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토루는 조금 기다리는 건 아무 상관없었다. 요즘은 편리한 시대라 바로 문자나 라인 메신저로 연락을 취해 용건을 전달할 수 있다. 다른 사람에게는 편리한 기능일 테지만, 사토루는 왠지 그런 데 흥미가 없었다. 하지만 그게 없으면 회사나 업무 관계자에게 피해를 끼친다고 하니, 어쩔 수 없이 강제로 휴대전화를 들고 다니는 기분이었다.
혼자 있는 게 고통스럽지 않은 이유는, 어머니에게는 미안하지만, 어린 시절의 영향일지 모른다. 사토루는 옛날에 흔히 말하던 ‘열쇠아이(부모가 일을 하기 때문에 늘 집 열쇠를 가지고 다니는 아이)’였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세상을 일찍 뜬 후, 여자 혼자 몸으로 외아들을 키우기 위해 근처 슈퍼마켓에서 점원으로 일하고, 작은 회사에서 경리 업무도 보조하며 하루 종일 바쁘게 일해야 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아침밥이 항상 식탁 위에 차려져 있었고, 방과 후에는 학교에서 돌아와서 아무도 없는 아파트 집에서 좋아하는 만화나 조립식 모형 장난감을 친구 삼아 놀곤 했다. 저녁 먹을 시간에 맞춰서 어머니가 가게 휴식 시간을 이용해 팔다 남은 도시락이나 할인하는 생선구이 등을 들고 집에 왔지만, 금방 다시 가게로 돌아가야 했다.
그래서 어머니와도 대화할 시간이 거의 없었다. 밖에서 친구들과 놀다가도 어머니의 귀가 시간에 맞춰서 자기 혼자 집으로 먼저 돌아가야 했다. 놀다가 갑자기 사라지거나 숨바꼭질 술래인데 먼저 가버리니…… 친구들에게는 제멋대로 구는 녀석으로 보였을지 모른다.
언제든 서로 연락할 수 있는 환경은, 부끄러운 얘기지만, 어른이 된 지금도 별로 익숙지 않다. 업무 외에는 사토루가 먼저 연락하는 경우는 좀처럼 없다. 그렇더라도 요즘 같은 시대에 그런 주장만 고집할 수는 없을 테다. 자기도 모르는 새에 서서히 스며들고 있겠지….
--- p.12~13
오후에 서둘러 퇴근한 사토루는 그녀가 올지 안 올지 모르는 불안감을 안고 피아노로 향했다. 며칠간의 피로 때문에 현기증을 느끼면서도 히로오까지 어슬렁어슬렁 걸어갔는데, 피아노가 가까워질수록 긴장감이 높아져서 오히려 머리는 더 맑아졌다. 사토루는 기도하는 심정으로 가게 유리 너머로 안을 힐끗 들여다봤다. 있다!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다행이야! 안도감이 가슴속으로 퍼져갔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오래 전에 읽었던 옛날이야기 내용이 떠오르기도 했다. 그 이야기는 틀림없이 있어야 할 그녀가 지장보살이 되어 앉아 있었다는 결말이었다. 왜 하필 이런 순간에 그런 이야기가 떠오를까. 어쨌든 그녀가 있다. 마냥 기뻤다. 다행히 그녀 주변 테이블은 비어 있었다. 시선을 느꼈는지 미유키가 이쪽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오랜만이라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사토루는 그녀 옆에 서서,
“여기, 앉아도 될까요?”
라고 떨리는 목소리로 바보처럼 묻고 말았다. 지난번에 그녀를 만났을 때는 아무렇지 않게 얘기했으면서…….
“물론이죠. 앉으세요.”
대답한 그녀는 웃음을 참느라 그런지 묘하게 진지한 표정이었다.
“철야를 계속하다 오늘 오후에야 겨우 일이 일단락됐어요.”
라고 말한 사토루는 갑자기 자기 모습이 부끄러워져서, 얼른 사과했다.
