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만이 절대적 정의를 독점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일부 좌파들의 도덕적 폭력은 극우 반공주의의 매카시즘적 폭력과 결을 같이한다. 상대방에게 이러저러한 딱지를 붙임으로써 자신의 헤게모니를 확보하려는 권력 지향적 글쓰기가 여전히 지배적이며, 좌파들의 논쟁 또한 권력 지향적 문화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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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다시 이렇게 질문을 던져야 한다. 우리에게는 아직 일체의 국가 행위를 비판할 수 있는 자율적 시민의 확산을 통해, 지난 시기 우리 사회 운동의 구성적 무능력을 극복하고 탈권력화된 시민 공동체를 꿈꿀 수 있는 가능성이 남아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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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제적 민주화가 겉으로 드러나는 사회적 무늬라면, 파시즘은 물밑에서 살아 움직이는 한국 사회의 결이다. 우리 의식과 일상적 삶의 심층에 내면화된 규율권력, '일상적 파시즘'의 극복이야말로 정치적 제도적 파시즘을 타파하는 요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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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현수준에서 일상적 파시즘론이 갖는 한계는 분명하다. 시론적 차원에 불과하다는 점도 있지만, 여러가지 픽션 장치들 밑에 은폐되어 있던 결을 드러내는 데 급급해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준비된 답변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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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공항 국제선 제2청사에는 'Exit Counseling'이라는 영어 간판을 단 사무실이 있다. 출국하는 외국인들의 여권과 비자 문제를 취급하는 곳이라니까, 사무실의 간판은 '출국상담실' 정도의 뜻으로 붙여 중 셈이다. 그런데 이 간판의 원래 영어 의미는 사교에 빠졌다가 다시 현실로 돌아오려는 광시도를 위한 치료 상담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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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이 강하다는 것은 억압과 강제보다는 동의의 기제에 의존할 때라는 그람시의 테제는 여전히 유효하다. 일상적 파시즘론의 출발점은 여기에 있다. 물론 현수준에서 일상적 파시즘론이 갖는 한계는 분명하다. 시론적 차원에 불과하다는 점도 있지만, 여러 가지 픽션 장치들 밑에 은폐되어 있던 결을 드러내는데 급급해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준비된 답변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억지 정답을 강변하려는 자세는 피했다. 낡은 평면도 밑에 은폐된 입체적 지형을 그려 낸다면 그나마 다행이겠다.
--- 머리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