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옥(李鈺 1760 ~ 1815) 본관은 전주이고, 자는 기상(其相), 호는 문무자(文無子)·매사(梅史)·매암(梅庵)·경금자(絅錦子)·화석자(花石子)·청화외사(靑華外史)·매화외사(梅花外史)·도화유수관주인(桃花流水館主人)이다. 그의 고조부는 이기축(李起築)이며, 그의 집안은 한미한 무반계의 서족(庶族)으로 당색은 북인계이다. 실록에는 1792년(정조 16)에 그가 성균관 유생으로 있으면서 소설 문체를 써서 선비들이 답습했다고 전한다. 그 폐해가 극심하므로 정조가 문체를 개혁한 뒤에 과거에 나아가도록 명했다. 그러나 다시 나간 과거에서도 여전히 문체를 고치지 못했기에 군대에 편입되도록 명을 받았다. 정조는 명말청초에 유행하던 패관소품의 문체를 모방하여 과거시험을 치르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여 문체반정을 단행하였다. 이옥은 잘못된 글을 짓는다는 공식 낙인이 찍혀 과거시험을 포기하고 고향 남양으로 낙향하여 지내다가 1815년 56세로 사망하였다. 그의 작품 중에 대표적인 것은 중인계급의 처녀와 선비와의 애정을 그린 연애소설 『심생전(沈生傳)』인데, 그는 이 작품에서 신분질서의 해체양상을 묘사하고 있다. 이옥의 저술은 친구인 김려가 교정하여 『담정총서(潭庭叢書)』 안에 수록한 11권의 산문과, 『예림잡패(藝林雜佩)』에 시 창작론과 함께 남긴 이언(俚諺) 65수가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