--- p.46~47
이런 생각이 든 까닭은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오사카까지 왔기 때문일지 모른다. 그러나 오로지 일에만 집중해서 뇌를 활성화시킬 작정인데, 생밤의 속껍질처럼 미유키 생각이 머릿속에서 벗겨질 줄을 몰랐다. 이번 주에는 아무래도 못 만날 것 같은 불안감이 몰려왔다. 아무리 애를 써도 산소 부족으로 고지대에서 꼼짝 못하는 등반가가 된 심정이었다.
--- p.74
5시 반이 되었다. 조금 이르지만, 피아노로 향했다. 밖에서 가게 안을 봤는데, 미유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안으로 들어가 차를 마시며 고개를 숙이고 기다렸다. 입구에서 인기척이 나면, 바로 얼굴을 들었다 다른 사람이면 실망한 듯이 고개를 숙이기를 반복했다. 누가 그런 모습을 봤으면, 이상한 녀석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런데 고개 숙인 시야 끝에 베이지색 에나멜 구두가 멈춰 섰다.
“죄송해요, 늦어서.”
이 목소리! 2주 동안 간절히 기다렸던 순간이었다.
사토루는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왜 그런지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미유키는 천천히 옆자리에 앉아 커피를 시키더니, 사토루에게 아무 말도 시키지 않았다.
“2주 동안이나 정말 죄송했습니다. 매주 왔어요?”
눈물이 번진 얼굴을 어떻게든 감추려고 애쓰며 미유키에게 물었다.
“네, 변함없이 여기 들렀고, 사토루 씨가 안 올 것 같아서 적당히 시간 보내다 돌아갔어요.”
“죄송합니다만, 지난주에 혹시 다카키가 뒤늦게 무슨 소식을 전하러 오지 않았나요?”
미유키는 순간적으로 당황한 표정을 보였지만, 얼른 추스르고 말했다.
(중략)
메구로 거리에서 간파치 순환도로를 우회전해서 바로 제3게이힌으로 접어들었다. 지카사키에서 가마쿠라 방면으로 향했고, 도중에 갓길에 차를 세우고 바다를 바라보았다. 남들 눈에는 어색한 두 사람의 분위기로 보아 연인 사이처럼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죄송해요. 이런 배기가스와 먼지 속에서 검게 가라앉은 바다를 봐야 아무 재미도 없을 텐데.”
그러자 그녀가 바다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바다가 파랗게 빛나지 않아도, 공기가 탁해도, 도로가 자동차 때문에 시끄러워도 괜찮아요. 신경 쓸 거 없어요. 그 덕분에 빛나는 바다의 아름다움과 고마움을 아는 거니까.”
무슨 뜻인지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달관한 듯한 미유키의 중얼거림이 사토루의 마음을 흔들었다.
--- p.133~136
사토루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한동안 물끄러미 그녀의 뒷모습만 바라봤다. 결심한 듯 걸음을 내딛으며 미유키 앞으로 돌아가서 멈췄다. 그리고 얼굴을 가까이 대며, “여기, 앉아도 될까요?” 하고 피아노에서 데이트할 때처럼 말을 건넸다. 창밖을 바라보고 있던 미유키가 천천히 사토루에게 시선을 돌렸다. 사토루의 얼굴을 한참동안 지그시 쳐다보는 듯했지만, 아무 감정도 깃들지 않은 눈빛이었다. 사토루의 얼굴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참으려 애써도 결국 소리까지 나오고 말았다. 사토루는 미유키 앞에서 한동안 소리 내어 울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미유키가 갑자기 사토루의 얼굴로 손을 뻗었다. 눈물을 닦아주려는 것 같았다. 마치 쇼난 바다에서 그랬던 것처럼 지금 그녀는 사토루의 눈물을 닦아주려 하고 있다. 사토루의 눈물은 그칠 줄을 몰랐다.
--- p.178~1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