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서 부동산은 매우 모순적인 이슈다. 정치를 하는 사람으로서도 부동산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또 복잡하게 얽힌 문제들은 어떻게 풀어야 할지 매우 조심스러운 게 사실이다. 가치 생산의 영역이 극히 적은 한국에서 부동산이 주는 자산과 투자 가치로서의 매력은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나라는 부동산의 경제적 가치가 지나치게 과대평가 될 수밖에 없는 구조인 데다가 공적 영역에서 통제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다. 더군다나 투자와 이익의 관점에만 관심이 지나치게 쏠린 탓에 부동산 문제에서 우리는 ‘거주 공간’으로서의 부동산을 종종 외면하곤 한다. 땀과 눈물이 밴 공간을 그저 자산 가치로만 바라보는 상황에서 전 국민의 ‘주거 복지’는 요원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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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 복지를 실현하는 방법으로 대규모 개발 사업이 진행될 때 이익을 일부 환수하여 기본적인 주거 복지 실현을 위한 재원을 마련하는 정책이 있다. 이때 공존과 상생의 묘리를 찾아야 한다. 국가의 기업 정책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동반 상생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주거 복지에서도 동반 상생의 방안을 찾아야 한다.
도시화나 대규모 산업단지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토지가격의 상승은 불로소득이다. 토지소유주가 자신의 노력으로 가치를 상승시킨 게 아니기 때문이다. 불로소득으로 발생한 이익은 환수하는 게 맞다. 실제로 더불어민주당은 부동산 개발 사업 과정에서 발생하는 지나친 민간 이익을 환수하는 개발이익환수법을 발의한 적이 있다. 「개발이익 환수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 법률안」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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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이익을 환수하는 제도가 마련되면 공공투자와 균형 발전을 위한 재원 확보도 가능해진다. 환수된 이익으로 재원이 마련되기 때문에 사회간접자본(Social Overhead Capital, SOC)이나 국토 균형발전에 투입할 수 있는 공공사업 투자가 가능해 진다. 서울과 수도권 중심의 개발에서 벗어나 소멸 위기에 직 면한 지방을 살리는 실질적인 솔루션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
개발이익환수제도는 이처럼 국가의 불균형을 개선하고 ‘지역의 균형발전’이라는 거시적 경제뿐만 아니라 ‘주거 복지’ 라는 미시적 경제를 보장하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다. 지나치게 부를 독점했던 부동산 투기 세력의 초과 이익은 국민통합을 저해하는 것이기도 해서 이는 우리 사회에 반드시 필요한 제도 이다. 다만 개발이익환수제도는 헌법에서 말하는 ‘공공복리에 적합한 재산권의 행사’여야 한다. 또한 토지를 더 이상 사적 소유와 이익의 대상을 보지 말고 공공재로 인식하여 양극화를 해소하는 데 기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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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저소득층 낙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임대주택 공급이 아닌 바우처를 지급하고 있다. 사실 낙인 문제는 전 세계적인 고민거리다. 우리나라에서도 일반 아파트와 공공임대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이 차별당하는 뉴스가 종종 나올 만큼 심각한 사회적 논란이 되고 있다.
프랑스와 오스트리아 등의 유럽에서는 국민인식의 전환을 가져올 만한 정책을 통해 낙인 문제와 주거 복지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국민인식이 바뀔 수 있도록 대규모 단지를 조성해 저소득층에게 30~50퍼센트에 가까운 공급을 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이 정책으로 차츰 국민인식이 변화하고 있다고 한다. 이게 정부의 역할이다.
싱가포르도 주거 복지와 관련하여 공공 정책으로 내 집 마련의 꿈을 충족시켜 왔다. 싱가포르는 국민의 90퍼센트 이상이 자기 집을 소유하고 있다. 이것이 가능할 수 있었던 주요 요인으로 정부의 강력한 공공 정책을 들 수 있다. 싱가포르는 자치 정부를 수립하자마자 이듬해인 1960년에 주택개발청(HDB)을 설립했다. 초대 총리 리콴유는 땅은 좁지만 누구나 살 집이 필요하다고 선언하며 주택개발청을 통한 주택 공급을 최우선 정책 과제로 추진했다. 현재 싱가포르는 전체 주택의 70퍼센트 이상이 주택개발청이 공급한 주택이다. 이 정책은 지금까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 p.34~35
앞서 말했듯 주거 복지는 삶의 터전을 보장하는 개념이다. 삶의 터전이 안정되어야 정상적인 일상과 경제활동이 가능하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유럽이나 싱가포르와 달리 지금껏 정책의 일관성을 찾아볼 수 없었다.
