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이 너무 깊어서일까, 아니면 앨리스가 너무 천천히 떨어져서일까? 시간이 충분해서 앨리스는 주변을 둘러보기도 하고 이다음엔 무슨 일이 생길지 궁금해하기도 했다. 맨 처음에 앨리스는 아래를 내려다보며 어떤 광경이 펼쳐질지 확인해보려 했지만, 너무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다음 앨리스는 옆으로 눈을 돌렸고, 우물 벽이 온통 찬장과 책장으로 가득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여기저기 못으로 고정해놓은 지도와 그림도 보였다. 앨리스는 선반 옆을 지나치며 단지 하나를 집어 들었다. 거기엔 ‘오렌지 마멀레이드’라는 라벨이 붙어 있었지만 아쉽게도 속은 비어 있었다. 앨리스는 단지를 그냥 떨어뜨렸다가 바닥에 있는 누군가를 죽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아래로 추락하면서도 가까스로 찬장에 단지를 집어넣었다.
---「1 토끼 굴 속으로」중에서
‘그냥 집에 있는 게 훨씬 즐거웠어. 집에서는 몸이 커지거나 작아지지도 않았고, 생쥐랑 토끼에게 명령을 듣지도 않았지. 그 토끼 굴에 들어가지 말걸 그랬어. 그렇지만, 그렇지만 말이야, 사실 좀 궁금하긴 해, 이런 종류의 삶도 말이야! 나에게 또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을지 궁금해! 동화를 읽으면서도 그런 일은 실제로 일어나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내가 동화 한가운데에 있다니! 내가 주인공인 동화책이 있어야만 해, 꼭 그래야 해! 내가 크면 직접 쓸 거야. 아, 벌써 다 커져버린 건가.’
---「4 토끼가 작은 빌을 보내다」중에서
앨리스는 공작부인의 말투가 마음에 들지 않았기에 자신의 지식을 뽐낼 수 있는 다른 대화 주제를 꺼내보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앨리스가 주제를 고르는 사이, 요리사가 불에서 가마솥을 내리더니 자기 손이 닿는 거라면 뭐든지 공작부인과 아기를 향해 던지기 시작했다. 부지깽이가 맨 처음 날아왔다. 뒤이어 냄비, 접시, 그릇이 연달아 날아왔다. 하지만 공작부인은 요리사가 던진 걸 맞고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아기도 아까부터 계속 울고 있었기 때문에 어딘가에 맞아서 아픈 건지 아닌지 알 수가 없었다.
---「6 돼지와 후추」중에서
맨 처음 나타난 건 곤봉을 든 병사 열 명이었다. 그들은 세 명의 정원사와 마찬가지로 직사각형에 납작했으며, 네 모서리에 손과 발이 달려 있었다. 그다음은 열 명의 신하가 보였다. 그들은 온통 다이아몬드로 치장한 채 병사들과 마찬가지로 둘씩 짝을 지어 걸어왔다. 그 뒤엔 왕실 아이들이 나타났다. 총 열 명의 어린아이는 두 명씩 손을 잡고 즐겁게 폴짝거리며 뛰어왔다. 그들은 모두 하트로 장식되어 있었다. 다음은 손님들이었다. 대부분 왕이나 여왕이었고 그중에 앨리스가 알고 있는 흰 토끼도 있었다. 토끼는 긴장한 채 허둥대며 떠들어댔고, 자신에게 말을 거는 모든 이들에게 미소를 지었으며, 앨리스를 알아채지 못한 채 옆을 지나쳤다. 그리고 그 뒤에 왕관이 놓인 진홍색 벨벳 쿠션을 든 하트의 잭이 지나갔고, 이 장대한 행렬의 맨 끝에 하트의 왕, 그리고 여왕이 있었다.
---「8 여왕의 크로케 경기장」중에서
흰 토끼가 서둘러 지나가자 발 쪽의 기다란 풀이 바스락거렸다. 깜짝 놀란 생쥐는 그 옆 웅덩이로 첨벙거리며 지나갔다. 3월의 토끼와 친구들은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은 식사를 함께했고, 여왕은 새된 목소리로 불쌍한 손님들에게 처형을 명령했다. 아기 돼지는 공작부인의 무릎 위에서 재채기를 했고, 주위에선 접시와 그릇이 깨졌다. 그리핀이 내지르는 비명 소리, 도마뱀이 석판에 끽끽 글씨를 쓰는 소리, 제압당한 기니피그가 숨 막혀 하는 소리가 저 멀리 우울한 가짜 거북의 흐느낌 소리와 뒤섞여 들려왔다.
---「12 앨리스의 증언」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