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안으로 안 나가면 강제집행 합니다.”
나는 강제집행 한다는 말을 듣고 일주일 동안 끙끙 앓아누웠다. 방어수단도 몰랐고 도움을 요청할 이웃도 없었다. 가장 무섭고 두려운 시기였다.
시간이 많이 흘러서 지금 나는 부동산경매를 직업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투자생활 10여 년 동안 내 입으로 ‘강제집행’이라는 말은 절대 하지 않았다. 이유는 행여 상대방이 그때의 나처럼 힘들어할까 봐서다.
너무나 갑작스럽게 경매를 당하고 난 뒤 나는 경매를 배우고 싶었다. 등기부등본조차 볼 줄 몰라서 당한 내 자신이 미웠고 한심했다. 서점에서 책을 찾아봤지만 경매 책이 지금처럼 많지 않을 때였다. 신태수 씨가 쓴 『경매의 함정』이라는 책을 어렵게 구해서 읽고 또 읽었다. 마침 명지대학교 증권보험대학원에 특별과정으로 ‘경매학교’가 생긴다는 소식을 우연히 듣게 됐다. ---p.15
경매를 오래 하신 분들이 많이 쓰는 방법은 ‘들이대’ 정신으로 초인종부터 누르는 것이다. 안에서 누구냐고 물어볼 때 큰 소리로 “법원에서 나왔습니다.”라고 말하면 대부분 문을 열어준다. 그때 왼발이나 오른발을 힘차게 밀어 넣고 “아 네, 법원경매 때문에 왔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면 십중팔구는 욕을 해대거나 인상을 쓰면서 문을 닫으려 한다.
그때 왼발이나 오른발을 들이민 틈새를 이용해서 그 집의 구조와 습기 문제, 그리고 등이나 벽지, 장판, 싱크대 교체 여부를 짧은 시간 안에 살펴보아야 한다. 문을 닫으려 하는 힘 때문에 발이 아파오더라도, 인상을 쓰면서 험한 욕을 하더라도 참아내야 한다. ---p.40
“교수님, 이 물건 좀 봐주세요. 감정가가 4억인데 51퍼센트까지 떨어져서 최저매각금액이 2억이 조금 넘어요. 임대료가 보증금 1억이고 월세도 400만 원이 넘게 나오는데, 그냥 이거 최저가에 한번 들어가 볼까요?”
“네? 도대체 정신이 있는 겁니까, 없는 겁니까?”
순간 나는 내가 교수라는 것을 잊고서 나이 지긋하신 그분에게 야단을 쳤다. 주변에 있던 법학원 교수님들과 수강생들이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지만, 나는 개의치 않고 큰 소리로 이 물건의 함정을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말씀드렸다. 왕거미가 거미줄을 치고서 먹이를 기다리고 있는 형국이라고 한참을 설명해가며 이해시켜 드렸다.
엉터리로 권리신고한 것을 그대로 믿고 현장에 가보지도 않은 채 무턱대고 입찰하는 사람들은, 나중에 낙찰을 받고 나서야 자신이 왕거미가 쳐놓은 함정에 빠진 걸 알게 된다. 그때는 이미 늦었다. 입찰보증금을 몰수당한 뒤에야 함정을 빠져나올 수 있는 것이다. ---p58
나는 낙찰받은 집에 처음 찾아가서는 항상 무릎을 꿇고 않는다. 그러면 세 가지 유형으로 반응이 나타난다. 첫 번째, 쳐다보지도 않고 무조건 자기 이야기만 하는 사람. 이런 경우 곧바로 자세를 양반다리로 고쳐 앉는다. 이유는? 그 사람 이야기가 다 끝날 때까지 무릎을 꿇고 듣다 보면 나중엔 119에 실려 가는 불상사도 생길 수도 있으니까.
두 번째, 무조건 자기가 당면한 이야기를 하다가 내가 무릎을 꿇고 있는 것을 보고서는 편하게 앉으라고 하는 분. 이런 분들은 이사비용만 잘 합의하면 큰 문제없이 한두 달 안에 명도가 이루어진다.
세 번째, 내가 무릎을 꿇고 있는 것을 보자마자 편하게 앉으라고 하고서는 차를 대접하는 분. 명도 이야기를 하러 가보면 의외로 이런 분들이 상당히 많다. 실제로 전 소유자나 세입자들이 칼 들고 대들 것이라고 많이들 생각하지만 그런 경우는 1퍼센트도 안 된다.
그러니 낙찰받은 집에 처음부터 겁먹고 들어갈 필요는 없다. 다만, 집에 들어가서는 먼저 이야기를 꺼내기보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최대한 예의를 갖춰 듣고, 그 처지를 푸근히 감싸주는 마음으로 대답하는 게 좋다. 명도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쉽게 풀어질 수도 있고 어렵게 꼬일 수도 있다. 성급하게 언제 나갈지 어떻게 나갈지부터 확인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왜냐하면 당신의 지위는 낙찰자이지 새로운 집주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p.166
“안녕하세요, 아저씨!”
강제집행 날짜를 받아놓고 그 집에 갔더니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은 나를 더욱 반겨 맞는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강제집행 날짜는 다가오는데, 전 주인은 이번에도 기도원에 가서 이 불쌍한(?) 사람을 위해 기도를 하는지 도통 만나볼 수도 없고 전화도 받지를 않는다.
강제집행을 하루 앞두고 나는 결국, 나를 삼촌처럼 따르는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면 안 될 것 같아 집행관에게 욕을 먹어가면서 강제집행을 취소했다. 집행 일자에 맞춰 집행 차량에 집행 노무자까지 다 구해놨더니 이제 와서 취소라니, 그것도 집행 하루 전날에 취소라니. 담당했던 집행관 입장에서는 당연히 화가 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얼마나 화가 났으면 내가 다니는 명지경매 회사에 전화를 걸어 “도대체 야생화란 놈은 뭐하는 놈이야!”고 따져 물었겠는가. 우여곡절 끝에 강제집행을 취소하고 나서 두 달 뒤, 나는 낙찰금액에서 500만 원을 더 받고 전 주인에게 소유권을 이전시켜 주었다.
그 사건 때문에 “병신, 그거 하나 해결 못해?”라는 핀잔을 무수히 들었지만, 지금까지도 내 생각은 단연코 ‘잘했다’이다. ‘그래 중렬아, 잘한 일이야, 진짜 잘했다’라는 말을 되새기며 오늘도 경매법정을 기웃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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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경매를 쉽게 보고 접근하지 마시라. 울고 있는 사람들의 울음소리는 안 들리는가? 한숨 쉬는 사람들의 한숨소리가 안 들리는가? 좋은 물건을 낙찰받아 수익을 얻기 위해서는 철저한 임장은 물론이고, 냉정한 눈으로 체계적인 공부를 병행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럿이 함께 공부하는 그룹이 있어야 하고, 서로를 격려하면서 관심 있는 물건에 대해 집중 조사해야 한다. 또한 그 물건을 누가 얼마의 가격으로 낙찰받아 가는지, 배당 때 그 물건의 이해관계인들이 얼마나 배당을 받아 가는지를 철저하게 조사해야 한다. 그렇게 쌓인 자료들이 풍성해질 때, 그때서야 경매를 통한 수익도 많아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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