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스민 옆에는 돌이,
[아르세니 타르콥스키]
돌 아래에는 보물이,
오솔길엔 아버지가.
밝고, 밝은 오늘,
은빛 포플러나무가 피어나고,
센티폴리아 장미도,
그 뒤에는 덩굴장미가 있네.
그리고 부드러운 희부연 잔디가.
나 다시는 그때처럼
행복한 적 없었네.
나 다시는 그때처럼
행복한 적 없었네.
돌아갈 수 없어라.
말할 수 없네.
은총으로 충만하였던
그 천상의 정원을.
--- p.9~10
어린 시절의 버릇은
예술의 성격을 결정한다.
내게는 아주 기본적인 사실.
아버지는 시인이었다.
그리고 아버지의 시는
내게 큰 영향을 끼쳤다.
시, 러시아 문학, 미술에 대한
아버지의 관점들 역시.
하지만 그것은 일종의
무의식적 의존과 연결이었는데,
나는 그 천성을 분석하거나
평가할 수 없다.
--- p.10~11
바람을 가파르게 가르는
날개처럼,
나를 믿지 말아라.
가엾은 아이야, 나는 거짓말한다.
나는 저주받은 자처럼
달아나려 하나,
이 기이함으로부터
달아날 수 없네.
너는 날개를 움직이지 못하네.
너의 작은 손가락으로
눈꺼풀을 만질 수도 없네.
눈을 떠 바라볼 수도 없네.
--- p.20~21
진정한 시인은,
그가 진실로 시인이라면,
신도가 될 수 없으리라.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여러 해 동안 경험한
위기를 설명해주는지도 모른다.
--- p.42
우리는 소설 《솔라리스》에 바탕을 두었으나
솔라리스로의 여행을 제외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그 편이 더 흥미로울 것이었다.
하지만 원작자가 반대했다.
러시아인들은
자연에 강한 애착을 느낀다.
러시아인들은 자신이 자연과
동떨어져 있다고 상상하지 못한다.
자신을 자연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 p.58
재능 있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은데
러시아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다.
문화를 파괴할 수도 있는 무언가가.
정말 그런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영혼까지
죽일 수는 없다.
자유의 문제가 있다.
자유란 무엇인가?
--- p.87
삶을 생각하는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확신한다.
죽음이 다가온다는 생각에
구토를 느끼지 않고
오히려 때때로 죽음,
죽음에 대한 절망감조차
우리 삶에서 느껴본 적 없는
놀라운 자유를
불러일으킨다는 것을 느낀다.
걸작이란
영혼이 내 옆을 지나면서
하늘 어딘가로 올라가고,
당신 옆을 스치면서
느낄 수 있는
바람의 숨결만
남기는 것일지도 모른다.
--- p.139
타르콥스키의 비밀은 영화 안에 머무르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서둘러 영화로 돌아가는 것이다. 거기에 유일한 힘, (타르콥스키의 표현을 빌리면) 시적인 힘이 있다. 예술에서 실존이란 예술가가 아니라 작품에 있다. 세상에서 만들어진 작품이 지니는 우주의 질서. 우주 어딘가에 지구와 동일한 행성이 있을 것이다. 행성 두 개, 세 개, 여러 개. 하지만 우주는 단 하나이다. (물론 어떤 바보는 평행우주를 주장하고 나설 것이다. 나는 바보와 말다툼을 할 겨를이 없다.) 작품은 단 하나이다.
--- p.1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