이스 배낭을 메고 이마에 헤드램프를 두른 채 가쁜 숨을 몰아쉬며 달리는 길 위에서 느끼는 에너지는 다시 돌아온 일상을 지탱하는 힘이 되었다. ---「내 심장으로, 내 두 다리로」중에서
잘하고 싶었는데,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패잔병처럼 하염없이 걷고 걷고 걷다가 결국 DNF(Do Not Finish). 결승선을 10킬로미터 남기고서. 그만하고 싶었다. 그렇게 달려왔는데 왜 여기까지밖에 못 온 걸까, 이것밖에 안 되는 걸까, 왜 이렇게 힘들지, 힘들게 달려 내가 원하는 건 뭘까, 걷고 싶다, 멈추고 싶다, 이게 다 뭐라고, 힘들다, 너무 힘들다…. ---「내 심장으로, 내 두 다리로」중에서
오직 완주만을 바라며 달린 때가 있었다. 잔뜩 상기된 얼굴로 좋은 기록과 순위를 바라며 달린 때가 있었다. 그러다 이 모든 것이 허무하고 버겁게만 여겨진 때도 있었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결국 달리는 순간만큼은 내 삶에서 포기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된 때가 찾아왔다. ---「내 심장으로, 내 두 다리로」중에서
고요하게 겸허하게 오르는 산이 좋다. 들뜬 나를 차갑게 하는 그 산이 좋다. 하지만 치열하게 맹렬하게 오르는 산도 좋다. 처진 나를 뜨겁게 하는 그 산도 좋다. 내면을 향하는 산도 좋고 바깥과 소통하는 산도 좋다. 두 개의 산을 오고 가며 나는 이제 서서히 나에게 편안한 페이스를 찾아가는 것 같다. ---「산과 함께」중에서
그저 지금 내가 오를 수 있는 작고 낮은 산을 꾸준히 오르고 오르는 것이 바로 산 사람으로 사는 것 아닐까 하고 말이다. 평일 한낮의 작고 낮은 산에서 보내는 지금 이 순간도 제대로 즐기지 못하면서 지금 이곳에 없는 멀고 높은 산만을 바라보는 일은 좀 어리석지 않나. 작고 낮은 산부터 매일매일 오르고 오르다 보면 시간이 흘러 산이 나를 또다시 다른 산으로 연결해주겠지. 다른 세상으로 데려다주겠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뒷산 클라이머」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