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은 중국의 전통 사상과 종교의 근간이 되는 경전 중의 하나로서, 『한서漢書』 「예문지藝文志」에 따르면 이른바 삼성三聖이 책을 완성한 것으로 전해 내려온다. 삼성이란 복희伏羲, 문왕文王, 공자를 가리키는데, 여기에 주공周公을 넣어 사성이라 부르기도 한다. 팔괘를 처음 만든 이는 복희씨이고, 팔괘를 64괘로 연역한 이는 문왕, 각 효爻마다 효사를 붙인 이는 주공, 이른바 십익十翼이라 불리는 전傳을 쓴 이는 공자로 본다. 한나라가 정권을 수립한 후, 유학儒學을 정책적으로 장려하자 경전해석학經典解釋學, 즉 경학이 발달하게 되었는데, 이때 생겨난 것이 오경五經이고 그 첫째가 『역』이었으니, 이로부터 『역경易經』이라 불려 왔다. 그래서 『주역』은 『경經』과 『전傳』의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경』은 64괘와 384효의 괘 · 효사로 이루어졌고, 『전』은 괘사와 효사를 해석하여 기록한 총 7가지 저작으로 이루어졌다. 공자가 편찬하였다고 전해지는 이 7가지 저작을 구체적으로 거명하면 『단彖』(상 · 하), 『상象』(상 · 하), 『문언文言』, 『계사繫辭』(상 · 하), 『설괘說卦』, 『서괘序卦』, 『잡괘雜卦』 등이다. 이들은 총 10편으로 구성되므로 다른 말로 십익十翼이라고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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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에 괘를 배열한 순서에 대해서는 『서괘전序卦傳』에 상세히 나온다. 『주역』은 상경上經과 하경下經으로 나뉘는데, 전자는 건乾괘부터 이離괘까지의 30괘, 후자는 함咸괘부터 미제未濟괘까지의 34괘를 각각 실었다. 상경은 건乾괘와 곤坤괘로 시작하는데, 이는 하늘과 땅이 생겨남으로부터 만물이 생성됨을 상징하고, 바로 뒤에 이어지는 준屯괘와 몽蒙괘는 탄생의 고통과 무지몽매함을 나타낸다. 이렇게 이어지면서 감坎괘와 이離괘로 마치는데 전자는 달을, 후자는 해를 각각 상징하므로, 이는 만물이 빛의 세상으로 나옴을 표상한다. 하경은 함咸괘와 항恒괘로 시작하는데, 이는 만물이 생성되어 나온 후, 남녀가 교감하여 짝을 짓고 변치 않는 윤리에 따라 살아가면서 번성함을 표상한다. 마지막은 기제旣濟괘와 미제未濟괘다. 전자는 변화와 발전이 완성에 이르렀음을, 후자는 완성 후에는 또 다른 변화와 발전의 순환 과정이 미완의 상태로 기다리고 있음을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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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건괘乾卦
乾爲天건위천: 건은 하늘에 해당한다.
건하건상乾下乾上
개관
건乾괘는 64괘 중의 제1괘로서, ‘乾’ 자는 ‘天천’, 즉 ‘하늘’을 뜻한다. 건괘는 상 · 하괘가 모두 건괘()로 이루어졌는데, ‘’은 ‘(기운 기)’ 자의 변형으로서 연기나 안개 같은 기운이 하늘 끝까지 올라가는 모양이다. 하늘처럼 너무 큰 것은 개념화하기가 어려우므로, 신체에 빗대어 정수리로 비유하였다. 그래서 허신許愼의 『설문해자說文解字』는 ‘天’ 자를 “정수리로서 가장 높아서 그 위에 더 없다는 뜻이다. ‘一’ 자와 ‘大’ 자로 이루어졌다”(顚也, 至高無上, 一大)라고 해설하였다. 여기서 ‘大’ 자는 사람이 팔을 벌리고 서 있는 모양이고, ‘一’ 자는 맨 위의 머리를 가리킨다. ‘乾’은 중국어로 ‘치엔qian’으로 읽는데, 이는 ‘天천’ · ‘顚전’ 등의 발음과 같다. 따라서 건괘는 지고至高 · 지대至大 · 지존至尊인 만물의 주재를 상징한다. 아울러, 덕과 재주를 겸비한 군자, 그리고 흥성興盛과 강건强健을 상징하기도 한다.
