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오늘날의 그리스 신화
제1장 왜 신화인가?
현대 자본주의 사회와 신화
21세기를 사는 오늘날은 세계화와 인터넷의 발달 등으로 동양과 서양, 고대와 현대의 경계가 쉽게 사라져버리는 ‘상상의 공동체’ 시대에 살고 있는 듯하다. 흔히 21세기를 3F 혹은 4F의 시대라고 한다. 여성적인 것(Female), 감성적인 것(Feeling), 상상적인 것(Fiction), 패션(fashion)이 이 시대를 이끌어갈 대표 코드라는 말이다. 롤프 젠센은 21세기를 꿈의 사회(Dream Society)라고 불렀으며, 다니엘 핑크는 창의성, 감성, 거시적 안목이 중시되는 새로운 사회가 도래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즉 다가올 미래 세계는 상상력이 넘치며 여성적이고 감성적이며, 꿈을 자극하는 쪽으로 더욱 나아갈 것이라는 전망이다. 실제로 오늘날은 참신하고 기상천외한 아이디어와 콘텐츠가 개인 및 국가 경쟁력과 직결되는 시대가 되었다.
이러한 추세의 저변에 신화가 있다. 신화는 까마득한 옛 이야기이면서도, 미래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신화에는 긴 세월에 걸쳐 인간들이 상상했던 온갖 신기하고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신화에 대한 관심은 예로부터 전 세계적 추세이기도 한데, 요즘 우리 사회에도 그리스 로마 신화를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의 신화에 대한 관심이 크다.
신화가 유행하면서 신화적인 것들이 자본주의 마케팅에도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브랜드 지배하는 자, 세계를 지배한다’는 슬로건이 유행인 요즘, 많은 기업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이나 사건을 자신의 브랜드 명으로 차용하고 있다. 스타벅스의 로고로 쓰이는 머리를 풀어헤친 여성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세이렌이다. 고대 세이렌들이 지극히 아름다운 노래를 불러서 선원들을 꾀었듯이, 치명적일만큼 맛있는 커피로 손님을 끌겠다는 스토리가 담겨져 있을 것이다. 스포츠용품 전문 브랜드 나이키는 승리의 여신 니케의 날개를 형상화한 로고를 쓰고 있다. 이 운동용품을 쓰면 승리를 거둘 것이라는 암시를 담은 것인데, 같은 품질의 운동화라도 나이키 로고가 붙은 것은 더 비싸게 팔리고 있다.
우리나라 포털사이트 네이버 초기의 광고는 한 인기 여자 연예인이 머리에 깃털이 달린 모자를 쓰고 있는 것이었는데, 이는 헤르메스의 모자를 상징한다. 헤르메스 신이 학문과 정보, 소식의 신이었기 때문에 이를 차용한 것이다. 헤르메스 모자는 지금도 이 포털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그리스 신들만 마셨던 음료가 넥타였다고 해서 넥타란 음료수가 나왔고, 그리스 신들만 먹었다는 불사의 음식 암브로시아의 이름에서 암바사라는 음료도 출시되었다. 지금 우리는 단돈 천 원으로 고대 그리스 신들만 먹고 마셨다는 음료수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넥타와 암바사를 제치고, 우리나라 음료수 시장의 1위를 차지한 것은 박카스인데, 박카스 역시 그리스 로마 신의 이름에서 나왔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술의 신이자 음료수의 신은 디오니소스이며, 그의 로마식 이름인 박쿠스에서 나온 것이 박카스인 것이다. 사랑의 여신인 아프로디테의 로마식 이름인 비너스는 속옷이나 스타킹 등의 여성용품에 사용되고 있다. 신들의 왕인 제우스의 또 다른 이름인 디오스라 불리는 가전 브랜드도 있다. 가전제품의 왕이 되어서 많이 팔리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을 터이다. 그 외 그리스 주요 신들이 살았다는 산 올림포스의 이름을 딴 카메라 등등,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연유된 브랜드들은 잠깐만 일별해도 엄청나게 많다. 21세기 우리의 하루는 그리스의 신화에서 시작하여 신화에서 끝날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하루를 이렇게 정리해볼 수도 있겠다.
“아침에 일어나서 곡물의 신 데메테르(세레스)의 이름을 딴 시리얼에 디오스 냉장고에 넣어둔 우유를 부어 아침을 대신하고, 비너스 속옷을 받쳐 입고, 헤라 화장품으로 얼굴을 다듬은 다음 나이키 운동화를 신고, 올림포스 카메라를 매고 야외에 사진 찍으러 간다. 가다가 목이 마르면 마실 넥타를, 행여 피곤하다 싶으면 마실 박카스도 배낭에 챙겨 넣는다. 지하철역 광고판에서는 명품 다이아몬드를 선전하는 포스터를 본다. 아름다운 한 여성이 손가락에 다이아몬드 반지를 끼고 포즈를 취한 것은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을 패러디한 것이다. 이 반지를 끼면 미의 여신 부럽지 않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셈이다.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오후에 백화점에 들러서 큰맘 먹고 쇼핑을 한다면, 나를 위하여서는 메두사 머리가 로고로 붙어있는 베르사체 백을, 남편을 위하여서는 에르메스(헤르메스) 넥타이를 사고 싶을 지도 모른다.”
이상에서처럼 상품 브랜드에서 그리스 로마 신들과 관련한 이름을 많이 쓰는 것은 일종의 귀족 마케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름답고 힘있는 불멸의 고대 신들과 관련된 것이었다고 할 때 느껴지는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차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리스 신화는 여러 매체를 통하여 인지도가 이미 높아진 것들이 많기 때문에 고객들이 쉽게 친밀감을 느낄 수 있다는 이점도 있을 것이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