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의 나날이 길어지면 요일 감각은 말할 것도 없고 어제, 오늘, 내일의 경계조차 흐지부지해진다. 다시 말해서, 오늘의 해가 지면 내일이 오는 것이 시간의 흐름이지만, 갑자기 뭔가가 잘못되어 내일이 아니라 다시 한 번 어제가 반복되는 듯한, 그런 아무 의욕 없는 시간의 흐름을 느낄 때가 있다.
혹시라도 시간이 거꾸로 되돌아오는 일이 있다면, 자기는 매주 일요일 밤마다 1층 쓰레기집하장에서 누군가가 내다 버린 쓰레기봉투를 하나씩 집어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자 와타나베는 피식 웃음이 났다.
---「일요일의 엘리베이터」중에서
“아니, 그 뭐냐, 잊으려고 하는 건 말이야, 참 어려운 일이지, 난 그렇게 본다.”
“네?”
“아니, 그러니까, 잊으려고 하면 할수록 잊히지가 않아. 인간이란 건 말이다, 잊으면 안 되는 걸, 이런 식으로 맘에 담아두고 있는 건가 보다.”
“이런 식으로라니요?”
“아니, 그러니까, 잊어야지, 잊어야지 노상 애를 쓰면서…….”
---「일요일의 남자들」중에서
“너, 지금, 행복하냐?”
“뭐?”
“아니, 그러니까…….”
“뭐야, 기분 이상하게.”
“아니, 그러니까 말이야, 너처럼 살아도 한평생, 나처럼 살아도 한평생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형이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 다바타는 쉽게 알아차릴 수가 없었다. 행복하냐는 갑작스런 질문에 그리 간단하게 대답할 수는 없었다.
다바타는 직사광선에 조금 익숙해진 눈으로 해를 마주 보았다. 그리고 혹시라도 오늘 밤 갑자기 자기가 모습을 감추면 도모미는 눈물을 흘릴까 생각해보았다. 아마도 울겠지. 그리고 언젠가 반드시, 눈물을 그치게 될 날도 오겠지. 아니, 그런 날은 오지 않을 거라 우긴다 해도, 그날은 꼭 오고야 만다. 울음을 그칠 날이 올 때까지 곁에 있어 주면 된다고 다바타는 생각했다. 넌 바보야, 어리석어. 형은 그리 말할지라도 그런 식으로밖에 사람을 사랑할 수 없으니 어쩔 수 없다.
---「일요일의 운세」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