『서괘序卦』는 공자가 편찬했다고 알려진 『역전易傳』 십익十翼 중의 하나로서, 64괘의 배열 순서를 해설한 책인데, “하늘과 땅이 있고 난 다음에, 여기에서 만물이 생겨났다”(有天地,然後萬物生焉)라고 해설하였다. 이는 건괘가 하늘이고 곤괘가 땅이니, 건괘의 강건함과 곤괘의 공경함이 서로 어우러져서 만물이 생성된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해서 만물이 하늘의 화신化身
은 아니고, 살아가는 데 갖춰야 할 덕은 스스로 쌓아야 한다. 그래서 본 괘의 여섯 효는 각기 그 단계에서 수양해야 할 덕을 기술한다.
--- pp.39~40
괘사 풀이
乾, 元亨利貞.
元: 으뜸 원. 亨: 형통할 형. 利: 이로울 리. 貞: 곧을 정.
‘元원 · 亨형 · 利리 · 貞정’은 건괘의 조짐을 예견한 괘사卦辭로서, ‘大吉大利대길대리’, 즉 크게 길하고 크게 이로운 괘다. 이 네 글자는 괘사에서 자주 나오는데, 조합 형식에 따라 의미가 약간씩 다르다. ‘元亨’과 ‘利貞’으로 각각 이어 쓸 때도 있고, 또는 ‘利~貞’으로 쓸 때도 있다. ‘元원 · 亨형 · 利리 · 貞정’의 의미는 대략 다음과 같다. ‘元’은 ‘처음’, ‘시작’ 또는 ‘크다’라는 의미를 품고 있다. 하늘은 만물에 처음으로 생명을 주어 나오게 하는데, 그 힘은 바위도 뚫고 나올 만큼 강하므로 그 덕德, 즉 작용이 큼을 나타낸다. ‘亨’은 ‘通(뚫릴 통)’과 같은 글자로서 ‘형통하다’, ‘막힘이 없이 뚫리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아무것도 없는 무無에서 만물을 낳았으면, 이들이 스스로 유有를 만들어 소통하며 살아가도록 길을 활짝 열어 주어야 하는데, 이것을 ‘형통’이라고 부른다.
‘利’는 ‘이익’이나 ‘이윤’ 또는 ‘날카로운’ 등의 의미를 지니는데, 사람들과의 소통이 잘되고 형통하면 이익이 발생한다. 이익은 이로운 것이어서 모든 생명을 잘 성장하게 해 준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예민하고 날카로운 것이기도 해서 사람들 사이에 쟁송爭訟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 진정한 이익이 되려면 반드시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그래서 『설문해자』는 ‘利’ 자를 풀이하면서 “조화를 이룬 다음에라야 진정한 이로움이 된다. 『역』에 이르기를, ‘이로움이란 의로움 중에서 조화된 것이다’라고 하였다”(和然後利. 易曰: 利者, 義之和也)라고 부연하였다. 의로움은 자칫 남을 해칠 수도 있으므로 조화를 갖추어야 진정한 이로움이 된다는 말이다.
‘貞’을 『설문해자』는 “점을 쳐서 묻는다는 뜻이다. ‘卜(점 복)’ 자와 ‘貝(자개 패)’ 자로 이루어졌는데, 여기서 ‘貝’ 자는 폐백을 나타낸다”(卜問也. 卜, 貝以爲贄)라고 풀이하였다. 점을 칠 때는 마음을 가다듬어 순정純正함을 유지해야 하므로, 이를 위해 폐백을 드리는 것이다. 이로부터 ‘貞’ 자에 ‘바르다’, ‘곧다’, ‘단단하다’ 등의 의미가 생겨났다. 즉 앞서 말했듯이, 이로움이 있는 곳에는 다툼이 있게 마련인데, 이 다툼을 해결하려면 공정하고 치우침이 없어야 한다. 따라서 ‘利’ 뒤에 ‘貞’이 수반된 것이다. 세상을 다스리는 일에서 임금이나 지도자는 하늘에 해당하므로, 건괘의 괘사인 ‘元원 · 亨형 · 利리 · 貞정’은 지도자가 갖춰야 할 네 가지 덕을 상징한다.