싱가포르는 장기 집권 체제였으니 예외라 치더라도 유럽은 수시로 정권이 바뀌었는데도 주거 복지와 관련한 방향과 가치를 보수와 진보 정권 모두가 공유해왔다. 반면 우리나라는 ‘정부’는 집값을 내리기 위해 노력하고 ‘국회’는 건설과 부동산 산업을 활성화한다고 노력하는 등 엇박자를 내기 일쑤였다. 또 한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바뀌는 부동산 정책 때문에 오히려 부동산 시장이 불안정해졌다.
특히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바뀌는 부동산 정책은 큰 문제라 할 수 있는데, 여야 모두 부동산 문제를 정권 창출을 위해 서로를 비난하는 정쟁의 도구로 쓰기 때문이다. 정권이 바뀌면 지난 정권의 모든 정책은 폐기되고 새로운 정책이 수립되는, 비판과 경쟁만 남아있는 현 정치 환경은 매우 우려스러운 일이 다. 결국은 정책의 일관성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 p.40~41
역대 정부가 부동산 정책의 혼선으로 빚은 피해는 고스란히 서민, 특히 청년 세대가 감당하고 있다. 부동산 때문에 영끌을 마다하지 않고 갭투자 때문에 전세 사기를 당하는 등 이 나라는 지금 부동산에 지배당하고 있는 형국이다. 부동산을 마련하기 위해 빚을 끌어다 쓰고 끌어다 쓴 빚을 갚기 위해 또 빚을 지는 악순환은 청년 세대를 절망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고 있다. 영끌과 빚투로 늘어난 빚 가운데 2030세대가 약 30퍼센트 정도를 차지한다고 한다. 학자금 대출과 가계대출의 연체율도 급증하고 있다. 소액 대출 연체의 70퍼센트는 2030세대이다.
요즘 청년 세대는 자신의 집을 마련하지 못하는 첫 세대가 될 것이라는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폭등을 거듭하는 부동산 시세를 보며 영끌을 마다하지 않고 집을 마련한 청년들은 고금리에 신음하고 있다. 최근 전세 사기 사태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본 계층도 청년 세대이다. 전세 사기 문 제는 바로 주거 빈곤 계층으로 떨어지는 심각한 문제이다. 그런데 이 문제는 청년 세대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청년 세대가 몇천만 원이나 되는 전세자금을 마련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대부분은 가족의 도움을 받고 일부는 정부의 지원을 받기도 한다. 즉 자기 돈이 아니라 빌린 돈으로 전세에 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전세 사기를 당하면 제2의 피해자가 나올 수밖에 없다. 당사자인 청년 세대뿐만 아니라 가족까지 신용불량자가 될 수도 있다. 전세 사기는 청년 세대를 울리는 것을 넘어 우리 사회 전반에 악영향을 끼친다.
--- p.44~45
청년 주거 문제를 개인의 차원에서 봐서는 안 된다. 이 문제는 취업난, 비정규직의 증가, 폭등한 부동산 등 사회구조의 문제다. 청년들은 사회구조의 문제 때문에 주거 불안에다 삶의 불안까지 느끼며 위태롭게 살아간다. 주거 불안이 결혼과 자녀 출산에도 악영향을 끼쳐 저출산 문제를 더욱 심화시킨다. 즉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청년의 주거 복지는 정책의 우선순위로 삼아야 한다. 하지만 다양한 청년 지원책이 나왔다고 해도 대출 등에 치우친 정책이라면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므로 현실적인 여건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청년의 주거 복지를 비롯한 청년 세대를 위한 실질적인 지원은 법제화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는 아직 이렇다 할 ‘청년법’이 없다. 윤석열 정부가 내놓은 청년기본법 개정안도 ‘모든 정부위원회에 청년위원을 위촉한다’는 게 전부다.
