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기린 편지》는 내 편이 되고, 나를 성장시킬 위대한 시작이 될 거예요. 나눔과 배려로 가슴이 채워지고, 해석이 아닌 이해를 통해 기쁨을 만나게 될 거예요. 내가 나부터 인정하고, 사랑하게 될 이야기, 괴롭지 않은 긍정의 이야기인 《꽃기린 편지》. 사랑하고,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우리 모두의 이야기는 씩씩한 마중물이 되어 더 많은 사랑을 끌어올릴 거예요.
---「들어가는 글」중에서
“누가 내게 앞 번호 좀 파시오. 만 원 드리리다.”
그러나 모두 외면하고 휴대전화 화면에 눈길을 준 채 대꾸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양보하고 나면 족히 한 시간은 기다려야 했다. 나 역시 그 기다림이 싫어 다른 정형외과로 갔다가 마음먹고 다시 왔는데, 아! 운명의 장난이여. 나는 자리에서 주춤주춤 일어났다. 내가 왜 일어났겠는가. 속으로 내 번호표에게 ‘사랑한다.’ 뜨겁게 속삭인 뒤 할아버지에게 다가가서는
“어르신, 이거 받으세요!”
번호표를 쑥 내밀었다.
“2번? 파는 거요?”
할아버지 눈이 반짝 빛났다.
“파는 게 아니고, 할아버지 순서랑 바꾸는 거예요. 만 원 안 받을 거예요. 저는 장사꾼이 아니거든요.”
---「만 원」중에서
할머니들이 원래 자리인 단풍나무 아래로 오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오며가며 걸음을 멈추고 푸성귀를 사는 사람들에게 고맙다는 할머니들 인사가 덤으로 얹혔다. 나도 기쁜 마음을 담아 감자 썰어 넣고, 고등어 고추장찌개를 끓였다. 잠시 후면 점심시간. 단풍나무 아래에 둥글게 모여 앉아, 싸가지고 온 마른 밥을 드신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둘다가 뜨거운 냄비에 손등이 닿았다. 아, 이 덜렁이... ‘자, 다 했지?’ 덴 손, 찬물에 담글 새도 없이 들고 뛰었다. 따끈한 한 끼 드리고 싶어서 내달렸다. 내 마음은 꾀꼬리단풍보다 더 야드르르하게 물든 채 말이다.
---「단풍나무 아래 할머니들」중에서
공동 현관 문이 열리기 전에 봉지에서 시루떡과 인절미 두 팩을 건네니 얼마나 놀라던지, 걸레를 든 채
“이걸 와 날 주오?”
라고 물었고,
“출출할 때 드세요! 떡을 많이 샀어요!”
웃으며 너스레를 떤 기억이 난다. 그때 아주머니는 걸레를 얼른 바닥에 던지고 두 손바닥을 당신 옷에 싹싹 닦은 뒤 떡을 받았지. 아주머니도 그때 일을 잊지 않았던 거다. 우리집 녀석을 보며 두고 온 자식들 생각이 났을까? 아무튼 나는 아주머니가 얼마나 힘들게 일하는데 그 돈을 받았냐고 할기시* 눈 흘기며 닦달하고, 녀석은 두 눈만 껌벅였다.
“그럼 이 돈에다가 돈을 더 보태서 아주머니 선물 사 드리면 어때요?”
---「오고 가는 마음」중에서
“누구야! 누가 우리 엄마 건드렸어. 아줌마들은 과부 안 될 줄 알아? 앞으로 우리 엄마 건드리기만 하면 내가 가만 안 둘 거야!”
찢어지도록 악을 쓰자 구경하던 아줌마들이 슬금슬금 흩어졌다. 고데기를 들고 미장원 문 밖에 서서 구경하던 점원도 슬그머니 문을 닫고 들어가 버렸다. 그날 열세 살, 그 조그만 여자아이는 엄마를 일으켜 세우며 끝까지 울지 않았다. 난 장녀다. 아버지가 안 계시면 아버지 대신이다. 엄마에겐 내가 남편이다. 주문을 외듯 외며
“엄마, 걱정 마. 내가 있잖아. 나만 믿어.”
