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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뭐 어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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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뭐 어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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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10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256쪽 | 130*200*20mm
ISBN13 9788966551675
ISBN10 896655167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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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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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이 사람 하는 소리 봐라. 사람이 그렇게 매정하먼 뭇 써. 적당헌 선에서 타협헐 줄도 알어야지. 아무리 자네 우리에 든 밥이라 해도 그렇게까지 허먼 뭇 쓰는 법이여!” 나는 솔직히 급할 이유가 없었다. 그냥 저 자리에 고구마든 콩이든 심고 밭을 일구면 될 터이지만, 슬라브집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것이 분명했다. 오늘은 하루해가 참으로 길어 보였다. 이런저런 궁리를 해보고 여러 가지 경우를 떠올려보았지만 딱히 답이 나오지는 않았다. 민호에게 직접 연락해서 집값을 흥정해볼까도 생각했지만 그럴 일이 아니었다. 내가 먼저 다가갈 이유가 없었다. 좀 더 기다려보면 자연스럽게 풀릴 일이었다.
---「준법정신」중에서

성호는 그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발길을 돌렸다. 우묵한 골짜기 드문드문 흰 눈이 보였지만 오르내리는 길에는 눈 한 점 보이지 않았다. 서울에서 살 때 그토록 부딪혀 왔던 인간 군상들, 돈에 찌들다 못해 돈에 병든 인간들을 피해 산골 마을로 내려왔건만 이게 무슨 신세란 말인가. 몇 년 동안 심산리 사람들과의 만남은 성호 혼자만의 착각이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맨 처음부터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았는데 그것을 인지하지 못한 성호 자신의 잘못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지러웠다. 성호는 카메라를 움켜쥐며 마을 회관 앞에 서 있을 느티나무를 생각했다. 아뿔싸! 느티나무에 흰 눈이 남아 있을 리 만무했다.
---「내가 뭐 어때서」중에서

“빌어먹을 놈! 지 애비 집 한 채 남은 것조차 지키지 못하고 그 꼴이 될 줄 누가 알았겠어. 휴지 줍는 것도 이제는 힘에 부치는데…. 아! 이놈의 날씨는 또 왜 이렇게 덥댜. 그런데 지금 경찰서 가는 것 아니지?” 아! 고물상을 찾아갈 때의 노인의 모습과 지금 노인의 모습이 어떻게 이렇게도 다를 수 있단 말인가. 힘이 빠진, 어쩌면 넋이 반쯤 나간 노인네의 음성이었다. 풀이 죽은 노인의 질문에 김 경장이 대답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같은 분 안 가셔도 요즘 경찰서 갈 사람 참 많습니다. 걱정하지 마셔요. 그리고 어려우셔도 끼니는 꼭 챙겨 드시고요.”
---「노인을 찾아서」중에서

아나운서는 자신의 일인 듯 약간 달뜬 음성으로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과연 저 소식이 식당 주인들에게도 기쁜 소식이 될 수 있는 것인지 잠깐 생각을 더듬어 보는데, 어젯밤 아내가 읽던 책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그 책은 ‘각자도생의 사회다. 네가 알아서 네 삶을 살아라’라면서 국가의 존재 이유를 묻고 있었다. 씁쓸하게 웃으면서 채널을 돌리자 요즘 인기 있는 예능 프로그램에 나온 연예인들이 히히덕거리고 있었다. 민호가 그들을 따라 히죽히죽 웃음을 흘리고 제법 콧노래까지 흥얼대는데 출근하는 미진 씨가 예의 그 밝은 음성으로 인사를 했다. 민호는 더 밝고 힘찬 목소리로 인사를 받았다.
---「김 사장」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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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선만 소설가의 첫 소설집 『내가 뭐 어때서』는 달항아리를 닮았다. 열 편의 이야기가 실린 소설집에는 우리가 주변에서 일별하는 일상들을 꼼꼼히 챙겨 담백한 문장으로 빚어내고 있다. 기발하거나 거창하지 않으면서도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들을 일관된 호흡으로 담아내는 균형감이 돋보인다. 「준법정신」에서 「인형 뽑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공간과 군상들이 일궈내는 이야기들의 풍경은 다채롭기 그지없다. 속되고, 천박하며, 야비하고, 비정하여 자칫 천잡하기 쉬운 세태의 풍경들을 부양한 힘은 어디에 있을까. 현실감 있는 묘사와 인물의 속성을 파악하는 안목도 한몫했지만, 잔잔한 어조의 이면에 잠복한 풍자의 예각에 주목하게 된다. 궁극적으로 작가 자신을 향하게 될 그 예리한 풍자의 칼날을 벼르며 장차 이어 나갈 소설의 항행이 기다려진다. 변질되고, 오염되며, 갈등하는 세태 속에서 고심하고, 때로는 체념하려는 인물들을 추슬러 좀 더 낯설고 파격적인 이야기의 파고 속으로 즐거이 뛰어들기를 기대하며, 황선만 소설가의 ‘첫’ 소설집이 세태의 닻이 아니라 돛이 되기를 바란다.
- 이시백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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