이 ‘元원 · 亨형 · 利리 · 貞정’에 대하여 『단전彖傳』(이하 『단』)은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해설하였다. “위대하도다, 하늘의 무한한 원천이여! 만물은 이를 바탕으로 움터서 하늘에 통괄된다. (그러면) 구름이 떠다니고 비가 흩뿌려져서 세상의 각종 사물별로 형체가 변이되어 정해진다. (이 형체로써) 처음과 끝의 순환을 명백히 밝혀 주고, 6효의 위치에 따라 그때마다 이루어
야 할 일이 있고, 또 그때마다 타야 할 여섯 마리의 용을 타고서 하늘의 덕을 실현한다. 하늘의 도리는 변화하므로 그때마다 본성과 생명을 바르게 하고, 하늘의 덕을 몸 안에 간직해서 실천하면, 이것이 이롭고 올바른 것이다. (이렇게 ‘원 · 형 · 리 · 정’을 갖추면) 머리가 뭇사람들로부터 튀어나와 (제왕이 되어) 만국이 모두 평안하게 된다.”(大哉乾元, 萬物資始, 乃統天. 雲行雨施, 流形品物. 大明終始, 六位時成, 時乘六龍以御天. 乾道變化, 各正性命, 保合太和, 乃
利貞. 首出庶物, 萬國咸寧)
--- pp.40~42
⑥ 上九, 亢龍有悔.
上: 위 상. 여기서는 제6효를 가리킴. 亢: 높을 항. 맨 끝에 있는 극점. 亢龍항룡: 최고 정점까지 올라간 권력자. 悔: 뉘우칠 회. 잘못.
제6효는 음의 자리에 양효가 있으므로 실위다. 제6효는 모든 과정을 마치고 은퇴 또는 은거하는 사람의 자리를 상징한다. 그런데 여기에 양효가 있다는 것은, 은퇴하거나 은퇴할 시기에 아직도 권력이나 상승에 대한 욕망이 있음을 나타낸다. 권력의 꼭대기에 올라간 사람은 더는 올라갈 데가 없어 쇠퇴의 길을 걸어야 하므로, 더 욕심을 부린다면 후회할 일밖에 생기지 않는다. 이것이 ‘亢龍有悔항룡유회’, 즉 ‘최고 정점에 올라간 용에게는 후회할 일이 생긴다’라는 구절이다.
건괘의 강건剛健한 상황은 임금의 자리를 우뚝 솟게 함과 아울러 굳건하게 만든다. 그러나 본 효는 실위이므로, 정점의 자리라 하더라도 그것은 혼자 있는 자리로서 주위에 아무도 없는 고독의 자리다. 왜냐하면 본 효는 제1효인 백성에게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기에 아무도 알 수 없을 뿐 아니라, 도와줄 수도 없다. 그러므로 본 효에 있는 사람은 욕심을 자제해야 한다. 이를테면 임금이 정사가 골치 아파서 왕위를 태자에게 양위하고 상왕으로 올라앉았다면, 더는 권력에 연연하지 말고 노년을 즐기는 일에만 힘써야 한다.
이에 대하여 『상』은 “최고 정점에 올라간 용에게 후회할 일이 생기는 것은, 꽉 찬 상태는 오래갈 수 없기 때문이다”(亢龍有悔, 盈不可久也)라고 해설하였다. 십익 중의 하나인 『문언文言』에서도 “‘亢항’ 자가 뜻하는 바는, 나아감은 알면서 물러남은 모르고, 살아남음은 알면서 멸망함은 모르며, 얻음은 알고 잃음은 모른다는 뜻이다. 오로지 성인뿐인가 나아감과 물러남, 살아남음과 멸망함을 알면서, 올바름을 잃지 않는 분, 그런 분은 오로지 성인뿐인가”(亢之爲言也, 知進而不知退, 知存而不知亡, 知得而不知喪. 其唯聖人乎, 知進退存亡, 而不失其正者, 其唯人乎)라고 부연하였다. 그런데도 굳이 정점의 자리를 누리려 하면 후회할 일이 생길 뿐이다.
[제6 양효. 최고 정점에 올라간 용에게는 후회할 일이 생긴다.]
--- pp.48~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