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람과 식사하는 시간이 점차 부담 없고 편안한 시간으로 변해 갈 때, 그 긴장감도 덩달아 줄어들면서 상대는 둘도 없이 소중한 존재가 된다. 요컨대 가족이 되어 간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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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일이든 슬픈 일이든, 마치 재해처럼 강력한 힘으로 찾아와 인생의 흐름을 뒤집어 놓을 수 있다. 너무 강력하게 멋진 것은 거의 슬픔과 비슷할 정도로 힘겨운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것이야말로 인생이고, 우리가 살아 있는 존재라는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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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사용하는 애장의 된장이 아니라 슈퍼마켓에서 사 온 값싼 된장에, 다시마와 마른 멸치로 국물을 내는 대신 아버지가 사용하던 인스턴트 양념으로 간을 해서 아버지의 맛을 재현하면, 아버지가 식사를 준비하던 때의 곤혹스러움마저 그립게 전해지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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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역시 기뻤다. 나만을 사랑하고, 언제나 봐주는 아이라는 존재는 나를 뼛속까지 바꿔 놓았다. 이렇게 같이 있어도 사람은 혼자다, 하지만 같이 있을 수 있어 기쁘다. 그렇게 생각했다. 내 시간 거의 전부를 바쳐 함께 있었기에, 지금 떠나가는 그를 당당히 응원할 수 있는 것이리라. 그럼에도 그날들에만 꿀 수 있었던 꿈을 나는 잊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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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내가 만든 토마토 마늘 수프를 가장 좋아했다. 완숙 토마토로 만들어 새콤달콤하고 맛이 진했다. 지금도 그걸 만들면 “와, 토마토 마늘 수프 만드네, 맛있겠다.” 하고 그는 말한다. 그의 인생에 새겨진 맛이리라. 그런 음식을 내가 만들수 있었다는 것에 신비로움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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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 혼자서 걷고, 전철을 타고, 시장을 보러 간다. 그러나 코알라처럼, 캥거루처럼, 거추장스러우면서도 따스한 온기가 언제든 함께였던 날들은 분명히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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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을 밝히고 맥주나 와인을 마시면서, 저물어 가는 하늘을 바라보며 늘 똑같은 사람들과 먹는 저녁 메뉴를 생각하는 순간의 행복은, 인생의 수많은 행복 중에서도 상당히 큰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행복도, 식탁에 둘러앉은 가족을 사랑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런 사랑이 너의 세계에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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