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왜 사고와 표현인가?
1 현대사회와 의사소통
현대는 과학기술과 디지털 문명의 시대다. 테크놀로지와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편리하고 풍부한 삶을 제공해주고 있다. 컴퓨터와 인공지능 로봇의 개발은 인간의 힘든 노동과 작업을 상당 부분 대체하고 있고,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상용은 정보 및 지식의 교류를 편하고 손쉽게 하고 있다. 다양한 매체와 플랫폼들을 통해 누구든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이나 소식들을 전하며 공유하고 있다.
정보나 의견 등의 교류와 공유 과정이 사진이나 이모티콘 같은 이미지 형태로 행해지는 경우도 있지만 주로 문자나 음성을 통해 이뤄진다는 점에서 현대사회에서는 수많은 말과 글들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지금 우리는 말과 글이 넘쳐나는 시대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정보통신 기술이 발달할수록, 소통의 매체와 도구들이 개발될수록 우리는 더 많은 말과 글들 속에서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만큼 말과 글의 중요성, 의사소통과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담론들도 많이 들려오고 있다. 대다수의 대학교 커리큘럼에서, 공공기관이나 기업체의 특강 목록에서, 이런저런 문화강좌 등에서 말하기나 글쓰기 관련 강의들을 쉽게 접하게 된다. 문인, 언론인, 학자들이 이와 관련하여 많은 책들을 내놓고 있는 것을 보아도 말하기와 글쓰기의 중요성을 확인하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말하기와 글쓰기의 기회가 더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말하기와 글쓰기에 더 어려움과 곤란함을 겪는 경우들이 많아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아가 수많은 소통과 교류 속에서도 진정한 소통과 교류가 이뤄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통해 언제 어디서든 타인과 소식을 주고받을 수 있고 함께 정보를 공유할 수 있음에도 진정한 소통과 교류가 쉽지 않은 것은 역설적인 현실의 모습이다. 식당이나 카페 등에서 여럿이 함께 앉아 있는데도 각자 자신의 휴대전화만 들여다보고 있거나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귀에 이어폰을 꽂은 채 눈을 감고 주변의 상황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 모습은 그러한 현실의 한 풍경이다. 스마트폰에 빠져 좀비처럼 영혼 없이 길을 걷는다는 의미의 합성어 ‘스몸비’는 소통의 수단인 휴대전화가 오히려 남들과의 충돌을 야기하고 원활한 교통을 방해하는 장애물이 될 수도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중고등학교 청소년 세대가 만들어낸다는 ‘급식체’는 다른 세대의 이해를 차라리 거부하려는 듯하며, 사적인 대화에서 습관적으로 남발되는 약어나 속어의 사용은 공적인 발표 자리나 중요한 문서에서도 걸러지지 않은 채 등장하면서 전달과 이해를 방해하곤 한다.
말하기든 글쓰기든 인간적인 소통을 위한 것이다. 소통을 방해하고 관계를 이어주지 못한다면 말하기와 글쓰기는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말하기와 글쓰기의 의미는 한 개인의 일방적이고 강제적인 전달이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상호간의 연결이며 관계 맺음에 있다. 그렇다면 말하기와 글쓰기에 있어 ‘진정성’의 의미는 단순히 사실 그대로를 전달하는 데 그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말하기와 글쓰기의 진정성이란 ‘솔직함’이나 ‘정직함’의 의미를 넘어 듣는/읽는 이와의 진정한 교감과 공감을 바라는 말하는/글쓰는 이의 고민과 배려의 마음일 것이다.
인간에게는 많은 결함이 있다. 커다란 날개도, 강력한 이빨도, 빠르게 질주할 수 있는 다리도 없으며, 시력으로나 청력으로도 다른 동물에 비해 나을 게 없다. 그러나 이러한 한계들을 상쇄할 만한 생각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 스스로 사고하고 판단하며 결정하면서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고민할 줄 안다는 것이다. 생각의 힘은 인간의 육체적·물리적 결함들을 충분히 극복한다. 인간의 부족한 부분들을 대체할 만한 수많은 기기와 도구들을 만들어내면서 활동의 영역을 무한히 확장시켜왔으며 결국 인류의 생존과 발전을 가져올 수 있었다. 생각할 수 있다는 것, 즉 사고의 능력이 있다는 것은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첫 번째 요소다.
