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은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발전한 당시까지의 자본주의 사회의 기원에 대한 나름의 관점과 체계적 해명을 정리한 결과물로 우선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베버의 새로운 주장은 그의 예상보다 훨씬 더 격렬한 논쟁을 불러왔고, 다른 분야의 연구에도 큰 영향을 끼쳐왔다. 이런 점에서 베버의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은 근대 자본주의를 이해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읽어야 할 중요한 텍스트로 간주된다. 그렇지만 이 저작만이 그 주제에 대한 절대적 해석의 지위를 가진다고 결코 볼 수 없다는 점에서, 또한 누구에게나 비판적 독서를 촉발하는 ‘사유의 지렛대’로 쓰일 수 있다는 점에서 더 중요한 가치를 갖는다. 그런 점에서 베버의 이 저작은 명실상부한 현대의 고전이라고 부를 수 있다.
--- p.5-6, 「서문」 중에서
현대 사회학의 창시자로 꼽히는 베버가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개념적으로 분석하는 대상 중 가장 중요한 열쇠 말은 당연히 개신교와 자본주의일 것이다. 특히 그는 역사적 형태의 자본주의를 ‘자본주의’와 ‘근대 자본주의’ 두 가지로 구별하여 인식한다. 전자는 어느 시대나 장소를 막론하고 인류 문명 안에 존재했던 경제 구조로서 ‘자본주의’ 일반을 가리키고, 후자는 그런 자본주의가 특정한 시기인 근대에 들어와 독특한 경제 활동의 조직화를 이룬 것을 말한다.
--- p.43-44, 「 1장 종교사회학의 창시자, 막스 베버」 중에서
한마디로 말해서, 베버는 근대 자본주의 연구에서 간과된 정신적 측면에 대한 해명은 그 ‘정신적 유산’이 경제적 측면에 뿌리를 둔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해명 과정에서 자본주의 문화에 비판적이든 친화적이든 수리·통계 중심의 경제학이나 여러 집단의 이해관계를 분석하는 정치공학적 방법을 철저히 배격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둘의 견해 차이에는 그것보다 더 근본적인 세계관의 차이가 놓여 있다. 즉 단지 자본주의 성장의 주역이 ‘부르주아라는 신흥계급이냐’, ‘청교도 윤리를 장착한 종교적 주체들이냐’에 관한 대립이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근대 자본주의의 기원을 바라보는 핵심 동력을 물질과 정신 중 어느 것에 치중하여 보는지에 관한 전제가 전혀 다른 입장들이 서 있다.
--- p.58, 「 1장 종교사회학의 창시자, 막스 베버」 중에서
베버에게 있어 자본주의의 물질적 구조와 경제적 기원 혹은 마르크스가 강조한 ‘생산력’과 ‘생산관계’에 대한 분석만으로는 근대적 자본주의의 특성, 즉 자본주의의 근대적 가치, 특히 그것의 정신적 기원에 대해서는 접근할 통로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앞서 설명했던 개신교 윤리에 대한 탐구는 베버의 가설을 구성하는 첫 관문이다. 영국과 미국을 중심으로 펼쳐진 초기 프로테스탄트, 즉 청교도들로 불렸던 이들 특유의 신앙적 순수성과 문화적 경건성이 개신교 윤리를 구성했던 종교적 원인이라면, 삶과 일의 합리적 규제 그리고 부의 축적을 북돋우는 문화는 개신교 윤리의 결과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논리적으로 펼쳐보자면, 베버가 그들이 창출한 생산 공간의 독특한 규율과 소박한 생활양식이 근대 자본주의의 문화적 싹, 즉 ‘자본주의 정신’을 표현하는 특성이라고 전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p.78-79, 「 1장 종교사회학의 창시자, 막스 베버」 중에서
베버는 이처럼 개신교와 자본주의의 놀라운 내적 연관성을 윤리적 가치 체계로 분석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문명과 단절된 무인도에서 살아남은 로빈슨 크루소의 이야기에서도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물질적 만족의 상관성이 강조된다. 최악의 조건에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생존을 위해 성실하게 노력하면서도 원주민들에게 복음을 전도했던 그는 결국 그 충실한 삶에 대한 대가를 보상받는다는 것이다. 베버가 보기에 그 이야기는 프로테스탄티즘과 자본주의가 내적으로 어떻게 결합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우화로 읽힌다.
--- p.88, 「 1장 종교사회학의 창시자, 막스 베버」 중에서
개신교 신앙 공동체를 따르며 발생한 삶과 직업에 대한 태도 변화는 합리주의 문화를 어떻게 창출했는지 살펴봐야 하며, 윤리적 의미가 부여된 부의 축적은 결국 근대 자본주의 발전의 정신적 원천으로 작용했다고 주장할 수 있다. 즉 더 많은 재산을 소유하는 것이 신의 뜻이자 신의 은총이라고 믿게 된 그들의 조직된 활동이 근대 자본주의 발전 과정에서 핵심적인 문화 변동을 가져오는 데 기여했다는 것이다.
--- p.94, 「2장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읽기」 중에서
베버는 여러 지역에 있던 자본주의와 근대적 자본주의 사이의 차이는 바로 후자에게만 그것을 특징짓는 ‘에토스’가 있다는 데 있다고 강조한다. 그래서 그는 ‘근대 자본주의를 발전시킨 원동력’은 그 이전 시대에 이루어진 자본 축적이 아니라 ‘자본주의 정신’의 발전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이 자본주의 ‘정신’은 단지 ‘이익 추구’의 원리나, 돈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며 숭배하는 황금만능주의나 배금주의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합리적이며 체계적인 경제생활이나 경영 활동을 비합리적으로 산출하는 독특한 에토스라고 할 수 있다
--- p.116, 「2장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읽기」 중에서
결론적으로 독일어 성경 번역 당시 루터의 의도에 대한 기대와 달리, 그의 사상을 이어받은 루터교의 직업관이나 노동관은 생산적이며 능동적인 개신교의 생활양식을 창출하는 방향으로 전혀 전개되지 못했다. 이것은 앞서 말했듯이 루터교에서는 새로운 경제 윤리의 기반이 되는 정신적·문화적 변동이 수반될 수 없었고, 실제 교리상에서 직업 개념도 그저 ‘천직’에 불과한 의미로 고정되어버린 데서 연유한다
--- p.143, 「2장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읽기」 중에서
베버는 이처럼 세속적 금욕주의라는 새로운 토양에 깊이 뿌리내리고 가지와 줄기를 뻗어 나간 체계적이며 합리적인 생활양식의 총체를 ‘프로테스탄트 윤리’라고 불렀다. 그는 이 새로운 개신교 윤리가 구습의 경제 관계와 악습의 경제 윤리를 밀어내고, 근대 자본주의 정신을 형성하는 초기 과정을 주도하는 문화적 역할을 수행했다고 주장했다.
--- p.148, 「2장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읽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