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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화 저 / 백원담 | 푸른숲 | 2023년 09월 12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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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9월 12일
쪽수, 무게, 크기 312쪽 | 502g | 140*210*30mm
ISBN13 9791156754312
ISBN10 1156754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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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구이.”
아버지는 내 이름을 한 번 부르시고는 침대의 가장자리를 툭툭 치며 말씀하셨지.
“앉아라.”
쿵쾅거리는 가슴을 안고 그 곁에 앉으니, 아버지가 내 손을 어루만지시는 게 아니겠나. 그런데 그 손이 얼음장같이 차서 내 마음도 함께 얼어붙었다네. 아버지는 가볍게 말씀하셨어.
“푸구이, 노름빚도 빚은 빚이다. 예부터 빚은 갚지 않을 도리가 없단다. 우리 땅 100여 묘와 이 집을 모두 저당 잡혔으니 내일 사람들이 동전을 가져올 거다. 나는 늙어서 짊어질 힘이 없으니 네가 지고 가서 빚을 갚고 오너라.”
아버지는 말을 마치고 또 길게 한숨을 쉬셨네. 그 말씀을 들으니눈이 시큰시큰하더라구. 나는 아버지가 나와 사생결단을 내실 생각이 아니란 걸 알았지. 하지만 아버지 말씀은 마치 무딘 칼로 목을 베이고도 머리가 그대로 매달려 있는 것처럼 날 고통스럽게 했다네. 아버지가 내 손을 탁탁 치면서 말씀하셨지.
“가서 자라.”
--- p.52

자전이 돌아와 우리 집은 완전해졌다네. 내 일을 도울 조수도 생긴 셈이고. 나는 그때서야 비로소 내 여자를 아끼기 시작했지. 이런 점은 자전이 나한테 슬쩍 알려준 건데, 사실 나 자신은 잘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네. 나는 자전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지.
“당신은 밭둑에 가서 좀 쉬어.”
자전은 성안에서 자란 아가씨라고 하지 않았나. 가녀린 그녀가 일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가슴이 아팠지. 자전은 쉬라는 말을 들으면 기분 좋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어.
“힘들지 않아요.”
어머니 말씀이 사람은 즐겁게 살 수만 있다면 가난도 두렵지 않은 법이라 하셨지. 자전은 치파오를 벗고 나처럼 무명옷 차림으로 온종일 숨도 제대로 못 쉴 만큼 힘들게 일하면서도 내내 웃는 얼굴이었다네. 펑샤도 좋은 아이였지.
--- p.83

펑샤는 듣지 못했는지, 뜻밖에도 유칭이 몸을 돌려 나를 보더군. 그 아이는 펑샤 손에 이끌려 계속 걸어가면서도 머리는 내 쪽으로 돌리고 있었지. 나는 또다시 소리를 질렀다네.
“펑샤! 유칭!”
유칭이 제 누이를 잡아끌자 펑샤가 내 쪽으로 몸을 돌렸지. 나는 얼른 애들 앞으로 뛰어가 무릎을 굽히고 펑샤에게 물었어.
“펑샤, 나를 알아보겠니?”
펑샤는 눈을 크게 뜨고 나를 한참 바라보다가 입술을 움직였어. 그런데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거야. 내가 펑샤에게 말했지.
“내가 네 아빠다.”
그러자 펑샤가 웃음을 터뜨리더군. 그런데 입을 쫙쫙 벌리는데도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는 거야.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더 깊이 생각하지는 않았지.
--- p.111

정작 죽어야 할 사람은 나인데 다른 사람이 죽었다는 생각이 들었다네. 난 전쟁터에서도 목숨을 건졌고, 집에 돌아와서는 룽얼이 나 대신 죽었으니 말일세. 우리 집안이 조상 묘를 잘 쓴 모양이야. 어쨌거나 난 나 자신에게 말했지.
“앞으로는 제대로 살아야지.”
--- p.115

“유칭! 유칭!”
녀석은 목을 옆으로 기울이면서 맥없는 목소리로 대답했지. 나도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네.
“빨리 집에 가서 죽 먹자.”
죽 먹자는 소리를 듣더니 어디서 힘이 났는지, 녀석이 벌떡 일어나 소리를 치더군.
“죽을 먹어요?”
나는 깜짝 놀라 황급히 말했지.
“좀 작게 말해.”
자전이 옷 속에 쌀을 감춰 온 건 남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네. 모든 식구가 집으로 돌아온 뒤 나는 문을 닫고 빗장을 걸었지. 그제야 자전은 안심하고 가슴 속에서 작은 쌀자루를 꺼냈어. 그중의 반을 솥에 쏟아 넣고 물을 부은 다음 펑샤가 불을 때서 죽을 끓였다네. 그러고는 유칭에게 문 뒤에 서서 틈새로 마을 사람들이 오는지 안 오는지 살펴보라고 했지. 물이 끓으니 쌀 냄새가 온 집안을 가득 채웠다네. 유칭은 참다못해 솥 앞으로 달려와 코를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았지.
“냄새 좋다.”
--- p.182

나는 춘성을 마을 어귀까지 배웅했다네. 춘성은 나를 멈춰 세우더니 그만 나오라고 했지. 마을 어귀에 서서 춘성이 가는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았어. 춘성은 하도 맞아서 다리를 절뚝거리더구먼. 고개를 푹 숙이고 가는 게 무척이나 힘들어 보였지. 나는 아무래도 안심이 안 돼서 또 소리를 쳤다네.
“춘성, 살아 있겠다고 약속하게.”
춘성은 몇 걸음 걸어가다 돌아보며 말했어.
“약속할게요.”
--- p.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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