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원이는 창밖을 자주 봅니다.”
2학년 큰아들의 담임선생님은 이 한 문장으로 운을 뗐다.
“수학 수업을 할 때 한창 설명하다가 재원이를 보면 턱을 괴고 창밖을 보고 있어요. 그럴 때마다 생각하죠. 재원아, 너는 또 꿈을 꾸고 있구나.”
선생님이야말로 꿈을 꾸듯 말을 이었다. 공부 못하고 수업 시간에 딴청 부려 마음에 안 드는 학생이 아니라, 집에서 공부를 시키든지 학원을 보내든지가 아니라, 꿈을 꾸는 아이라니!
--- p.32, 「7년째 꿈만 꾸는 중」 중에서
험하고 궂은 날씨에 골목에는 인기척도 없었다. 모두들 숨죽여 태풍이 지나가기만 기다리는 처지였다. 창문을 조금만 열어도 세찬 바람에 비가 들이칠 판인데, 네 살짜리 딸은 어디서 그런 힘이 났는지 갑자기 창문을 열어젖혔다. 창밖으로 얼굴까지 디밀었다. 세찬 빗방울이 얼굴에 부딪혔지만 아랑곳없이 혼신을 다해 외쳤다.
“바람씨! 이제 고만 좀 하시지!”
--- p.43, 「바람씨에게 고함」 중에서
“근데 엄마, 왜 가을방학은 없어?”
또 학사 일정에 시비를 걸기 시작했구나. 주어진 대로 살아오느라 한번도 가을방학의 존재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없는 내가 뾰족한 대답을 할 리 만무하거늘.
“이상해. 가을은 바람도 선선하고 경치도 좋은데 왜 방학을 안 해?”
--- p.100, 「가을방학」 중에서
세상에 하나뿐인 놀이터 모래 바닥을 캔버스 삼아 멋진 작품을 남긴 삼 남매. 셋의 그림이 그려진 놀이터는 밤새 잠들지 못하는 건 아닐까. 모두가 잠든 깊은 밤, 슬그머니 생명의 기운이 깃들어 하나둘 깨어나는 것이다. 공원 모래 바닥은 구름을 품은 하늘로 펼쳐지겠지. 행성들이 유유한 우주여도 괜찮겠다. 기사는 공주를 위해 불을 뿜는 용과 싸우고 거대 개구리는 용사를 돕고, 로봇은 누구 편을 들까? 뱀은 불을 뿜는 용을 보고 도와주고 나중엔 서로 친구가 되어 지구를 구하는 용사로 거듭나려나? 그런 판타지가 실현되지 말란 법은 없지. 세상모르고 잠든 세 아이 역시 자신들이 그린 그림의 세계로 들어가 주인공들과 신나게 모험 중일지도 모른다. 그림이 그려진 놀이터나 그림 속 주인공들, 잠든 삼 남매, 삼 남매에게 초대받은 나 역시 오늘 밤은 상상 속에서 마음껏 놀게 됐다. 현실과 상상, 어른과 아이라는 경계를 모두 내던지고 함께 노는 것이다. 아아, 졸리다.
--- p.153, 「동심의 초대」 중에서
아이들의 기록을 모으고 매만지는 일은 동심의 숲속을 노니는 일이었다. 햇볕도 있고 동물도 나타나고 새들도 지저귀고 더러 비도 내리고 폭풍우도 치지만 샘물도 흐르고 아름다운 꽃이 피고 바람이 불고 아름다운 노을도 지더니 캄캄한 밤 한가운데 별빛이 빛나는 생명과 사랑이 가득한 유년의 숲이었다. 가만히 어른의 눈을 감으면 동심의 숲속에 서 있었다.
--- p.244, 「어른의 눈을 감으면」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