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5월의 어느 푸르른 날, 녹음을 만끽하기도 전에 ‘메르스’라는 엄청난 괴물이 등장합니다. 그 파괴력이 생각보다 엄청나서, 온 세상 사람이 공포에 떨고 두려워하며 서로를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온갖 신문과 방송, 인터넷 포털 등에서는 이를 부채질하듯 메르스, 메르스 외쳐대고 있고, 무방비로 살아온 사람들은 새 바이러스의 등장에 그야말로 속수무책입니다.
많은 생각이 듭니다. 이 세상에 메르스보다 무서운 게 없는 것도 아닐진대, 혼란의 와중일수록 서로를 믿고 의지해야 할진대, 우리는 그저 공포심의 포로가 된 채 상대에게 책임을 떠넘기며 남의 탓만 하고 있습니다.
감기는 조금 아프다 보면 곧 언제 그랬냐는 듯 지나갑니다. 폭풍이 지나간 후 생채기를 남기지 않으려면, 자신을 믿고 자신과 같이 타인을 믿어주어야 합니다. 제아무리 무서운 바이러스라 해도 사람과 사람 사이에 형성된 두터운 신뢰와 사랑만큼은 뚫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이혼율과 자살률이 손가락 안에 드는 나라입니다. 가치관이 많이 달라져서 이혼이 흠이 안 되는 세상이 되었고, 오히려 이혼해서 더 당당해지고 잘 나가는 사람들도 많아졌습니다. 그래서 언뜻 보기에는 세상에서 가장 자유롭고 행복하게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분명 그들에게도 보이지 않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을 것입니다.
결혼한 남녀 사이에서도 이는 마찬가지입니다. 서로를 진심으로 신뢰하고 의지하고 사랑하지 않으면, 모래성처럼 쉽게 허물어지고 맙니다.
이 책을 쓰는 내내 바로 이러한 점들을 염두에 두었습니다. 다소 가벼워 보이는 부부 사이에도 그들 방식대로의 끈끈한 사랑과 신뢰가 존재함을 알리고 싶었고, 그것을 진중하고 무거운 접근방식이 아니라 경쾌하고 코믹하게 터치해 보려고 애썼습니다.
사람이 백 년을 산다면, 이제 그 백 년의 반을 더 산 나이가 됐습니다.
누구나 그러하듯 돌아보면 후회와 아쉬움이 더 큽니다. 어제인 듯한 날들이 1년 아니, 10년 전의 일들일 만큼 시간이 정말 쏜 화살같이 달아났습니다. 이토록 빨리 달아나는 시간 안에서도, 뭔가 의미 있는 일들을 남기고 싶어 늘 안간힘을 써봅니다. 가끔 길을 잃고 헤매기도 하지만 포기하지 않는 한 길은 어디에도 있습니다.
지금 세상을 휘두르고 있는 메르스 역시 언젠가는 감기처럼 지나갈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또 그 두려웠던 날들과 기억들은 까맣게 잊은 채, 또다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살아가겠지요. 그러나 지금 당장에는 느끼지 못한다 해도 우울함, 외로움, 알 수 없는 두려움들은 감기 바이러스와는 다른 것입니다. 곧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사는 내내 껴안고 있어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맞습니다. 우리가 아껴야 할 것은 시간뿐입니다.
당신은 지금 사랑하는 사람이 옆에 있습니까?
사는 게 바빠서 매 순간 소중한 것을 잊고 사는 건 아닌지요?
오늘, 이 순간, 살아 있는 것이 기적입니다!
그러니 미루지 말고 사랑하십시오!
모쪼록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한 것임을 늘 기억하십시오.
오늘도 살아 있음에 감사드리며
5월의 힘든 어느 날, 영화감독 이제락
--- 본문 중에서
세상을 보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한다. 모든 만남을 우연으로 보는 것과 기적으로 보는 것이다.
이제락 감독과 나의 인연이 바로 그렇다. 영화와 재즈라는 각각 다른 분야의 일을 하면서도, 때로는 친 오누이같이, 때로는 친구같이 서로의 등을 토닥여주는 사이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그의 영화 [울 언니]의 주제가를 부르는 기쁨도 누렸다.
오랫동안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공연을 해야 했던 나로서는, 재즈보컬리스트로서의 자부심을 가질 때도 많았지만 힘들고 지칠 때도 많았다. 그럴 때마다 묵묵히 등 뒤에서 나를 응원해주고 지지해주던, 그의 따뜻한 인간성에 감동받곤 했다. 갈수록 메말라가는 세상 속에서 이런 기적 같은 인연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그런 점에서 나는 축복받은 사람이다.
그가 영화 일을 하는 틈틈이 시간을 쪼개 한 자 한 자 정성껏 써내려간 이 책 『남편을 보내는 100가지 방법』에서도, 인간을 바라보는 그만의 따뜻한 시선을 느낄 수 있다.
누구보다 서로를 사랑하지만, 사랑하는 만큼 미워하고, 미워하는 만큼 아파하고, 그러면서도 서로의 곁을 끝까지 지키려 하는 ‘부부’라는 이름의 또 다른 기적!
이제락 감독은 그들의 희로애락을 통해, 세상에 외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서로 포기하지 않는 한 어디에도 희망은 있다는 것을!
한번 잡았다 하면 끝까지 읽지 않고는 못 배길 통통 튀는 재미를 선사하는 동시에, 그는 이 책을 통해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경종을 울리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너무 쉽게 만나고 너무 쉽게 헤어지는 이 시대의 경박한 사랑에 대하여!
시종일관 웃음이 떠나지 않으면서도 마지막 책장을 덮는 순간, 그만이 엮어낼 수 있는 은유와 역설이 느껴져 가슴이 뭉클해진다.
그리고 새삼 배우에서 감독으로, 감독에서 작가로, 그리고 이제는 두 권의 전혀 다른 느낌의 책을 낸 소설가에 이르기까지, 여러 분야를 아우르는 그의 재능에 감탄하게 된다.
늘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하고 도전하는 이제락 감독의 눈부신 열정에 찬사를 보내며, 나 역시 정체되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으로 재즈와의 끝없는 수행의 길을 걸어갈 것이다. 언제나 재즈처럼!
웅산 (재즈보컬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