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미디어 사유의 흐름과 초점은 어떻게 나타나는가? 여기서는 다양한 뉴미디어 사유들 중에서도 기술 중심적 시각에서 벗어나 다양한 사회문화적 변화들을 고려하는 사상가와 이론들을 선별하였다. 이 책에서 훑어볼 사상가들은 다음과 같다. 즉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 빌렘 플루서(Vilem Flusser), 폴 비릴리오(Paul Virilio), 프리드리히 키틀러(Friedrich Kittler), 미셸 푸코(Michel Foucault), 질 들뢰즈(Gilles Deleuze), 펠릭스 과타리(Felix Guattari), 안토니오 네그리(Antonio Negri), 마이클 하트(Michael Hardt)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이 사상가들의 심층적인 이론과 개념들을 총체적으로 이해하는 방식보다 뉴미디어와 사회, 문화, 정치적 상황들에 대한 다양한 사유의 쟁점들과 토론주제의 도출에 초점을 두고자 한다. 그 목적은 뉴미디어 이용자들인 독자들이 뉴미디어 환경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문제해결 능력을 개발할 수 있는 사유의 근육과 실행의 세포를 질기고 강하게 단련시키는 데 있다.
--- 제1장 입구: 뉴미디어 사유와 문화의 이해(15쪽)
벤야민의 시각은 기술복제와 대중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낙관적 관점을 공고히 한다. 그는 예술작품의 권위주의와 전체주의적 기능을 청산하고 ‘산만한 시험관’들이 협력하여 미디어를 전유하고 스스로 제작자나 비평가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은 것이다. 벤야민이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비관주의적 경향과 다른 결을 갖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대중의 사회적·역사적 역할을 어떻게 긍정적으로 도출하는가 하는 점에서 비롯된다.
--- 제2장 벤야민: 기술복제시대의 아우라 붕괴와 뉴미디어 문화(52쪽)
벤야민이 1920년대 말에 이 작업에 착수하게 된 계기는 자본주의 사회의 변화가 가져온 환영과 위기를 탐구하고 각성의 실천들을 추동하는 데 있다. 즉, 그는 전체주의의 폭풍이 몰려오는 위기의 시대에서 진보적 지식인의 각성과 대중의 역할을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 제3장 벤야민: 파사주 프로젝트 - 산보자, 수집가, 미메시스 능력(63쪽)
플루서는 커뮤니케이션의 목적을 어디에 두고 있는가? 인간은 왜 커뮤니케이션을 하는가? 그것은 소통의 욕망과 관계성이라는 두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우선, 소통의 욕망은 인간이 유한자라는 현실적 조건에서 비롯된다. 즉, 나는 죽음을 피할 수 없는 나약하고 고독한 존재인 것이다. 이 때문에 인간은 나 자신을 비롯하여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고자 한다. 다시 말해, 소통의 욕망은 나와 다른 사람들과 미디어를 통해 접속하고자 하는 것이다. 다른 한편, 관계성의 측면에서 인간은 사회적 소외로부터 벗어나 끊임없이 다른 사람들과 사회적 관계를 형성한다. 왜냐하면, 사회적으로 고립되는 순간 ‘무의미한’ 삶을 살아야 하는 반면,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는 그 순간은 고독한 세계에서 벗어나 공동의 세계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인간 커뮤니케이션의 목적은 우리가 “완전히 고독하고 타인과의 연락이 끊긴(incommunicado) 무의미한 맥락”을 벗어나 사회적 관계성과 실현하기 위함이다.
--- 제4장 플루서: 코무니콜로기 - 담론형/대화형 매체, 대중적 기만과 기술적 상상(91쪽)
드로몰로지의 사유에는 속도에 대한 비릴리오의 독자적인 시각이 관통한다. 속도는 ‘하나의 현상이 아닌 현상들 간의 관계’이기 때문에 동시대의 정치적 발전과 기술의 혁신 과정을 비판적으로 성찰하여 미래의 유해한 결과이자 파국을 예방할 방도를 찾아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드로몰로지의 사유에는 지리의 종말과 비상사태에 대한 비관주의적 시각뿐 아니라 또 다른 한편, 속도의 조직화와 창출 방법을 추구하는 시각이 중첩되어 있다. 즉 장갑차가 발명되어 지상전의 운송장치로 사용될 때, 중요한 전술은 ‘도로와 장소를 누가 선점하는가’하는 지리 조건에 초점을 두었다. 하지만, 공간의 전쟁에서 시간의 전쟁으로 이행한 후 세계 경제의 속도는 변화한다. 이제 중요한 것은 ‘시간을 누가 더 빨리 전유하는가’의 문제가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게 된 것이다. “세계 경제가 공간의 단위에서 시간의 단위로 변했다는 것, 즉 시간의 전쟁”이 부와 권력의 획득을 위한 속도 경쟁의 논리가 된 것이다.
