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잠재적 문해학습자다. … 이처럼, 우리는 전 생애 동안 수없이 여러 차례, 문해와 비문해의 스펙트럼 사이 어딘가를 오가며 살아간다. 마치 문해학습자를 강 건너 저편의 ‘타인’인 듯 생각하지만, ‘그들’과 ‘우리’는 쉽사리 구분되지 않는다. 따라서, 문해학습자를 이해하는 일은 우리 모두의 한 가지 면모를 이해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
--- p.vi
문자를 사용하는 언어 환경과 권력의 문제를 불가분의 관계로 바라볼 때, 우리나라의 독특한 언어문화가 지닌 역사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는 100년 남짓의 짧은 시간 동안 권력 언어가 수차례 바뀌는 경험을 했다. … 우리나라 언어 환경의 변화는 문해학습자를 이해하는 데 시사점을 준다. 비문해 배제가 누적적, 중층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문자생활의 중첩성, 즉 한글과 한자, 일본어, 영어가 혼합되어 있는 것은 문해의 장벽을 더욱 높이는 주요한 요인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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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문해자들이 겪는 큰 어려움 중 하나는 바로 사회적 고립이다. ‘문자’로 소통하는 세계 속에서, 문자에서 소외된 존재는 자신과 타인들을 아예 서로 ‘다른 존재’로 구분 짓는다. 비문해자는 ‘그들이 살아가는 세상’의 경계 바깥에 놓인 존재인 것이다. 이들은 문자로 이루어진 ‘그들만의 세상’에서 확실한 ‘국외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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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학습자는 학교교육 연한이나 교과서 지식만으로 평가할 수 없는 살아 있는, 그래서 배워 가는 존재 그 자체다. 비문해자의 일상은 빈 것이 아니라 학습경험이 켜켜이 쌓인 곳이며, 소리 없이 들끓는 장(場)이다. 학습자로서 비문해자는 새롭게 조명되어야 하며, 이들의 두터운 학습경험은 존중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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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문해자들은 문자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나름대로 다양한 전략을 구사하는데, 대략 네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문자 듣기’, ‘문자 외우기’, ‘문자 그리기’, ‘문자 만들기’다. 비문해자들은 문자를 ‘읽는’ 대신에 자기 나름의 문자 세계에 접근하고 활용하는 방식을 익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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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해학습자들의 답에는 인지적 역량이 더해진 것 외에도 관계, 참여 등 일상생활 모든 면의 변화가 모두 들어 있다. 문해는 특정한 능력 습득이라는 획일적 기준으로 한정할 수 없으며, 사회 문화적 맥락을 반영하는 하나의 실천 활동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따라서 어떤 상태가 아니라 지속적인 성취를 이루어 가는 ‘됨(becoming)’의 과정으로서 문해에 접근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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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에서 지원하는 성인문해교육 정책은 여전히 전통적인 성인문해교육 모델에 기반하고 있고, 지원의 주 대상도 중고령층의 비문해자다. 최근에 디지털문해, 금융문해, 보건문해 등을 중심으로 한 신문해교육이 시도되고 있으나 부처별, 기관별로 각각 분절적으로 제공되어 통합적인 성인 역량 개발 측면에서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따라서 성인학습자의 특성에 대한 체계적인 이해를 토대로, 다양한 신문해력 개발을 통합적으로 지원할 수 있도록 ‘국가 문해교육 지원 체계’가 전면적으로 혁신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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