인간은 사고를 통해, 살아가면서 부딪히는 수많은 문제들에 대응하며 해결해 간다. 사소한 선택에서 중요한 결정에 이르기까지 끝없이 판단하며 평가하고 분석하면서 만족도 하고 후회도 한다. 복잡다기한 현상과 대상들을 이해하고 궁금해 하며 질문하고 반응한다. 스스로의 삶을 반성하고 예측하며 기대하고 다짐한다. 이렇듯 우리의 머릿속에서는 매순간 사고 행위가 펼쳐지고 있다. 모든 사고가 행동으로 옮겨지지도 않으며 행동으로 옮겨지더라도 매번 좋은 결과가 남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행위의 출발은 사고에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2 사고와 표현의 관계
인간은 사고할 줄 알며 그것을 표현할 줄 안다. 사고와 표현은 인간을 다른 동물과 변별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그러나 사실 다른 동물들도 나름의 지각과 판단 행위를 하며 자신의 감정이나 상황을 울음이나 날갯짓 등으로 표현할 줄 안다. 개가 꼬리를 세우는 것이나 벌이 날아다니는 모양은 모두 일정한 뜻을 전달하는 신호다. 정보나 의미를 전달한다는 점에서 그것은 그들에게는 일종의 언어인 셈이다. 그러나 그들은 언어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다. 일회적이며 본능적으로 순간의 상황을 드러낼 뿐, 정교하며 섬세하고 효과적인 전달을 위한 고민이나 또 다른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은 끊임없이 자신의 언어와 표현에 대해 회의하며 고민한다. 자신의 생각을 돌아보며 잘못된 판단을 후회하고 반성하며 정확하지 못한 표현이나 전달의 효율성에 대해 생각한다. 생각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표현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한다. 그리고 더 나은 사고와 표현을 위해 연습하고 훈련한다. 말하기·글쓰기에 관한 교육과 학습이 그것이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변별점은 단지 사고하고 표현할 줄 안다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사고와 표현에 대해 고민할 줄 안다는 것이다.
아래는 정찬의 소설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의 한 대목이다.
제가 누구인지 알기 위해서는 인간을 알아야 했고, 인간을 알기 위해서는 인간의 언어를 습득해야 했습니다. 그런 과정을 거쳐 보잘것없는 한 마리 침팬지가 인간으로 변신한 것입니다.
소설의 화자이자 주인공인 침팬지 ‘나’는 인간(학술원 회원)들에게 자신이 변화해가는 과정을 보고하고 있다. 소설 전반에 걸쳐 ‘나’의 이야기의 요지는 자신이 인간으로 변신할 수 있었던 것은 인간의 언어를 습득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언어를 습득해야 했던 이유로 ‘인간을 알기 위해서’였다고 밝히고 있다. 즉 인간을 알기 위해서는 인간의 언어를 알아야 했고 언어를 습득해 가는 과정에서 인간으로 변신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19세기의 소설 ??프랑켄슈타인??은 생명체-괴물이 자신을 만든 빅터 박사로부터 버림을 받은 뒤 숨어 다니는 동안 인간의 언어를 발견하게 되고 스스로 학습해간다는 설정을 흥미롭게 보여준다. 괴물이 인간의 언어를 습득해 가는 과정을 상세히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들은 자신들의 경험이나 감정을 상대에게 전달하기 위해 ‘음절이 있는 소리’를 갖고 있으며, 또한 그것이 서로에게 감정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을 괴물은 깨닫는다. 다른 이에게 감정들을 일으킬 수 있는 언어가 인간에게 있다는 사실은 괴물에게는 경이로운 발견이며, 그런 점에서 괴물에게 인간의 언어는 창조와 탄생을 가능케 하는 ‘신과 같은 과학’이다. 괴물 역시 그것을 가지고 싶어 하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만다. 이는 역설적으로 언어가 인간만이 보유한, 인간 정체성을 결정짓는 요소임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어쨌든 괴물은 인간의 언어를 알게 됨으로써 지속적으로 인간의 언어를 의식하며 그것을 갖고 싶어 한다. 결국 괴물은 인간 가정집에 몰래 숨어 들어가 지내면서 인간들의 생활을 훔쳐보는 동안 단어의 발음과 그 표상 사이의 자의적 관계를 이해하게 된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언어로써 세상을 설명할 수 있음을 인식하게 된다. 단어들의 ‘차이’에 의한 의미 발생과 개념화의 관계를 터득하게 되고 언어의 정교함과 다양함을 깨닫게 된다.
3 표현과 글쓰기의 힘
대형서점의 거대한 진열대 중에서 한 부분을 빼곡히 채우고 있는 글쓰기 관련 도서들을 본다. 그때마다 사실 궁금증이 일어나곤 한다. 그것은 글쓰기가 과연 책으로 학습될 수 있는 것일까란 오래된 의구심 때문이다. 시작법이니 소설작법이니 하는 책들에서 받았던 의심을 버리지 못하는 탓이다. 그것들로 모두가 시인이 되고 소설가가 될 수 없듯이 글쓰기 관련 도서들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의심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글쓰기 서적들은 쏟아지고 있고 그만큼 수요도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분명 이 분야 서적들은 지속적으로 출간되고 있다. 글쓰기뿐만 아니라 이와 연관되는 독서, 발표, 토론 등 의사소통을 주제로 삼는 도서들이 함께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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