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신경계 질환의 입문
- 인간의 존엄성 -
인간의 대뇌는 발생과정에서 보면 유리공예 장인이 유리질을 취하여 불면서 꽃병을 만드는 것처럼 섬세하고, 아름답다. 대뇌는 몇 개 세포의 편평한 집합인 신경판이라는 세포층에서 시작하여 먼저 긴관을 만들고, 다음에 둥근 낭을 만들며, 세포증식을 통하여 완성된다. 해부학적으로 고피질(archicortex), 구피질 (paleocortex), 가장 끝 부분인 신피질(neocortex) 순서로 발생 하는데, 이 신피질이 인간을 만물의 영장으로 만드는 기능을 하였다.
“인간의 절대적 존엄은 생각하는 힘에서 나온다. --- 그러므로 바르게 생각하도록 노력하여야 하는데, 그릇된 생각이 아닌 바른 생각이야말로 인간사회를 유지하는 도덕의 원리이기 때문이다.” (All our dignity consists, therefore, in thought. --- Let us endeavor, then, to think well; this is the principle of morality.) 이는 파스칼(Blaise Pascal)의 수상록 “팡세(Pensees)”에 나온 구절이다. 인간을 존엄하게 하는 생각하는 뇌를 갈파한 이 구절은 나에게 신경병리학을 전공하는 길로 이끌어준 힘의 하나였다고 생각한다.
신경(神經)의 어원
일본 막부시대인 17세기 중반에 네덜란드와의 교류가 시작 되었다. 무역화물을 가득 싣고 입항한 선박에는 선원들의 건강을 보살피는 의사도 있었다. 이들이 가져온 네델란드 의학서적에는 당시의 중국이나 일본보다 발달한 외과적 치료법이 기술되어 있었다.
이러한 의학서적을 접한 일본사람은 자국어로 번역하여 금창서 (金瘡書)라는 의학서를 제작하였다. 이 책자에는 “인체에는 세이눈 이라는 것이 있다. 이는 생명 유지를 위해 매우 중요한 것이다.” 라는 글이 나온다. 지제근 교수님에 의하면 ‘세이눈’은 라틴어 sinew에서 네델란드 zenuw로 변화된 힘줄(tendon)을 의미하는 용어이었다고 한다. 이것이 네델란드와 일본인 의사가 소통하면서 전혀 개념이 다른 神經이란 용어를 만든 것이다. 단순히 일반 힘줄과는 다르게 척수와 뇌로 연결되는 신(神)비로운 줄기(經脈) 라는 의미에서 신경이라고 기술하였다. 이것은 당시 일본인 의사의 해부학적 지식과 함께 철학적 견해가 복합되어 만들어진 용어라고 생각된다.
오랜 전통의학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중국에서도 신경에 대한 기술이 없다고 하며, 중국인들도 일본 의사가 만든 神經이라는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신경은 인체의 모든 장기 중에서도 신이 점지한 경로인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신경계 구조와 질환
신체의 각 장기에 발생하는 질병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세 가지 -발생 원인과 장기위치 및 세포의 종류- 를 먼저 알아야 한다.
첫째, 질병의 발생원인은 알기 쉽게 분류하여 보면 유전성 또는 태아기의 성장 장애, 감염증, 외상, 독성물질과 대사 장애, 면역 기능장애, 혈류 및 순환장애, 종양 등이다. 따라서 대뇌와 척수, 말초신경질환의 원인도 이를 대입하며 유추할 수 있다. 질병의 발생 원인을 차례대로 대입하면 신경세포 이주장애 질환을 비롯한 대뇌와 척수의 발생장애 질환, 임신 후반부터 영유아기 뇌손상에 의한 뇌성마비, 일본뇌염을 비롯한 각종 미생물 감염에 의한 뇌척수염과 수막염, 교통사고나 폭력에 의한 뇌척수 손상, 술과 담배 및 독성물질에 의한 뇌병증, 영화 “로렌조 오일”의 주인공에서 동반된 대사 장애질환, 면역과민성 뇌척수염, 뇌졸중, 뇌척수와 말초신경에 발생한 종양 등의 질환을 열거할 수 있다. 여기에 신경계를 구성하는 세포의 독특한 특징 -대부분의 신경 세포는 세포증식에 따른 세대교체가 없이 개인의 한평생을 함께 한다- 에 의하여 알츠하이머 치매와 파킨슨병, 루게릭병 등을 포함한 퇴행성질환과 신경원의 신경돌기를 둘러싸는 말이집 탈락 질환, 각종 정신건강장애 질환이 신경계질환의 원류라 할 수 있다.
