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살던 노인이 죽은 후 비어 있던 옆집에, 그의손자뻘이라는 내 나이 또래 소년이 이사 온 것은 아직 내 부모님이 살아계시던 무렵이었다. 그의 마을의 생업인 에프랠의 양식을 익히며, 그 집에 정착하게 되었고, 근처에 같은 또래가 없었던 것도 있고 해서 그와 나는 곧 친해졌다. 기분이 좋을때의 그는 온화한 표정을 지었으나 대개의 경우 그의 표정은 나로선 읽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가끔은 그 읽을 수 없는 얼굴이 등골이 오싹하도록 차가워 보일 때가 있었다. 어쩌면 그는 사실 나를 증오하는 것이 아닐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한번은 여느때와 같이 가벼운 장난으로 몸싸움을 하다가 그가 내 목을 조른 적이 있다.
--- p.131
파멸로 치닫게 된다는거
아마 느끼고 있었을거야
그런데 말야...
그런거 전혀 상관없었어
알아?
전신에 웅웅 울리는
그 내부의 목소리...
절대(絶對)명령.
다른길이 없어
그땐 이미,,,
자기손에서 떠난거야
우습지...
그건 뭘까
숙명(宿命)?'>
...하긴 뭐
아무렴어때'우린 곧 사라질 건데
무(無)로 돌아간다구...
기분 좋은 일이잖아?
--- p.173-175
음. 이 이야기는요...(물론 모든 작품이 어느 정도는 다 그렇겠지만) 핀트를 어디에 맞추느냐에 따라 '무엇에 대한 얘기'인지가 사람에 따라 상당히 다르게 읽히지 않을까...하고 생각합니다. 여러 가지 레이어들이 모여서 이루어져 있고, 저 개인적으로는 그 하나 하나가 다 관심사인지라, 나름대로의 만드는 입장에서의 즐거움이 있었습니다.
--- 작가의 말 중에서
왜냐면... 인간이란 자기 자신에게서 벗어 날 수가 없으므로. 그걸 뛰어 넘는 것은 그토록이나 불가능한 것이므로. 눈을 감고, 전혀 다른 인간인 척 스스로를 속여봤자- 눈을 뜬 순간, 무섭도록 정확히 바로 그 자리에 돌아 와 있다. 그래서... 이것이 종말이다.
--- p. 1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