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는 사실의 잠정적인 선택과 그 선택을 이끌어준 잠정적인 해석 - 그것이 자신에 의한 것이건 다른 사람에 의한 것이건 간에 -에서 출발한다. 그가 연구하는 동안 사실의 해석 그리고 사실의 선택 및 정돈 그 두 가지는 이러저러한 상호작용을 통해서 미묘한 그리고 아마도 얼마간 의식되지 못하는 변화들을 겪는다. 그리고 이 상호작용에는 현재와 과거 사이의 상호관계도 역시 포함되는데, 왜냐하면 역사가는 현재의 일부이며 사실은 과거에 속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사실을 가지지 못한 역사가는 뿌리가 없는 쓸모없는 존재다. 자신의 역사가를 가지지 못한 사실은 죽은 것이며 무의미한 것이다. 따라서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나의 첫 번째 대답은, 역사란 역사가와 그의 사실들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의 과정,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a continuous process of interaction between the historian and his facts, an unending dialogue between the present and the past)라는 것이다.
--- p.50, ---pp.8-22
그렇기 때문에 루이스 네이미어 경이 나에게 강령이나 이상을 피하라고 훈계할 때, 오크셔트 교수가 나에게 우리는 특별히 어떤 곳을 향해서 항해하고 있는 것이 아니므로 아무도 배를 흔들지 못하게 살펴보는 일만이 중요하다고 말할 때, 포퍼 교수가 하찮은 점진적 공학이라는 엔진의 힘으로 애지중지하는 T자형 고물차를 길 위로 계속 끌고 다니기를 원할 때, 트레버-로퍼 교수가 소리쳐대는 급진주의자들의 콧잔등을 후려갈길 때, 모리슨 교수가 역사는 건전한 보수적인 정신으로 쓰여져야 한다고 주장할 때, 나는 격동하는 세계, 진통하는 세계를 내다보고 나서 진부하기조차 한 어느 위대한 과학자의 말을 빌려서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 '그래도 - 그것은 움직인다.'
--- p.230
그러나 나를 가장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영어사용권 세계의 지식인들과 정치사상가들 사이에서 이성에 대한 신념이 약화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아니라, 끊임없이 움직이는 세계에 대한 그 충만한 감각이 상실되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언뜻보기에는 역설적인 것처럼 생각된다; 왜냐하면 우리 주변에서 진행되는 변화에 관한 피상적인 이야기들이 요즘처럼 자주 들렸던 적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변화가 더 이상 성취로, 기회로, 진보로 생각되지 않고 두려움의 대상으로 생각된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정치 및 경제 전문가들이 처방을 내릴 때, 그들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것이란 급진적이고 원대한 이념은 믿지 말라는 훈계, 혁명의 냄새가 나는 것은 모조리 피하라는 훈계, 또는 - 만일 우리가 전진할 수밖에 없다면 - 가능한 한 천천히 조심스럽게 전진하라는 훈계 이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
--- p.229-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