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둘러싼 모든 상황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변화하며 흘러가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바꿀 수 없는 것들이 있고 또 한편 나의 선택으로 바꿀 수 있는 지점들이 있지요. 『주역』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변화를 예측할 수 있게 해주고, 어떻게 하면 길한가, 흉한가, 허물이 없게 되는가를 말해 줍니다.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알려 주는 인생의 가이드북이라고 할 수 있지요. 자신이 처한 때[時]를 알고 때에 맞게 적중(適中)하는 삶을 살아가라고 말합니다. 정(貞, 올바름)과 부(孚, 진실함·성실성)를 추구하면서 겸손한 자세로 살라고 말이지요. 어느 시대에 태어나 살아갈 것인지 주어진 조건을 바꿀 수는 없지만 그 안에서 어떤 기준을 가지고 판단할 것인지,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는 각자가 선택할 수 있는 몫으로 남아 있습니다. 내게 주어진 삶을 충실하게 살아가기 위해, 진짜 자신을 위한 선택을 하기 위해서, 우리는 『주역』을 탐구하며 상황과 사람들의 변화를 읽어 내는 판단력을 갈고닦아야 하는 것이지요.
---「책머리에」중에서
어느 정도 기본 초식을 익힌 다음에는 주역점 치는 법을 활용해 보실 수 있습니다. 대나무 산가지를 이용해서 시초점을 치는 법, 시간이 없을 때 동전점을 치고 해석하는 법을 직접 따라해 볼 수 있게 했습니다. 『주역』의 지혜를 체득해서 상황을 꿰뚫어 보는 통찰력을 길렀다면 점칠 필요가 없습니다. 상황에 맞게 생각하고 행동하면 되니까요. 하지만 자기가 처한 상황이 어떤 때[時]인지 알 수 없다면 점을 쳐 볼 수 있습니다. 주역점을 친다고 해서 겪어야 할 일을 겪지 않고 넘어갈 수 있는 방도가 생기는 게 아닙니다. 그저 점사는 ‘당신은 이런 상황에 놓여 있다’라는 걸 알려 줄 뿐입니다. ‘이렇게 하는 게 좋지 않겠는가?’라는 정도의 조언을 얻을 수 있지요. 결국 최종 선택은 각자의 몫입니다. 그 선택이 길·흉이라는 결과로 이어지는 것이고요.
--- p.8
앞에서 『주역』은 점서에서 출발했다고 했어요. 우리는 어떨 때 점을 치게 될까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이것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할 때 점을 치는 거죠. 생각으로 판단해서 그 답을 얻을 수 있을 때는 그냥 결정을 하면 되는데, 그런 판단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점을 치는 겁니다. 특히 국가 대사, 전쟁이라든가 큰일을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판단할 수 없을 때 점을 쳐서 답을 구했었죠. 지금 우리가 공부하는 『주역』은 공자가 살았던 춘추전국시대 이후로 본격적으로 연구되었고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는 건데요. 아주 오랫동안 점을 치고 해석했던 내용들이 쌓이고 정리가 되면서 큰 국가대사뿐만 아니라 개인이 자기 삶에서 부딪치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참조하는 텍스트로 바뀐 것이죠. 이후 다양한 상황에 처하게 될 때 어떻게 하면 좋을지에 대한 판단력, 통찰력을 기르는 도구로 활용되면서 『주역』은 사(士) 계층이 군자답게 살아가기 위해 필수적으로 공부해야 할 텍스트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 pp.19~20
앞에서 경(經)이 성인의 말씀이라면 전(傳)은 후대의 현인(賢人)이 성인의 말씀을 풀어서 전하는 글이라고 했어요. 『주역』의 전인 역전(易傳)은 ‘10익(翼)’이라고 불리는데요. 『주역』의 세계를 훨훨 자유롭게 날아다닐 수 있게 해주는 10개의 날개라고 할 수 있지요. 이걸 모두 공자가 지었다고 하지만 고증을 중시했던 청대의 학자들은 『주역』에 관한 이 초기 주석들이 춘추전국시대에서 전한 시대에 이르는 3, 4백 년에 걸쳐 만들어지고 한무제 때에 이르러 정리되었다고 봐요. 공자의 이름으로 기록을 남겼기 때문에 ‘공자가 지었다’고 한 거라는 얘기죠. 지금 『주역』을 공부하는 우리에게 이 10개의 전(傳)을 공자가 지었는지 아닌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고증학자들의 주장을 인정한다고 해도 10익은 무려 2천 년 이전에 확정된 고전이니까요.
--- p.30
64괘가 원래 점서에서 출발했다고 하지만 그 점은 아무나 쳤던 게 아니고 아무 때나 쳤던 것도 아니에요. 국가 대사를 결정하지 못할 때 점을 치고 거기에서 나온 점사(占辭)를 받아서 군주가 자신의 정책과 처신을 결정했던 거죠. 그러니까 64괘는 64가지 군주의 생존법이라고 할 수 있는 겁니다.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 은퇴자를 찾아가서 조언을 구해야 할지, 재야에서 평민 인재를 발탁해서 써야 할지, 귀족이나 대신에게 의지해야 할지, 목민관을 움직여야 할지, 이런 것을 판단할 수 있다는 거예요. 많은 경험이 축적된 데이터를 64가지로 정리해 놓은 것이지요. 하지만 이건 옛날에 해당하는 이야기고요. 지금은 여러분 모두가 다 ‘군주’인 거죠. 각자 자기 삶의 주인이고 주도자니까요. 물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나 상황 속에서 어떤 경우에는 내가 초효의 자리에 가 있을 수도 있고 이효나 삼효, 사효, 상효의 자리, 어디에든 가 있을 수가 있습니다.
--- pp.48~49
효(爻)는 ‘그었다’는 건데요. 효가 의미하는 게 무엇인지 궁금하시죠? 괘라는 특정 상황과 시간 속에서 사람들은 각각 다른 처지에 있어요. 똑같은 상황과 국면을 맞이했더라도 사람들은 각자 입장과 처지가 다르지요. 그들 각자에게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가 말해 주고 있는 게 효사예요. 그 상황,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은 무엇을 보게 되는가, 어떤 생각을 하게 되는가, 어떤 욕망을 갖게 되는가를 말해 주는 거죠. 그래서 효사에는 그 상황에서 그 지점에 처한 사람이 빠지기 쉬운 함정에 대한 경고가 많이 들어 있어요.
--- p.53
태음, 소양, 소음, 태양이 각각 6, 7, 8, 9라는 숫자가 된 것은 어째서일까요? 숫자에서 음양을 구분할 때 짝수는 음이고 홀수는 양입니다. 그러니까 6부터 9까지 숫자 중에서는 6과 8이 음이고 7과 9가 양인 거죠. 양의 숫자인 7과 9 중에서 숫자가 더 큰 쪽인 9가 태양이 되고, 작은 쪽인 7이 소양이 됩니다. ‘크다’에 해당하는 양은 새로 생긴 것보다 오래된 것이 더 커질 테니까요. 마찬가지로 음의 숫자인 6과 8 중에서는 숫자가 작은 쪽인 6이 태음이 되고, 큰 쪽인 8이 소음입니다. ‘작다’에 해당하는 음은 오래될수록 쪼그라들 테니까요.
--- p.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