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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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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6월 24일
쪽수, 무게, 크기 112쪽 | 134g | 125*200*7mm
ISBN13 9791192333168
ISBN10 1192333160

중고도서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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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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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이 익으면 몇 칸의 방이 되지요? 아빠도 시의 집을 지어요, 가난한 사람들 입에 별무리 터지는 소리 자꾸만 고이게, 아빠도 아빠의 껍질을 까서 군침 도는 시를 나눠 주세요

잠든 아이들 동그랗게 옮겨 놓고 껍질은 두 팔 벌려 덮었다 편다 새콤하고 달콤한 말들이 꽉 차 있다

어둠도 심장에 주홍빛 귀를 기울인다
--- 「귤」 중에서


쓸쓸하지는 않습니다 물소리도 한참을 따라 걸어요 흘러오는 것과 흘러가는 것은 어느 지점에서 분간되는 걸까요? 물결의 걸음을 세다 그만 내 발길은 잊고 맙니다
온몸 스트로처럼 꽂아 세월 마시는 머리 하얀 갈대 무리, 너머에 오리들은 징검돌처럼 묵묵하네요

(…)

길이 다시 귀를 열고 발자국 소리를 따라 걷습니다 오선지 그으며 쫓아오던 둑길 전봇대들도 수문 넘어 민통선으로 왜가리를 배웅하고 돌아서 저녁불을 켜러 갑니다
--- 「물소리를 따라 걷다」 중에서


뒷산에서 푸른 늑대가 운다

달달한 꿈이
한 달이면 만들어진다

일 년 열두 달 빨주노초파남보
가지각색 입고 오는

생과 죽음의 디저트,

지구는 내일도 태양에 구워지고

수성 금성 목성 화성 토성 명왕성
이것들 누가 주문한 걸까?
--- 「마카롱」 중에서


직벽을 더듬던 더듬이가 자꾸 미끄러졌다

여름은 대체 어디서 기진하였나
--- 「눈많은그늘나비」 중에서


땅골 곱대띠 사랑방 구석 자리
아무 때나 누가 오든 깎아 주던 고매
밤새 비상 물고 치통 다스리던 할매 옆에서
살얼음 김치 얹어 먹던 고매
해를 이고 가면 달을 이고 오는 물산 금광
돌가루투성이 고모를 기다리며
정지 밥 짓는 할매 옆에 부지깽이 들고 앉아
눈물 콧물 연금하던 고매
고매순 까다 까매진 열 손가락
부서진 손톱 들여다볼 적마다 문디 같던 고매
논밭 거머쥔 벼뿌리 얼음 위를 지치다 오면
대청마루 텅 빈 쪽거울 아래
스뎅 대접 가득 담겨 있던 찐 고매
고매꽃 한번 못 피워 보고 땅속에 묻힌
꽃근이 고매
--- 「꽃근이」 중에서


상목 아재의 맨발을 나는 본 적이 없다
올라와 수박 한 쪽 먹고 가, 몇 번의 아버지 청에도
꼴이 이래서, 수박 한 쪽 그냥 들고 가셨다
돼지 멱을 딸 때도 장화를 신고 있었고
동튼 후 물꼬 트고 오는 것도 장화였다
장날 면사무소 앞뜰에 늙은 염소를 묶어 놓고 토지 대장을 떼는 것도
상여를 메고, 떼 심은 봉분을 밟아 주는 것도 장화였다
(…)
형제도 없고 자식도 없고 배신할 여자도 없는
오직 한 짝의 장화
그가 감추고 있는 장화 속에 족적을 도무지 알 길이 없었지만
에휴 불쌍한 사람, 아버지는 말했다
다 떨어진 감꽃은 잊었지만
보이지 않는 그를 아무도 보려 하지 않던 장마 끝

장화다!

가림못에 떠 있는 그를 외지 낚시꾼이 발견했다
제 속에 물을 흠뻑 담고서도 끝내 그를 벗지 않는
--- 「장화였다」 중에서


퍽!
불이 나갔다
어둑어둑 저녁이 오자 진공 속 사슬을 끊고 뛰쳐나갔다

엄마는 알을 꺼내 두어 번 귀에 흔들어 보고 건네셨다
살릉살릉 죽은 별의 소리가 났다

빤히 보이는 안팎에서
점등과 소등의 줄탁이 있었고,
부화가 되자마자 어둠 속으로 날아간 새

심부름을 간다
예쁘다의상실 모퉁이를 돌아 동산약방을 지나
세제 냄새 흘러가는 개천 다리 건너
별자리를 이어 가면
밤하늘에 필라멘트가 반짝거렸다

나는 탁란이었을까?

재순이 엄마는 선반 끄트머리
골판지에 싸여 있는 알전구를 꺼내
그 고요를 내 귀에도 확인시켰다
번쩍! 소켓에서
전구가 나를 봤다
캄캄한 의심이 환하게 사라졌다

세상은 알전구 삼키려 돌부리 내미는 먹구렁이 길
허공에 알 하나 받쳐 들고 돌아오는 새
엄마는 캄캄하게 늙어 버렸다
--- 「알전구 심부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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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첫 시집의 중심에는 삶의 근원인 가족이 있다. 어떤 사회적 가치와 정치적 목적도 가정(家庭. 가족과 정원)으로 돌아가지 못한다면 실패가 된다. 위험한 현실 속에서 인내를 배운 그의 시가 세계와 대치하며 저 안쪽의 가족을 인식하고 형상하는 꿈은 곧 우리 모두에게 치유의 기쁨을 선물한다. 아버지의 부재 속에서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고 노래한 소월 소년의 꿈은 한국 시의 최종 목적지이다. 이 퍼스낼리티의 시들은 심장에서 뿜어져 먼 기약된 실핏줄로 ‘다시’ 돌아올 것을 믿는다. 언제까지고 그대 가족은 성채이며 삶의 목표는 시이다. 아내와 함께 노모를 지키며 다섯 아이의 힘으로 살아가는 파주 시인에게 전서구를 녹음 속에 날려 보낸다.

“김백형 시인, 같이 눈을 열어서(개안開眼) 마음을 열고(개심開心) 다시 마음을 열어서 멈추지 않고 산을 열어 가기(개산開山) 바랍니다.”
- 고형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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