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형회 날이 왔다. 일학년 첫 학부형회라 거의 모든 학부모님들이 모였다. 모녀지간은 어쩌면 그렇게 서로 닮았는지, 우리 엄마는 우리 엄마답게 촌스러웠고 그 아이 엄마는 그 아이 엄마답게 젊고 예쁘고 멋쟁이였다. 만약 그 애가 갖고 있는 것 중에서 한 가지라도 나하고 바꿀 수 있는 게 있다면 나는 서슴지 않고 그애 엄마를 골라잡겠다고 했을 것이다. 나는 그때 나의 촌스러움보다는 엄마의 촌스러움이 창피해서 죽을 맛이었다.
학부형회가 끝난 다음 나는 그애한테 "느네 엄마 참 예쁘다"는 선망의 말을 했다. 그러나 그애는 조금도 좋아하지 않았고 도리어 뾰로통하더니 한참만에 자기 비밀을 하나 가르쳐줄 테니 아무한테도 말 않겠다는 맹서로 새끼손가락을 걸자고 했다.
그애는 내 귀에다 대고 그 엄마는 의붓엄마이고 친엄마는 나쁜 의붓엄마 때문에 쫓겨났다고 했다. 내가 아는 의붓엄마는 콩쥐팥쥐의 엄마, 장화홍련의 엄마가 전부였으므로 그애가 의붓엄마하고 살면서도 매도 안 맞고 예쁜 옷 입고 다니는 게 암만해도 이상했다. 그애는 내가 믿지 않는 걸 알자 나쁜 의붓엄마라는 걸 어떻게든 나에게 인식시키기 위해 그 의붓엄마가 바에서 술 따르던 여자였다는 얘기까지 했다. 그리고는 그 말을 누구한테 풍기지 말라고 거듭거듭 다짐하고 나서도 못 미덥다는 듯 안달을 했다. 나는 내가 안 한닥 한 말은 절대로 안 하는 신용 있는 아이라는 걸 그애한테 인식시킬 수 있는 한 방법을 생각해냈다. 그것은 나 역시 그애한테 나의 비밀을 가르쳐주는 거였다.
나도 그애와 마찬가지로 엄숙하게 새끼손가락 걸기를 하고 나서 내가 주소를 속이고 이 학교에 들어왔다는 것과 나의 정말 주소는 고개 넘어 현저동 감옥소가 있는 동네라는 고백을 했다. 그애는 나의 고백을 별로 탐탁하게 듣는 것 같지 않았다. 그애가 탐탁해하지 않자 나는 내 비밀이 그애의 비밀만 못한 것 같아 무안했다.
--- pp. 75∼78
엄마의 희망은 집요했다. 합격, 불합격의 통지서가 배달될 날이 임박해서는 매일같이 사직동 친척집에 다녀오시는 거였다. 주소를 그리 옮기고 친 시험이니까 통지서도 그리로 배달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 엄마는 희색이 만면에서 돌아오셨다.
"서울애들도 별거 아니더라."
엄마는 내가 서울애들을 물리치고 합격했대서 이렇게 으스대셨다. 그때 초등학교 시험이 몇 대 몇의 경쟁률이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따라서 내가 몇 사람의 서울애를 물리쳤는지도 알 수가 없다. 아마 정 공부할 능력이 없는 애만 떨어내는 정도의 시험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엄마는 대단히 의기양양해하셨다.
--- p 66
서울에서 나를 데리러 오신 엄마가 내 종종머리를 잘라내고 해준 서울식 단발머리란 게, 하필 뒷머리를 높이 치깎고 뒤통수를 하얗게 면도로 밀어내는 거였다. 그건 그 시절 두메산골의 상식으론 뒤통수가 잘났건 못났건 간에 상관없이 기상천외의 망측한 머리였다. 나는 동네 아이들로부터 뒤통수에도 얼굴이 달린 계집애라고 놀림감이 됐다.
엄마는 서울만 가면 다 괜찮아진다고 나의 딱한 처지를 일소에 부쳤다. 나는 할아버지가 유난히 귀여워해주셔서 그것만 믿고 응석이 심하고 발버둥쳐 울기 시작하면 잘 그치지 않는 못된 계집애였는데도 엄마 앞에선 꼼짝을 못했다. 오랜만에 만난 엄마는 누가 보기에나 서울사람이 돼 있었고, 그것이 나를 겁먹게 했다.
하직인사를 여쭈러 사랑에 들렀더니 할아버지는 오십 전짜리 은전 한 닢을 던져주시면서 "꼴 보기 싫다"는 한 마디로 나를 외면하셨다. 나는 할아버지께 나의 망측한 뒤통수를 보이지 않기 위해 뒷걸음질쳐 물러났다. 할아버지는 그때 내가 단발머리하고 서울 가는 걸 분명히 못마땅해하셨다. 할아버지는 여태껏 당신 비위에 안 맞는 일을 참으신 일이 없는 분이었다. 그런데도 적극적으로 나를 붙잡지 못하신 건 할아버지도 나처럼 엄마에게 주눅들어 있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엄마늬 서울사람다움에.
처음에 오빠를 서울서 공부시켜 보겠다고 집 떠나실 때만 해도, 웃어른들 앞에 엎드려 빌다시피 해서 겨우 허락 아닌 묵인이나마 얻으실 수 있었던 엄마가 나를 데리러 오셨을 때는 그렇게 의젓하고 당당하고 권위마저 있어 보였다. 엄마의 그런 변모 때문에 나는 엄마의 서울살림을 우러르고 동경하는 마음이 가득했고, 단발머리의 우울함도 참을 수가 있었다.
--- pp 1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