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대, 특히 인공지능 및 클라우드와 같은 혁신적인 기술이 산업을 이끌어가는 현재와 미래 세대에서의 디자인은 ‘무엇What’보다 ‘어떻게How’에 가깝고 ‘왜Why’가 중요하다. 단순한 결과물보다 어떠한 결과를 도출하기 위한 과정과 이유가 디자인인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 사람과 사람, 사람과 기술 그리고 기술과 기술을 연결해주는 일이 바로 디자인의 역할이다. 인공지능은 디자이너와 서로 대립되는 관계가 아니라, 디자이너를 도와주는 상호보완적 관계이다. 인공지능은 디자인의 연결이라는 ‘선’적인 기능에 날개를 달아줄 가장 발전된 도구이다. 그렇기에 ‘인공지능이 디자이너를 대체할 것인가?’라는 질문보다, ‘인공지능을 통해 디자이너가 도달할 수 있는 한계는 어디인가?’라는 질문이 더 적절할지 모른다. 디지털카메라와 스마트폰의 등장이 이전 필름 카메라 시대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많은 훌륭한 사진가와 명작들을 배출해낸 것처럼 말이다.
--- 「AI는 디자이너를 대체할 수 있을까?」 중에서
인공지능 시대 디자이너의 목표는 ‘미친 퀄리티’여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비디자이너와 디자이너 사이의 경계는 무의미해진다. 미친 퀄리티에 도달하려면 창의성 및 전략적 사고와 같은, 인공지능이 쉽게 복제할 수 없는 인간만의 고유한 능력이 절대적이다. 또한 일반 수준에서 만족해 작업을 완료하거나 디자인 툴의 숙련도를 쌓는 데 목표를 두어서도 안 된다. 사고의 틀을 깨는 법, 생각을 언어로 구현하는 법, 디자인 프로세스를 활용해 디자인을 발전시키는 법, 다른 사람들과 일하는 법 그리고 인공지능과 함께 일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마치 과거 그리스 철학자들이 사물의 본질을 깨우치기 위해 수많은 대화를 거쳤듯이, 우리는 인공지능과의 대화를 통해 생각을 발전시키고 이를 바탕으로 디자인을 개념적 존재에서 보고 만지고 사용할 수 있는 실존적 존재로 승화해야 한다. 또한 디자인의 성패를 가르는 기준은 큰 부분이 아닌 디테일에서 온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결국 상상 속 아이디어를 실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남들이 따라오기 힘든 디테일을 더해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 디자인만이 사용자들을 감동시킬 수 있다.
--- 「인공지능 시대, ‘미친 퀄리티’가 답이다」 중에서
중요한 점은 직장을 선택할 때 3가지 기준에서 무엇에 더 큰 점수를 줄 것인가이다. 선택의 순간이 왔을 때 자신이 가장 중요시하는 기준을 정해야 한다. 선택의 기준은 각자 다르겠지만,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준은 조직의 ‘성장 가능성’이다. 성장하는 조직에서는 내가 가는 곳이 곧 길이 되고, 성장의 과실을 나와 회사가 상대적으로 동등하게 나눠 가질 수 있다. 이미 완벽하게 자리가 잡힌 비즈니스나 조직의 경우, 내가 하게 될 일은 개척이 아닌 유지·보수일 때가 많다. 성과가 나더라도 정해진 만큼의 이득 외에는 얻기 어렵다. 그런 만큼 내가 열심히 했을 때 돌아올 결과가 가장 큰 기준은 결국 성장 가능성이다.
--- 「좋은 직장을 고르는 나만의 우선순위」 중에서
전통적으로 우리는 자신과 회사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 각고의 노력으로 명문 대학을 가려는 가장 큰 이유는 결국 좋은 회사에 취업한다는 최종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다. 일류 기업에 들어가야 가족과 친구들 사이에서 면이 살고, 안정적으로 돈도 벌고 가정을 이룰 수 있다는 일반적인 인식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년도 보장되어, 열심히 살면 부족하지 않은 노후 생활을 즐길 수 있다는 희망이 있다. 하지만 우리의 기대 수명이 늘어가는 데 비해 정년은 짧아져만 가고, 이제는 40대만 되어도 실직에 대한 위기의식을 느껴야 한다. 정말 많은 퇴직자들이 회사를 관두고 나면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막막한 하루하루를 보낸다. 나는 이를 ‘전통적 직장의 배신’이라 생각한다. 안정된 삶의 희망이 현실이 아님을 자각하고 나서 느끼는 허탈함은 배신감 외에는 설명하기 어렵다. 하지만 직장의 배신에 마냥 넋 놓고 있을 수만은 없지 않은가? 버려지기 싫다면 당신이 먼저 현명하게 떠나는 법도 생각해야 한다.
--- 「회사는 언제 관두는 게 좋을까?」 중에서
내가 처음 글을 쓴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가장 큰 요인은 열등감 때문이었다. 외국에서 디자이너 생활을 하며 표현과 논리의 부족함에서 오는 좌절과 편견이 너무 싫었다. 한편으로는 말하기와 글쓰기가 몸에 배어 있는 그들의 교육 방식이 부러웠다. 내가 한국의 주입식 교육을 온몸으로 경험하며 자란 세대임을 한탄했다. 그래서 출근 전 새벽에 회사 근처 카페에서 홀로 〈뉴욕 타임스〉를 읽고 짧은 에세이를 매일 썼던 것이 내 글쓰기의 시작이었다. 운동을 꾸준히 하면 건강해지듯, 글을 쓰면서 논리적으로 사고하는 법과 정제된 말로 표현하는 방법을 익혔다.
글쓰기는 사유의 형상화라 생각한다. 우리는 매일 수없이 많은 생각을 한다. 대부분은 기억할 만한 가치가 없거나 짧게 스치는 편린인 경우가 많은데, 이들은 휘발성이 강해 쉽게 내 마음과 머릿속에서 사라진다. 그런데 이러한 조각들도 글로 변환하면 (글의 길이와 무관하게) 소중한 기록이 된다. 생각이 기록이 되는 순간부터 이는 일종의 ‘데이터’로 활용이 가능해진다. 이 데이터를 통해 잊고 있던 기억 혹은 감각으로 회귀하거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발전시킬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생각나는 것이 있으면 지체 없이 노트 앱을 켜고 메모하는 습관이 생겼다. 책을 쓸 때도 평소에 한두 줄 혹은 몇 마디 적어놓은 키워드들을 활용해 한 편의 글로, 하나의 책으로 발전시켜 나갔다.
--- 「인생을 바꾸는 꾸준한 글쓰기의 힘」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