둘째, 신경계는 부위에 따라 고유한 기능을 분업과 유기적인 연결로 조화롭게 하는 장기이다. 중추신경계는 두개골 내부의 대뇌와 척추 안에 있는 길다란 관 모양의 척수로 구성된다. 대뇌의 위치에 따라 전두엽(이마엽), 측두엽, 두정엽(마루엽), 후두엽, 중뇌, 소뇌, 뇌교, 연수, 뇌하수체 등 부위를 나눌 수 있고, 두개골 밖으로 척수와 말초신경이 연결되어 있다. 신경계는 대뇌, 중뇌, 소뇌, 뇌교, 연수, 척수로 이어지는 중추신경계와 척수신경, 자율신경, 머리신경의 말초신경계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에서 대뇌가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좌뇌와 우뇌를 뇌량이 서로 연결하고 있다. 좌측 뇌는 논리적이고 분석적인 사고기능을 하며, 우측 뇌는 감각적, 창조적 기능을 한다고 알려져 있다. 발생학적으로 보면 전뇌, 중뇌, 후뇌로 구성되어 있다. 전뇌는 대뇌피질과 변연계로 분화한다. 대뇌피질은 고등동물일수록 잘 발달되어 있어서 인간의 경우 품격을 보여주는 장소이다.
해부학적으로 네 개의 구역으로 나눌 수 있다. 전두엽은 학습과 기억, 언어, 인지, 운동제어 기능, 두정엽은 미각, 온도, 청각 등의 감각 기능, 측두엽은 청각, 후각 및 초기기억 기능, 후두엽은 시각 기능을 담당한다. 후뇌는 가장 일찍 발달한 원시 뇌로서 혈압과 호흡, 심장박동, 수면, 반사반응 등을 담당하여 기본적인 생명유지 기능을 하는 뇌교와 연수 및 평형감각과 운동 기능을 하는 소뇌로 구성되어 있다. 변연계는 전뇌와 중뇌 사이 뇌의 중심부 아래에 깊숙이 위치하며 계통 발생상 뇌에서 비교적 일찍 발생된 고피질로 구성되어있으며, 늦게 발달한 신피질에 해당되는 대뇌피질에 의해 완전히 둘러싸여 있다. 시상은 대뇌, 변연계, 척수를 오고 가는 감각정보를 전달하며, 성호르몬과 수면주기, 배고픔, 중독, 쾌락 등을 조절한다. 시상을 둘러싼 기저핵은 조화로운 운동을 담당한다. 시상하부는 생체시계와 호르몬 균형을 조절한다. 해마는 최근기억을 기억한다.
신경계는 부위에 따라 독특한 기능을 하고 있기 때문에 동일한 원인에 의한 질병일지라도 질병이 발생한 부위에 따라 서로 다른 증상을 나타낼 수 있다. 따라서 질병이 대뇌를 비롯한 신경계의 어느 곳에 발생하였는지, 즉 질병이 발생된 위치가 중요하다. 파스칼의 말대로 인간은 갈대처럼 연약한 존재이지만 생각할 수 있는 두뇌가 있기 때문에 존엄하다. 생각이 신경세포에 기록되고, 보관되어 필요할 때 행동을 하게 한다. 이것은 신경계의 신호전달 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이것이 신경계의 기본적인 기능이고, 신체의 사령탑 역할을 하는 이유이다. 따라서 위에 기술한 어떠한 원인에 의해서도 신경계 질병이 발생되면 환자는 생각과 행동을 바르게 할 수 없기 때문에 고통이 따른다.
셋째, 신경계의 주된 세포는 신경(원)세포이다. 여기에 신경 세포가 제 기능을 원활하게 할 수 있도록 보조하는 별세포, 길고 긴 신경돌기를 통한 신호전달을 빠르게 하기 위하여 절연체를 입혀주는 희돌기교세포, 뇌척수액의 이동을 일으키는 뇌실막 세포가 있고, 신경계 기원은 아니지만 뇌의 침입자에 대하여 방어 하는 소교세포가 있다. 이 세포들은 대뇌에서부터 척수에 이르기 까지 어느 부위에나 서로 다른 밀도로 분포하고 있다. 또한 질병의 발생 원인이 무엇인가에 따라 질병을 일으키는 세포가 다르기도 하며, 그 고유 기능이 다름으로 해서 임상증상도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다.