유럽을 비롯한 외국은 다르다. 청년실업에 대응하는 청년보장제도 등 EU 국가에서는 청년정책 관련 입법이 활발하다. 핀란드와 오스트리아, 아일랜드, 네덜란드 등에는 단일법으로 청년법이 있다. 청년의 성장 자립을 지원하고, 고용과 학습, 삶의 질과 협력 등 다양한 지원을 법제화한 것이다. 단일법령으로 제정했기 때문에 이 법을 근거로 부처 간 협력과 지원 정책 추진 체계의 기반도 마련했다. 독일과 프랑스, 스페인 등 단일법이 없는 나라는 보편적인 사회정책이 발달했다. 즉 별도의 법은 없지만 보편적 사회정책에 따른 다양한 청년지원정책을 펼치고 있다.
--- p.49~50
건설된 지 10년이 지난 지금, 세종시는 행정중심복합 기능을 갖춘 도시로 안정화되어 가고 있다. 행정에 이어 입법, 정치까지 대한민국의 중심이 되기 위해 법과 제도적 뒷받침이 구축 되었고, 대한민국 미래도시이자 수도를 표방하는 만큼 스마트 시티 국가시범도시로 지정되어 최첨단 기술 기반의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또한 모빌리티, 교육, 에너지, 문화, 헬스케어 등 국가적 미래 과제를 선도할 예정이다.
미래 수도로서 완성되는 세종시는 새로운 역사와 문화가 결합하여 누구나 살고 싶어 하는 도시이자 세계적인 도시가 될 것이다. 그러나 단지 수도의 기능만 갖춘다고 독립적인 경제 권과 생활권을 갖출 수는 없다. 문화 산업과 관광 산업, 그리고 소프트웨어 산업 등 미래도시의 면모를 갖춘 세종시가 되어야 한다.
문화와 관광 측면에서 봤을 때 아직도 많은 사람이 세종시 만의 매력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고 한다. 한 국가의 수도로서 뿐만 아니란 문화와 관광이 어우러져야 비로소 세종시는 국제적인 도시로 발돋움할 수 있다. 미국 워싱턴D.C의 내셔널 몰처럼 한 국가의 역사와 전통을 품고 문화적 인프라까지 갖췄을 때 관련 산업의 발전까지 기대할 수 있다.
--- p.72~73
그때의 촛불집회를 보면서 86세대들은 적잖이 당황했다고 한다. 당시 언론이나 후일담을 보면 패러다임이 바뀌었다는 평가가 많았다. 단지 집회의 양상만 달라진 것이 아니었다. 집회를 주도하는 주체가 바뀌었고 집회 문화가 달라졌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너무나 컸다. 20세기 정치의 종식과 새로운 정치의 등장을 알리는 듯했다.
86세대의 정치는 절대 악과 절대 선의 이분법적 진영 논리에 갇혀 있다. 사안마다 다를 수 있는 판단을 하나의 잣대로 구분하려 한다. 사회적 약자의 논리도 지배층과 피지배층이라는 구분으로 바라보려고만 한다. 과거 민주화 시대에는 절대 악과 절대 선의 대립으로 정치를 하는 것이 가능했지만 지금은 다양성의 시대다. 흑백논리로 모든 것을 바라볼 수는 없다. 지난 대선을 기점으로 20대 남성들이 민주당에 등을 돌린 진정한 까닭을 알아야 한다. 그들이 보수화됐다고 한탄만 해서는 안 된다.
86세대 이후의 새로운 정치는 아직 자리 잡지 못했다. 혼란과 상실의 97세대, 청년 정치를 표방하지만 기득권과 대척하지만은 않는 08세대. 그러나 새로운 정치의 물결은 08세대의 시대정신과 맞닿아 있다. 다양성의 정치를 해야 하는 시대에 걸맞은 라이프스타일을 지녔고 이념적인 부분에서 자유로운 세대이기 때문이다.
08세대는 정보통신이 본격적으로 발달한 시대에서 나고 자랐다. 어릴 때부터 경계를 넘나드는 인터넷에서 세상을 배웠고 보수와 진보라는 진영의 논리보다 사안마다 가치를 좇아 왔다. 이들은 기후 위기에 대해 가장 진보적인 목소리를 내면서도 젠더 문제에는 보수적이거나 성 편향적인 입장을 드러내 기도 한다.
정보통신의 발달과 함께 자랐다는 것은 여러모로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먼저 투명하고 공정한 것을 추구한다. 또한 사안마다 합리적이고 공정한 기준을 내세우려 한다. 과거에는 정보와 권력이 독점되어 있었으나 정보통신의 발달로 정보와 지식이 차고 넘쳤고, 정보의 투명성은 곧 밀실정치의 종식을 가 져왔다.
--- p.88~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