오랜만에 차려 입은 엄마의 살굿빛 투피스에 묻은 흙을 털어내며 말했다.
---「졸업식 그날」중에서
그때 사랫길마다 진동하던 그 깻잎향기를 잊을 수가 없다.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로 가득했던 깻잎향기가 할머니의 헝클어진 흰 머리카락과 충혈된 눈과 함께 훅 안겼다. 마당을 구르던 굳어서 조그맣게 말린 모습도 함께.
꿈에서 깨어나도 그 깻잎향기는 내 주위를 맴돌았다. 얼마 후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알 수 없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왜 내가 그때 할머니 손을 잡아드리지 않았을까? 차라리 한 번 안아 드리고 눈물을 닦아 드릴 걸. 못 이기는 체 용서할 걸. 그랬다면 이토록 힘들지 않을 텐데. 어느새 눈물이 크렁했다*. 하지만 그런 내 모습을 어머니한테는 보이지 않으려 애썼다. 어머니에게 보여서는 안 되는 눈물이었다. 적어도 어머니에게는.
---「삼대」중에서
할아버지는 치료비를 계산하면서도 정지된 카드 때문에 천산지산하더니*, 치료비를 계산한 뒤에도 생뚱맞게 감자 보관법까지 이야기했다. 외로웠나보다. 고달팠던 삶이며 어려웠던 삶, 떠오르는 삶을 말할 데가 없었나 보다. 시리고 아픈 어금니처럼 연약해진 외로움을 내놓을 데가 없었나 보다. 나도 그래서 치과 밖으로 나가려는 할아버지를 불러 세웠다.
“어르신! 감자를 신문지에 싸면 안 썩어요?”
내 외로움이 다가갔다.
---「시린 이」중에서
“여기요! 여기! 이 물 쓰세요!”
내 목소리가 그 청년 목소리보다 더 크게 울려 퍼졌다.
“어휴, 고맙습니다. 딱 샤워기네, 샤워기!”
내가 내민 물통을 받아 청년 머리에 뿌리던 이삿짐 직원들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하다. 씻어내면서도 연신 인사를 하던 그 청년의 명랑한 목소리도 말이다. 청년은 나에게 준 씩씩하고, 밝은 에너지는 모르겠지? 그 에너지가 퍼지고, 퍼져 다시 자신에게 돌아갔다는 것도.
---「익어가는 청춘」중에서
“나이가 들면 좀 너그러워야지! 나이를 어디로 먹었어. 전화로 그만큼 해댔으면 됐지. 그깟 피자 쪼가리 들고 와서 이게 그리 난리칠 일이야.”
내 뒤에서 피자를 기다리던 하얀 할머니였다. 꾸지람이 추상같았다. 불시에 일격을 당한 것처럼 조용해졌던 가게 안…. 환불과 함께 상황은 일단락되는 듯했고…, 나는 돌아왔지만 할머니가 말씀하신 ‘너그러움’ 앞을 내내 서성였다.
---「너그러움의 시간」중에서
그런데 오늘 한 청년이 호스를 이용해 주말농장 여기저기 물을 뿌리고 있었다. 다가가서 농장주냐고 물었더니 손사래를 치며
“우리 밭에 물 주다가 다른 밭도 목마를 것 같아서요.”
라며 멋쩍게 웃었다. 어제 저녁에 나와 보니 누군가 자기 밭까지 물을 줬다며 말이다. 물주는 시간을 놓친 밭 임자는 누군가 내 밭에 물을 나눠줬다는 것을 알게 되겠지. 그 밭 임자도 언젠가는 타인의 밭에도 기꺼이 물을 나눠줄테지. 남에게 베푸는 일은 언젠가 내게로 돌아 올 선물 같은 것이 아닐까? 오늘따라 풀빛이 더욱 더 싱그러웠다.
---「살맛 나는 세상」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