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크 로스팅 커피와의 조우로 나는 변하였다
종종 왜 이토록 커피에 빠져 있느냐는 질문을 받곤 한다.
기억은 지금으로부터 약 30년 전, 내가 30대 전반일 즈음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나는 커피를 좋아하기는 하였으나 특별히 철학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우연히 들른 카페에서 내온 커피가 나의 마음을 움직였던 것이 발단이었다. 그 커피는 그때까지 내가 알고 있던 커피를 훌쩍 뛰어넘는 것으로서 마치 숯처럼 볶은 커피콩을 갈아서 내린 것이었다. 그곳 사장님의 “커피는 강배전이 제일이다.”라고 하는 커피관에 빠져서 호기심이 발동하게 되었다.
처음 한 동안은 카페가 눈에 보이면 뛰어들어 갔고, 그러던 중 커피의 전문가 분들을 만나게 되었고, 나아가 필자 자신도 배전기를 만들어 보거나 세계 각지의 커피 산지에도 발을 디디게 되었다.
이렇게 필자의 본래 전문 분야가 아닌, 말하자면 사적인 흥미로 카페 전문 잡지인 《월간 카페 앤드 레스토랑》에서 2년에 걸쳐 연재할 수 있었던 것은 나의 전문인 공학이라고 하는 시야로 커피 연구에 몰두한 덕택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커피론은 항상 공학적, 과학적 시점에서 사고하는 것이다.
커피는 훌륭한 학문
내가 가나자와대학에서 커피에 관한 강의를 열었던 것도 커피를 새로운 학문으로서 다루고자 한 것이 계기였다. 1997년에 처음으로 가나자와대학의 교육 개방 센터에서 사회인을 중심으로 한 연 8회의 공개 강좌인 ‘커피학’을 개설하였다. 커피를 공학·경제·역사·의학·향(香)의 과학 등 다양한 측면에서 다루어 보고자 하는 생각으로 강좌를 개설하면서, 그때까지 필자가 쌓아왔던 폭넓은 인맥으로부터 큰 도움을 받았다. 커피 제조사, 카페의 사장님, 커피 수입에서 배전까지 총괄하여 매매하는 경영자, 때로는 유명한 커피 원산국의 대사관 직원들까지 실로 다방면의 사람들에 의한 커피 강의로서 파격적이지만 매우 즐거운 강좌를 열 수 있었다.
이 강좌가 발전하여 국립대학 8개교를 텔레비전 중계로 연결함으로써 동시에 8개 대학에서 수강할 수 있도록 한 적도 있었다. 또한, 이 강좌가 한층 더 발전하여 1999년부터는 전국 유일의 문부과학성 인정 수업 ‘커피의 세계’를 가나자와대학에서 개강하기에 이르렀다. 연 30회의 수업으로 4학점을 획득할 수 있다. 매년 150명 정원에 대하여 700명이나 응모할 정도의 인기 강좌가 되었다.
커피를 다양한 측면에서 학문화한 ‘커피의 세계’라는 수업은 지금까지의 수업과는 접근법이 반대이다. 대부분이 학문 분야로부터 그 세계를 보고자 하는 것에 반하여, 이 수업은 현실에서의 커피를 중심으로 많은 학문을 집중시킨 것이라고 해도 좋다.
나의 커피학 핵심은 허니컴 구조
필자가 커피를 과학화함에 있어서 그 핵심은, 커피의 생두를 배전하면 커피 원두의 내부가 벌집과 같은 구조, 즉 허니컴 구조가 된다는 것이다.
커피의 생두를 배전하면 콩의 수분이 빠져나가서 조직이 벌집과 같은 스펀지 형태가 된다. 이것을 허니컴 구조라고 한다.
필자는 금속이 피로하였을 때의 조직 연구를 전문으로 하였다. 그래서 조직의 형상에 흥미를 가지고 있는 필자의 눈이 배전한 후의 커피 원두의 조직을 현미경으로 보도록 만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 허니컴 구조란 0.01밀리미터 정도의 매우 작은 공동으로 고성능의 전자 현미경으로 관찰하면 이 공동의 벽에 돌기물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그 돌기물은 커피를 추출한 후에는 사라져 버린다. 즉 이 돌기물이란 클로로제닉산, 자당, 카페인, 단백질, 트리고넬린 등 몇백 종류나 되는 커피 성분이 부착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커피를 맛있게 내리기 위해서는 이 허니컴 구조를 항상 염두에 두고 있어야만 한다.
우선 배전(2장)에서는 어떻게 가지런한 허니컴 구조를 생성시킬지, 어떻게 하여 그 공동에 맛있는 성분을 부착시킬지가 중요하다. 성분에 따라서는 배전도에 의하여 휘발되어 버리거나 변화하는 경우가 충분히 있을 수 있다.
배전한 커피 원두의 보존 방법에서도 시간 경과와 함께 공동에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알 수 있다.
커피 원두를 갈아서 가루로 만들어도 이 공동은 남는다. 가루가 곱다고 해도 0.15밀리미터 정도의 크기이므로 그 속에는 공동이 100개 들어가는 것으로 계산된다. 커피콩은 절구로 찧는 것보다는 커팅하는 편이 좋다고 하는 것도 이 공동을 으깨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추출(3장)이라는 것은 이 공동에 뜨거운 물을 통과시켜 벽에 부착되어 있는 성분이나 공동 내의 휘발성 성분을 물에 녹여 내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공학, 과학이라고 하면 난해하다며 손사래를 치는 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위와 같은 내용을 머리 한 구석에 두고 이 책을 읽어나간다면 이해하기? 매우 쉬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읽어나갈수록 허니컴 구조가 필자의 머릿속에서 커피 과학의 한 줄기 굵은 씨실이 되어 있다는 것을 아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