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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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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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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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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0년 04월 19일
쪽수, 무게, 크기 560쪽 | 148*210*35mm
ISBN13 9788991010819
ISBN10 899101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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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과 지옥, 그 경계선에서의 사색과 불편한 글쓰기

1910년 8월 29일, 대한제국이 일본에 강제병합 되었습니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그 치욕의 날이 어언 100년이 되었습니다. 나는 구한말과 35년간의 일제 식민지 시대를 우리 역사의 개기일식기라고 부릅니다. 그렇습니다. 그 기간 동안 이 땅에는 태양이 사라지고 일장기가 펄럭였습니다.
국치國恥 100년을 맞아 번영 천년을 소망하면서 이 글을 썼습니다. 20년 남짓 역사와 철학을 담은 글쓰기 작업을 해오면서 길래 품었던 의혹을 해결하는 자구책이었습니다. 부끄럽다고 속죄양을 내세워놓고 진실을 외면하는 역사, 변명하는 역사에 일침을 가하는 작업이어서 글을 쓰는 동안 줄곧 속 아프고 불편했습니다. 그렇지만 제자신이 악역을 맡았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고름은 절대 살이 되지 않습니다. 언제고 누군가는 터트려서 새살이 돋게 해줘야 합니다.
이 글은 ‘변화에 잘 적응해야만 살아남는다’는 사회적 통념에 대한 반시대적 고찰의 결과물입니다. 주식옵션 얘기는 부단히 변동하는 금융시장이야말로 인간의 본성과 운명을 극명히 드러낼 수 있는 가장 적합한 무대장치라고 여겨서 수업료를 지불하며 얻은 소재입니다. 왜곡된 금융시장이야말로 ‘악마의 맷돌’입니다.
이 글을 쓰고 매만지는 3년 동안 참으로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습니다. 어렵사리 이야기를 끝낸 지금, 오래 묵은 체증을 밀어낸 상쾌함만큼이나 거북스러움이 남습니다. 참 불편한 글쓰기로군요. 오랫동안 한민족 문화원형 찾기를 해온 제가 이 글을 쓴 까닭은 오직 진실만이 오래가는 힘이라는 신념 때문이었습니다. 우리 모두가 혐오하는 이완용은 진실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하나의 아이콘일 뿐입니다. 속이 뒤틀리더라도 그를 냉정히 탐구하지 않고서는 당시의 진면목을 제대로 볼 수가 없습니다. 그를 미화하거나 재평가하고픈 마음은 털끝만큼도 없습니다.
나는 열린 민족주의, 진보적 민족주의의 가능성을 믿습니다. 따라서 백성을 돌보지 못한 구한말의 지배층은 냉정히 비판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제의 만행을 정당화하는 식민지 근대화론 같은 논조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공원의 꽃을 꺾는 자유가 아니라 꽃을 심는 자유의 가치를 중시하는 인문주의자니까요.
작가는 그 정신적 혈액형이 O형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누구에게나 영혼의 피를 나눠줄 수가 있습니다. 제 영혼과 작가정신 또한 O형이길 소망합니다.

2010년 3월 1일 기산문연에서 김종록 --- '저자의 말' 중에서

“여러분, 더 충격적이고 코미디 같은 일화 하나 소개할까요? 이처럼 나약했던 조선이 왜 갑자기 대한제국이 되고 고종이 황제로 등극했는지 아세요? 때마침 러시아에서 니콜라이 2세가 새로운 차르가 되면서 대관식을 거행하는데 고종은 민영환을 사절단 대표로 보냅니다. 민영환은 대관식을 보면서 제국의 위용에 뻑 갑니다. 뭘 한참 모르는 신하들이 ‘만국공법’을 들먹이며 황제에 못 오를 이유가 없다고 주청을 해댑니다. 처음에는 열패감과 자격지심 때문에 주저하던 고종은 급기야 결단을 내립니다. 청나라의 눈치를 보느라 진땀을 빼면서 말이지요. 대관식을 거행할 길일을 잡았는데 이게 또 가관입니다. 1897년 10월 12일 새벽 2시였으니까요. 세상에 새벽 2시에 무슨 황제 대관식입니까? 열강의 승인을 받기는커녕 외국에서 알까봐 은밀히 거행하는 숫제 도둑 대관식이었지요. 어쨌든 이 땅에 느닷없이 하루아침에 왕보다 못한 황제의 나라 대한제국이 들어선 것이죠. 지상에서 가장 초라한 자칭 대한제국의 고종황제! 외국 공사들은 무척 난감했지요.”
좌중에 폭소가 터졌다. 배를 움켜쥐고 웃던 사람들의 표정이 묘하게 일그러져 갔다. 그렇게 쓴웃음으로 변해갔고 마침내는 숙연하게 되었다.
“그래요. 마냥 웃을 수만도 없는 일이지요. 미우나 고우나 우리 일이고 우리 역사니까요. 자칭 황제가 된 고종은 이름도 거룩한 대한제국을 고작 8년 만에 일본에 갖다 바칩니다. 조선을 일본에 넘긴다는 일본과 러시아, 미국, 독일의 포츠머스조약 그리고 을사늑약이 있었던 1905년은 사실상 대한제국의 종말이니까요. 아무나 제국을 칭하고 혼자서 황제 노릇 하는 거 아니라는 걸 여실히 보여준 해프닝입니다. 강력한 군사력, 정치적 결집력, 문화적 영향력 그리고 주변국의 인정이 있어야 하는 것이지요….” --- pp.248~249