하나를 더 추가하면 신경계를 구성하는 세포와 조직으로서 중요 한 것이 혈관이다. 대뇌는 체중의 2%에 불과한 1,300-1,500g이지만, 신체 전체 혈류의 15%, 전체 산소의 20%, 에너지의 25%를 사용한다. 에너지는 당 대사에서 나온 포도당을 주위에 있는 별세포의 특수운반체를 이용하여 공급받는다. 따라서 대뇌는 신경원과 돌기를 내는 세포들의 질 좋은 단백질, 신경돌기를 둘러싸는 절연체인 지방질, 풍부한 혈류로 인한 공기 좋은 환경, 포도당 에너지원 등 소위 젖과 꿀이 흐르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뇌-혈류 장벽이라는 검문소가 설치되어 있고, 단단한 두개골과 3층의 뇌막에 뒤덮여 뇌척수 액 사이에 떠있는, 그야말로 사령탑에 걸맞는 절대적인 보호를 받고 있다. 이러한 보호 속에 서도 질병은 발생된다.
병리의사
발단-전개-절정-대단원은 인간의 삶을 담은 이야기책이나 소설의 흐름이다. 이 흐름처럼 사람도 태어나 성장하고, 나이 들어 가고, 인생의 절정에 오르고, 병들고, 생을 마감하는 대단원에 이른다. 이것은 누구나 “그렇지” 느끼는 일반적인 삶의 과정일 것 이다. 현대의학의 발전으로 맞이한 장수사회는 인생의 절정기를 늘렸지만, 동시에 질병으로 활동에 제한받는 기간도 늘려주었다. 신경계는 인체에서 학습과 기억, 판단과 행동을 담당하는 중요한 장기이기에, 신경계 질환 환자 중에는 최선의 치료를 하였으나 의식이 돌아오지 않은 상태에 이를 수 있다. 이렇게 되면 호흡을 하고 심장이 뛰는 상태에서도 때로 사망 판정을 해야 하는 때가 있다. 이는 난치병 치료를 위한 장기이식과 의료윤리의 진보로 여러 나라에서 신중하게 시행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사망에 대한 윤리적 및 의학적 판단을 위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시기에 온 것이다. 이해를 돕기 위한 Robert N. Test(1926-1994, 미국 시인)가 쓴 “To Remember Me” -조병화 교수가 “영원한 삶” 이라는 제목으로 번역- 시의 일부를 소개한다.
언젠가는 나의 주치의가
나의 뇌 기능이 정지했다고 단정할 때가 올 것입니다.
살아 있을 때의 나의 목적과 의욕이 정지되었다고
선언할 것입니다.
그때 나의 침상을 죽은 자의 것으로 만들지 말고
산 자의 것으로 만들어 주십시오.
나의 몸을 산 형제들을 돕기 위한
충만한 생명으로 만들어 주십시오. --- 중략 ---
병리의사로서 전공분야에 기여를 하고, 좋은 연구와 논문을 쓰고 싶다는 희망으로 살아왔는데, 이는 동료 누구에게나 지극히 평범 하고 공통된 삶이었을 것이다. 신경원세포설(neuron doctrine)을 제창하고 1906년 노벨의학상을 수상한 산티아고 라몬 이 카할 (Santiago Ramon y Cajal, 1852-1934)은 “생물학 연구를 위한 규칙과 조언(Reglas y Consejos sobre Investigacion Biologia)” 이라는 저서를 발간하였다. 이 책은 영어로 “Advice for a Young Investigator”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으며, 우리나라에는 “과학자 를 꿈꾸는 젊은이에게”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판되었다. 질병을 탐구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현실적 조언과 마음에 새길만한 글이 많아 대학의 모든 교수님들에게 선물하였던 책이기도 하다. 그는 “천재의 논문이나 저서가 비판적으로 분석되어 어떤 오류도 발견 되지 않았더라도 그 분야에서 그가 발견하여 기술한 업적은 앞으로 발견되어져야 할 것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하였다. “걸음걸이를 바르게 하고, 말을 트이게 하고, 청력을 회복하기 까지 ---”라는 Test의 싯귀처럼, 이를 위해 원인을 밝히고 치료법 개발에 땀 흘리는 병리의사는 인생의 행운아라고 생각한다. 7-7
--- 본문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