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풍요로운 환경에서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고 있다는 부모님들의 생각과 달리, 아이들은 사춘기가 되면서 외로워합니다. 첫 번째 이유는 바로 형제가 없거나 아주 적다는 것입니다.
“아이라고는 하나밖에 없는데, 그 아이가 힘들게 살면 어떡하죠?”
이것은 모든 부모들의 걱정입니다.
“자식이라고는 나 하나밖에 없는데, 부모를 기쁘게 해 주지 못하면 어떡하죠?”
이것은 모든 아이들의 걱정입니다.
자식이 하나 아니면 둘인 사회에서 부모와 자식에게 의지할 대상이 오직 서로밖에 없다면 이런 걱정은 정말 큰일이 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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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 모일 때마다 애라곤 저밖에 없으니, 아주 힘들어요. 배운 거 해 봐라, 재롱 떨어 봐라 해서 10년간 리사이틀 했지 뭐예요. 이 식구들이 모두 저만 바라보고, 예뻐하고, 희망이라고 하니까 너무 힘들어요. 부담스럽고, 잘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고. 사는 데 자유가 없어요. 내 맘대로 할 수가 없고 늘 가족들을 생각해야 해요.
그런데 외가나 친가 식구들은 내가 사랑만 듬뿍 받는다, 그런 생각만 하는 것 같아요. 저도 외롭고, 힘들고, 부담스럽고, 이 가족에서 벗어나고 싶어요.”
---p.32
“이분은 저의 생물학적 모친인데 저를 낳고 먹여 주고 입혀 주고 학교 다니라고 돈 대주는 것이 다예요. 이분은 저를 잘 몰라요. 제가 무슨 고민을 하는지, 뭘 좋아하는지, 뭘 하고 싶어 하는지 몰라요.
---p.39
사춘기가 되면 아이들은 변모하는 신체, 내면의 변화들로 위축됩니다. 그런 위축과 어색함, 낯섦에 대해 아이들의 방어 기제는 침묵, 반항 등 다양합니다. 이런 방어의 갑옷을 풀기 위해 필요한 것은 격려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격려가 필요한 중학생에게 꾸중을 해 댑니다. 잔뜩 혼을 내고 난 다음에 기를 펴라고 하지요. 이것은 병 주고 약 주는 것이라고도 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되면 있던 자신감도 사라집니다.
---p.51
요즘 아이들은 이전보다 훨씬 더 자신들을 알아주길 원합니다. 왕자님, 공주님의 이름도 모르는 선생님들이 섭섭할 뿐입니다. 집에서는 주인공, 학교 가면 엑스트라! 이 역할의 전환에 아이들이 힘들 수 있지요. 그 마음, 짐작이 가시나요?
학교라는 것이 여러 아이들이 번갈아가면서 주인공으로 나오는 드라마 시리즈였으면 좋겠지만, 학교가 연출하는 드라마는 3년 내내 주인공이 크게 바뀌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3년 내내 엑스트라로 다니는 아이들은 재미가 있을 리 없지요.
---p.55
무시당하는 느낌을 가질 때 사람들이 흔히 쓰는 방어 기제는 부인하고, 오히려 과장해서 대처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아이들이 말하는 ‘허세 쩐다’의 피상적인 심리 기제입니다. 큰소리쳐서 말 못하게 하고, 두고 보라고 하고, 까칠한 분위기 만들고 등등. 이는 아이들이 싫어서이기도 하지만 두려워서 만드는 분위기이기도 합니다.
최대한 허세를 부려서 순간순간 모면함으로써 말로 받는 심각한 자기애적 손상을 줄여 보려고 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아예 그런 분위기를 선제적으로 만들어서, 즉 선빵을 날려서 근접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침울하고 까칠하다가, 또 어떤 때는 큰소리치고 걱정하지 말라며 기세등등하게 나가고, 이런 왔다갔다하는 상태가 사춘기 기분의 특징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것을 알아채는 것도 싫어하고, 자신이 침울하다는 것을 인정하기도 싫어합니다.
---pp.66-67
빈곤 탈출이나 계층 이동을 꿈꾸던 부모 세대에게는 목표를 이루기 위한 인내심이 중요한 덕목일 수 있었지만 자기실현과 재미있고 행복한 인생이 목표인 지금 세대에게는 흥미?의미가 중요한 가치가 됩니다. 흥미나 의미를 발견할 수 있게 돕지 않으면서 인내심을 발휘하라고 하면 동기 부여가 안 되는 것이지요. 한마디로 말로는 사랑한다고 하면서 고통스러운 과업을 부과하는 부모가 이해되지 않는 것입니다.
---p.83
이들은 변화된 몸에 대해 여러 가지로 적응하려 애쓰는데, 정작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새로이 변화된 몸에 적응할 기회를 주지 않습니다. 교실에 오랫동안 앉혀 놓고 하루 종일 책상 주변만 맴돌게 하고 있습니다. 부모님들 중에는 몸 쓰는 데 들이는 시간을 머리 쓰는 데 들이는 시간에 비해 아까워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런 부모의 아이들일수록 몸 쓰는 것을 싫어해서 자신의 몸을 쓰는 대신 게임 아바타의 몸을 쓰고 몸이 아니라 손가락만 쓰고, 그러다 정작 자신의 몸 쓰임에 대한 자신감을 잃게 되어 수줍어하거나 부끄러움이 많은 아이가 됩니다.
---p.111
제가 만나 본 안타까운 헛똑똑 부모들은 대부분 사회적으로는 어느 정도 성공한 분들이었는데, 자녀들은 모두 규칙을 잘 어기고 속임수를 쓰거나 혹은 적지 않은 비행을 이미 저질러 학교에서 큰 문제가 되고 있거나 무기력해서 의욕이 없고 주변의 눈치만 보고 있었습니다. 부모님들은 아이의 이런 상태가 전혀 이해할 수 없다고 이야기하고, 아이들은 어차피 부모와는 대화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많은 아이들이 “우리 부모는 위선적”이라고 생각하고 있기도 했습니다.
---p.233
빈틈이 없고 항상 매사에 옳기만 한 부모 밑에서는 부모가 기대하는 것만큼 훌륭한 아이가 자라지 않습니다. 자녀에게 엄격한 도덕적 잣대를 요구하고 실수를 용납하지 않으니, 아이들 입장에서는 자신의 잘못을 숨기기에 급급하고, 그러다 보니 거짓말이 늘기도 하고, 혼나는 것을 두려워하다가 어느 날부터는 아예 대들기 시작하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행동을 올바로 하는 아이는 없습니다. 모든 행동을 올바로 하기를 기대하는 부모님으로부터 매번 혼나면서 아이들 마음에는 미움과 죄책감이 동시에 쌓여 갑니다. 자신감을 잃게 되지요. 부모가 하는 이야기 중에 틀린 것은 없으니 오히려 아이들은 부모가 더 밉고 무력감을 느끼게 됩니다.
---pp.236-2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