카시오페이아는 차트의 귀재답게 여러 가지 차트를 종합해서 올리며 대망의 2,000포인트가 코앞에 닥쳐왔다고 쓴다. 이런 장세에 참여하지 못한 사람은 자본주의의 의붓자식이요, 소외층이라고 자극적인 어휘를 동원한다. 심지어는 금융도 과학이라며 정밀한 차트를 동원한다. 인터넷 글쓰기라는 게 그래야 네티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미 축복을 누리는 선택받은 자본의 총아들도 간을 키우라고 독려한다. 그대들이 계속 전진하면 주식시장은 3,000포인트도 무서울 게 없노라고 충동질한다. 모든 충동질에는 달콤한 유혹이 뒷받침돼야 효과를 얻는다. 자신 있게 추천하는 종목 3개를 올리고 그 이유를 체계적으로 댄다. 거부할 수 없는 미끼다. 한 달 안에 30퍼센트의 수익을 올리지 못하면 절필하겠다고 장담한다. --- p.277

망기실 앞에 섰다. 그는 유리문 손잡이와 벽에 고정시킨 쇠고리에 단단히 감은 쇠사슬 자물쇠를 땄다. 미로 같은 통로가 그를 빨아들이듯 휘감아 든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빛은 기색을 잃고 어둠의 촉수가 짙어진다. 황토와 참숯, 백회를 이겨 바른 방바닥이지만 넘을 수 없는 주인의 체취가 서려서인지 신성한 느낌이 든다. 오늘 오후 내내 이 안에 쪼그려 앉아서 도대체 무엇이 보이는지를 시험해보리라. 이윽고 마지막 통로를 지나 중앙 밀실이 보였다. 두어 걸음만 더 들어가면 된다.
“불을 끄시오! 난 빛을 싫어하외다.”
모골이 송연했다. 안에서 울려나온 건 분명 사람의 목소리였다. 그것도 도무지 나이를 짐작할 수 없을 만큼 깊고 그윽한 목소리였다. --- p.285

이렇게 불꽃과 얼음물 속, 지옥과 천당을 드나들다 보면 시나브로 면역이 생긴다. 명검을 벼리듯 그렇게 이 바닥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스스럼없이 자신을 구도자라고 말한다. 돈을 쫓는 구도자! 얼마나 현실적이고 치열한 직업인가. 종교에 귀의한 자는 신을 믿지만 증권시장에 발담은 구도자는 돈을 믿는다. 이 어지러운 시장에서 돈이 내 계좌로 들어오면 그 순간 온 세상은 천국이 된다. 반대로 돈이 내 계좌에서 빠져나가 타인들의 계좌로 들어가면 그 순간 지옥이 돼버린다. 돈의 경계선이 이처럼 확연하다. --- pp.320~321

제5호실 병실 문을 닫고 문병 온 관리들로 북적대는 복도를 나서며 노인은 이승과 저승만큼이나 먼 거리를 느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건너기 힘든 강물이 흐른다. 어디 강물뿐이랴. 그 막역하던 스승과 제자 사이에도 전혀 다른 두 나라가 존재한다. 자신처럼 볼품없는 일개 시골고라리와 당대의 총리대신 이완용이 각기 다른 신념으로 인해 갈 길이 확연히 갈렸음을 절감했다. 이제 살아서 서로 만나는 일은 없을 것만 같았다. --- pp.452~453

태천으로 돌아오는 길에 지척을 분간할 수 없는 눈발이 날렸다. 나라는 기울고 태양은 빛을 잃었다. 눈보라는 휘몰아치는데 돌아갈 길은 멀기만 하다. 등 굽은 노인 박세익은 명아주 지팡이에 의지하여 걸음을 떼어놓는다. 험준한 산골에는 귀기가 서려있는데 앙상한 나뭇가지는 이내 꺾일 듯 위태롭기만 하다. 얼굴을 때리는 눈보라 앞에 눈조차 뜰 수 없을 지경인데 인기척에 놀란 개가 컹컹 짖는다.
아, 집으로 가는 길은 고달파라. 어둡고 신산스럽구나, 인생이여! 시절은 늘 사람들의 소망보다 한 발 늦는다. 대개의 범속한 이들은 몸을 낮춰 침묵하며 시류에 순응하고 의협심 많은 지사는 땅을 치고 분통해하다가 순국한다. --- pp.456~457

박세익이 숨이 멎었을 때, 망기실을 집어삼킨 불꽃 너머로 백룡이 꿈틀거렸다. 백룡은 척목尺木을 세우더니 땅을 차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아침 햇살이 누리에 퍼지면서 백룡의 찬란한 승천을 가무렸다. 해방 직후, 망기실 뒤편 백송이 말라죽었다. 망기실이 불태워질 때 이미 예고된 일이었다. 『백송패설』말미 절명시 바로 앞장에서 박세익은 일렀다.
“언제고 백송이 죽거든 대대로 살아온 이 세거지를 버려라. 솔가해서 한수이남 남녘땅 깊은 산골로 내려가라. 벼슬하지 말고 무지렁이처럼 살면서 이 고난의 연대를 넘겨라. 난세에 나라의 녹을 먹다보면 아무개처럼 변절자가 되기 쉽다….” --- p.493

아, 나 같은 시골고라리가 나라가 기울어가는 때, 천하의 인재를 얻어 그에게 역리易理를 가르쳤도다. 그리하여 그는 마침내 이 나라 재상에 올랐도다. 하지만 그에게 알량한 변신술은 가르쳤으되 중심에 졸가리를 세워주지 못했구나. 내 탓이로다. 졸가리 있는 인재를 길러내야 나라에 희망이 있거늘 내가 기른 건 어이없게도 칠면조였구나. 조선인의 맥박이 뛰고 혼이 번개처럼 등등하게 살아 있는 백두산 호랑이 같은 젊은이는 없는가! 시대가 영웅을 부른다.
--- p.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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