--- 제5장 비릴리오: 드로몰로지와 감각의 마비, 피크노렙시(126쪽)
타자기와 같은 글쓰기 기계는 어떠한 특징을 지니는가? 우선, 새로운 기술적 기계장치는 ‘타이프라이터(typewriter)’를 통해 새로운 미디어 상황을 창출하게 된다. 이 새로운 글쓰기 기계는 타자기와 타자수의 복합적 의미를 지니고 있고, 이 기계의 등장은 글쓰기를 변화시켰다. 즉, 타이프라이터(글쓰기 기계)의 이중적 속성은 기계와 인간 구성체, 즉 몸과 기계의 연결체를 통해 발견할 수 있다. 예컨대, 새로운 기록체계인 타자기를 통해 이상적 여성은 소멸하는 한편, 실제(reale) 여성이 등장하게 된다. 그러나 이 경우 신체성이 삭제된 매체의 작동 안에서 여성은 지워지기 위해 호명되며, 타자기의 결과물에는 성별 구분을 가능케 하는 목소리는 사라진다.
--- 제6장 키틀러: 기록시스템과 글쓰기(152쪽)
푸코의 장치와 주체화에 대한 문제설정은 두 가지 맥락 속에서 파악된다. 한편으로는 판옵티콘, 즉 원형감옥과 같은 감금장치가 신체의 규율과 감시를 위한 권력관계를 작동시켰다는 점이다. 장치는 하나의 인격에 의해 작동하는 단일한 실체가 아니라 ‘이질적 집합’ 혹은 ‘구성체’의 형태를 띠기 때문이다. 또 다른 한편, 다양한 성 장치들은 초기의 규율과 훈육의 기능을 넘어서서 지식권력과 결합되면서 일정한 방식으로 주체를 관리하고 통제하는 역할을 수행하였다는 점이다. 성 장치들은 다양한 학문 분야, 즉 교육, 의학, 인구통계학, 생물학 등을 통해 성 담론을 만들어 내면서 개인의 신체와 섹스, 쾌락 등까지 사회적 관리와 통제의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즉 장치는 신체의 규율과 감시뿐만 아니라 지식권력과 결합함으로써 일정한 방식으로 주체를 구성한다.
- 제7장 푸코: 장치, 권력, 주체구성(180쪽)
사건의 발생과 동시에 무수한 의미들, 즉 ‘무의미’가 나타나지만 일정한 장소와 사람들, 물체들이 서로 결합하고 배치되며 언어의 표현행위가 이루어질 때 특정한 의미가 형성된다. 요컨대, 사건은 물질의 표면효과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계열화되고 언표행위가 이루어짐으로써 의미의 차이들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들뢰즈에 따르면, 의미란 “사태의 부대물”이지 언어적 명제의 부대물이 아니다. 이러한 점에서 “사건은 곧 의미 자체이고, 사건은 본질적으로 언어에 속한다”. 언어는 사물들이나 사태와 관련해 언표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 제8장 들뢰즈: 사건의 철학과 시뮬라크르(206쪽)
들뢰즈와 과타리의 소수자 되기 사유와 정동 이론은 최근 10여 년 간 지속적으로 미디어와 커뮤니케이션 영역에 적용되어 왔다. 이러한 경향은 이들 사유가 다양한 미디어와 커뮤니케이션 현상에 대한 미학적, 미디어교육적 함의들을 내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소수자들인 노인, 청소년, 여성, 이주노동자, 그리고 장애인 등의 소수자 되기 실천을 탐구하는 연구접근들은 기존의 소외론이나 보호대상으로서 사회적 소외계층을 분석하는 접근방식과 차이를 나타낸다. 소수자 되기 사유에서 중요한 것은 소수자들이 권력관계의 약자만이 아니라 차이의 생성을 실현할 수 있는 긍정적인 잠재력의 주체들로서 전제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청소년은 부모나 성인이라는 다수자의 욕망의 관점에서 볼 때, 보호와 유해물 차단의 대상이지만, 소수자의 관점에서 청소년은 성인들과 다른 차이의 잠재력과 실천력을 지닌 미디어 교육의 주체인 것이다.
--- 제9장 들뢰즈와 과타리: 소수자와 정동 사유(24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