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우들이 질문함에 넣어 주셨던 용지들 중에서 골라 목사님께 질문 드리겠습니다. 자취생 이재철 목사님께 드리는 질문인데요, (현재 제네바에서) 혼자 자취를 하신다는데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인가요?
-혼자 산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죠. 그러나 혼자 살면서 배우는 것도 많습니다. 어려움은 두 가지를 말씀드릴 수 있는데요, 첫째는 대화상대가 없음으로 인한 언어 구사능력의 퇴보입니다. 제가 서울에서 목회할 때는, 토요일 아침 10시에 주일설교 원고작업을 시작하면 보통 밤 10시면 끝이 났습니다. 평균 12시간 정도 소요된 셈입니다. 최악의 경우에도 열서너 시간을 넘긴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제네바에 간 뒤 아침 10시에 시작된 설교 준비가 이튿날 새벽 1시나 되어 끝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2시, 3시, 4시까지 마구 연장되어 갔어요. 최고 18시간까지 걸린 거죠. 처음에는 그 이유를 몰랐습니다. 몇 달 지난 다음에야, 혼자 사는 제게 대화 상대가 없어 언어 구사능력이 퇴보하기 때문임을 알았습니다. 그러니까 필요한 언어를 동원하는 순발력이 떨어진 겁니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난 다음, 1년 6개월이 지난 지금 그 문제는 극복이 되었습니다. 이제 대화 상대가 없어도 제 속에서 한국말이 퇴보하지 않고 살아 있을 수 있게 된 겁니다.
또 다른 어려움은, 불현듯 가족이 보고 싶은 것입니다. 그런 밤에는 잠을 자지 못합니다. 저는 눕기만 하면 그냥 잠이 드는 편인데, 가족이 사무칠 때는 꼬박 밤을 지새우게 됩니다. 그런 경우가 예기치 않게 불쑥불쑥 찾아오는데, 그건 아직 극복이 안 돼요. 그것이 현재 남아 있는 제일 큰 어려움입니다.
○목사님 글을 봐서는, 파자마를 입고 앞치마를 두른 채 밥을 하시는 목사님의 모습이 상상이 가지 않습니다.
-상상이 안 가죠. 파자마를 입거나 앞치마를 두르고는 밥을 한 적이 없으니까요.
○두 번째 질문입니다. 학생들 중에는 학교에서 배운 신학이론과 교회현장에서 부딪쳐야 하는 마찰이나 관계로 인한 갖가지 상처들 때문에 신학을 선택한 것을 후회하기도 하는데요, 목사님께서는 뒤늦게 신학공부를 시작하면서 후회하신 적은 없었습니까?
-저는 30대 중반이 될 때까지 인생을 허비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성령님께서 저를 만져 주셨습니다. 그때 저는 신학교로 제 인생의 길을 바꾸지 않으면 또 다시 인생을 허비하고 말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신학을 제가 했다기보다는, 하나님께서 저의 약한 의지를 그런 식으로 붙들어 주신 것입니다. 따라서 신학교로 진로를 바꾼 것에 대해 후회는 한 번도 없었고, 오히려 하나님께서 불러 주셔서 의미 있는 삶을 살게 된 것에 대해 지금도 눈물겹도록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단지 제가 나이 들어 신학을 하면서, 그 동안 익혔던 신앙과는 다른 신학을 접하면서 갈등하던 때가 잠시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제가 신대원에 입학한 게 1985년이었는데, 그때는 해마다 5월이면 광주항쟁 기념식이 열렸습니다. 그런데 우리 학교 신학생들 역시 데모를 하며 화염병을 던지더군요. 들고 있는 플래카드의 구호 또한 일반 대학의 구호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첫해에는 학생회가 초청한 외부강사가 학교마당에 운집한 시위대에게 선포하는 설교를 들었습니다. 설교요지는 화염병 투척을 정당화하는 내용이었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키기 위해 이집트에 갔을 때 내렸던 메뚜기재앙, 이와 파리 재앙 등이 다 무엇이겠느냐,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메뚜기와 파리를 잡아오게 해서 파라오의 왕궁으로 던진 것 아니겠느냐, 그때의 메뚜기가 오늘날은 화염병이니까 신학생 여러분도 갈등 없이 던지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분의 권유와는 달리 그런 분위기 속에서 계속 신학교를 다닐 가치가 있는지, 저는 잠시 심각하게 갈등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그 갈등은 얼마 후 저절로 해소되었습니다. 이건 문제가 안 될 수도 있다, 사람마다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으므로 결국은 나 자신이 나와 다른 생각을 어떻게 받아들여 내 속에서 어떻게 통합시키느냐가 중요하다, 이렇게 깨달은 것이 첫째 이유였습니다. 둘째는, 만약 내가 하나님 앞에서 목사로 살아가기를 원한다면 아웃사이더가 되어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인사이더로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에서였습니다. 마르틴 루터가 가톨릭 신부였기에 종교개혁이 가능했지, 만약 루터가 장 칼뱅처럼 신부가 아니었던들 과연 루터에 의해 종교개혁의 물꼬가 트일 수 있었겠는가? 하나님께서 그를 종교개혁의 첫 번째 주자로 사용하신 것은 그가 현직 신부였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이런 생각들로 인해 그 갈등은 제 속에서 통합되고 극복되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보수적 신앙풍토 속에서 자라난 저로서는 전혀 다른 신학이론이나 주장을 많이 접할 수 있었던 것이 굉장히 유익했고, 그래서 그런 기회가 있었음을 오히려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목회란 나와 다른 사람과도 더불어 살 수 있는 힘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것은 목회를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느냐는, 우리 개개인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중략)
○개신교회 목사님들 중에서 잘못된 모습을 보이시는 분들이 종종 있습니다. 그분들을 보면서 목사의 자질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데요,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목사에게 필요한 자질이 있다면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목사를 만드시지 않고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목사가 되는 데에 제일 필요한 덕목은 사람됨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되면 좋은 목사가 될 수 있고, 사람이 되면 좋은 정치가가 될 수 있고, 사람이 되면 좋은 남편이 될 수 있습니다. 바른 사람이 되지 않고 목사가 되면 목회현장 어디선가 반드시 문제가 터지겠지요. 성경말씀이 요구하는 바대로의 사람이 먼저 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부록 ‘저자와의 대화’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