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습(金時習 1435 ~ 1493) 조선 전기의 학자. 자는 열경. 호는 매월당. 동봉. 벽산. 5세에 신동이라 불릴 정도로 어릴 때부터 글재주가 뛰어났다. 21세 때 수양대군의 왕위찬탈 소식을 듣고 3일간 통곡하다 보던 책을 불사른 뒤 승려가 되었다. 생육신으로서 단종에 대한 절개를 끝까지 지키며 유랑인의 삶을 살다가 충남 부여의 무량사에서 생을 마쳤다. 그의 근본사상은 유교에 두고 불교적 사색을 병행했으며, 선가의 교리까지 포괄하려고 시도하는 등 다채로운 면모를 보였다. 31세 때부터 37세까지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로 불리는 『금오신화』를 비롯한 시편들을 지어 『유금오록(遊金鰲錄)』에 남겼다. 세조와 예종이 죽고 성종이 왕위에 오르자 1471년 37세에 서울로 올라와 이듬해 성동(城東) 폭천정사(瀑泉精舍), 수락산 수락정사(水落精舍) 등지에서 10여 년을 생활하였으나 자세한 것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1481년 47세에 돌연 머리를 기르고 고기를 먹으며, 안씨(安氏)를 아내로 맞아들여 환속하는 듯하였으나, 이듬해 폐비윤씨사건(廢妃尹氏事件)이 일어나자, 다시 관동지방 등지로 방랑의 길에 나섰다. 1493년 59세의 나이로 병사하였다. 저서로는 『매월당집』, 『금오신화』, 『탕유관서록』, 『탕유관동록』, 『탕유관호록』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