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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친구
중고도서

아무튼, 친구

: 그들이 뿜어내는 빛과 그늘에 가려지는 것이 나는 무척 좋았다

양다솔 | 위고 | 2023년 07월 10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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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7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146쪽 | 168g | 110*178*20mm
ISBN13 9791193044049
ISBN10 1193044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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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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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소개는 간단하다. “양다솔입니다. ○○의 친구입니다.” 누군가 “무슨 일 하는 분이세요?”라고 물으면 멀쩡히 회사 다니는 직장인임에도 이렇게 말하곤 했다. “○○의 친구입니다. 그것이 제1 직업입니다. 아직 명함은 못 팠습니다. 갖가지 사이드잡을 하고 있습니다만 저를 별로 설명해주지 않네요.” 특히 잘 보이고 싶은 상대에게는 여러 명을 열거하기도 했다. “아시죠? 저는 ○○의 친구이자 ○○과도 절친하고 ○○에게는 유일한 친구라는 말을 듣는 사람입니다.”
--- p.21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어릴 적부터 좀 서슴없었다. “너 남의 집에 가서 냉장고 휙휙 여는 거 아니야!” 엄마가 맹렬히 쏘아붙였다. 이미 엄마들 사이에 소문이 파다하단다. 나는 눈을 껌뻑이며 머릿속에 입력했다. 남의 집 냉장고를 휙휙 열지 말 것. 이유는 모르겠지만 안 되는 모양.
--- p.24

나는 어렸을 때부터 이상한 사람이었던 나 자신을 항상?버거워했다. 몹시 끔찍하다고 느꼈다. 이런 나를 사랑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게 느껴졌다. 나는 차라리 내 친구를 사랑했다. 그리고 그들이 돌려주는 사랑을 빌려 자랐다. 그들을 믿는 마음을 조금씩 반사하여 나 자신을 믿었다.
--- p.29

“너는 학교가 끝나면 동네에 있는 친구들을 열심히 꼬셔가지고 집으로 데려왔지. 그러고서는 정작 놀지는 않고 현관문을 지키고 서 있었어. 애들이 곧 갈까 봐서.”
어릴 적부터 타인에게 몹시도 진심이었던 나를 엄마는 이렇게 회상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발바닥에 닿았던 문턱의 서늘한 감각이 되살아났다.
--- pp.35~36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제발 이런 나를 두고 가지 마.’ 그 마음이 지금도 놀랍도록 생생하다. 발의 아치에 딱 맞던 문턱의 단단하고 시원한 촉감까지. 그럴 때면 시간이라는 것이 정말 흐르고 있는 걸까 싶다. (…) 시간이 갈수록 내 삶의 어떤 부분들은 새로운 것들로 덮이며 형태를 바꾸고 있는데, 그 옆에는 여전히 문턱을 지키는 아이가 서 있기 때문이다.
--- pp.37~38

생각해보면 친구들과 함께한 대부분의 순간 ‘함께 있다’고 느낀 적이 없었다. 언제든 내 옆에 있다고 믿기보다는, 언제든 말없이 떠나갈 수 있다고 믿었다. 나를 싫어하는 마음을 숨기고 있으며, 나를 배신하고, 버리고, 홀로 남겨둘 거라 믿었다. 그리고 동시에, 그렇지 않다고 믿고 싶기도 했다. 그 마음은 밤하늘처럼 넓고 어두운 불신의 바다에서 작은 별처럼 빛났다.
--- pp.53~54

하소연 따위는 들어본 적도 해본 적도 없으며 고난은 늘 알아서 해결해왔던 그는 줄줄이 이어지는 나의 슬픔 앞에서 시종일관 어쩔 줄 몰랐다. 입을 뗐다가도 아무 말도 못 하고 다시 다물기를 반복했다. 그는 위로를 하려고 시도하고 있었다. 붕어처럼 입을 뻐끔거리던 그가 이내 속삭였다. “비밀인데… 사실 나는 공주 개미야.”
--- p.72

그들에 대해서 나는 영영 제대로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내가 아는 것은 오직 나에 관한 것이다. 내가 매일같이 무언가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산다는 것이다. (…) 하루에도 최소 열 번씩 “예쁜아”, “이 사랑스러운 것아”, “바보야” 같은 말을 속삭이는 사람이 되었다. 적어도 그들이 이 세상에 살아 있는 동안은 나도 살아야겠다고, 그들과 내가 먹을 정도는 벌어야겠다고 다짐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들이 카펫을 망쳐놓고, 집 안을 어지르고, 접시를 깨뜨리고, 목화솜 이불에 오줌을 싸놓고, 내 발목 위에 똥을 싸고, 그 모든 것을 한꺼번에 한다고 해도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 pp.96~97

한참을 달렸을 때 먼 곳에 작고 동그란 점 하나가 보였다. 그것은 점점 커지더니 이내 팔을 들어 나에게 손을 흔들었다. 나는 숨을 헐떡이며 저 멀리엔 숲과 들판이, 커다란 수영장이, 이국적인 건물과 오색찬란한 꽃들이 있었노라고 말했다. 그리고 다시 엄마를 지나쳐 새로운 길로 방향을 틀었다. (…) 나는 요요처럼 엄마로부터 아주 멀리까지 갔다가 돌아왔다. 길은 여러 번 갈렸다가 이어졌다. 순간들은 멀어졌다 겹쳐졌다. 매번 엄마는 멀리서부터 웃고 있었다. 무얼 보았냐고 묻지도 않았다. 내가 본 것을 당신도 본 것처럼.
--- pp.134~135

그들이 전화를 받으면 하루는 달라졌다. 바위처럼 무겁게 나를 짓누르고 있던 것들은 수화기를 들고 그것들을 입 밖으로 내뱉는 순간 훌쩍 가벼워졌다. 골라도 골라도 끝없이 솟아나던 비관의 돌들이 잠시 딴청을 피웠다. 그들이 웃는 순간 그것들은 돌멩이처럼 작아져 내 손바닥 위를 빙그르르 굴러다녔다. 고통스러웠던 기억 어딘가에 귀여운 구석마저 있어 보였다. 비로소 그것은 일화가 되었다.
--- p.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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