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라]
신라 어부들이 태풍을 만났다. 그런데 태풍이 걷히고 나자 파도 사이에서 어떤 아름다운 여자가 널빤지를 잡고 떠다니고 있었다. 어부들은 그 미인을 건져 올리고 어떤 사연으로 그렇게 물에 빠졌는지를 묻는다. 미인은 자신이 백제 달솔 벼슬을 살던 일라라는 사람과 같이 살았다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참으로 공께서는 하늘이 내리신 대단한 분이십니다. 도둑이 도둑질을 하기 전에 쫓아낼 수 있고, 역적이 역적질을 하기 전에 죽여 없앨 수 있다면, 두려울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와 같이 대단한 공께 백제에서는 겨우 달솔 벼슬밖에 주지 않고, 그러면서도 이와 같이 하는 일 없이 집에서 놀게만 하고 있으니, 참으로 억울한 처사입니다.”
그 말을 듣고 일라는 말없이 술을 한 잔 더 마셨다. 잠시 말을 멈추고 곰곰이 생각하는 듯하더니, 일라가 다시 답했다.
“그것 또한 조정과 우리 성상께서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역적질을 한 사람은 죽이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 역적질을 하지 않은 사람을, 제가 반드시 역적질을 할 사람이라고 지목했다고 하여 어찌 죽이기까지야 하겠습니까. 아직까지 아무죄도 잘못도 저지르지 않은 사람을 비록 도둑이 될 것이 뻔해 보인다고 하여, 어찌 가만히 있는데 감옥에 가둘 수 있겠습니까.
그리하여, 성상께서는 저를 귀하게 여기시고, 다른 나라에 가서 재주를 쓰는 것은 막으려 하시지만, 백제 조정에서 스스로 제 말대로 나쁜 자들을 미리 잡아 없애고, 좋은 자들에게 미리 상을 내리는 일은 하실 수가 없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그저 이름뿐인 벼슬을 얻어 별 하는 일 없이, 이와 같이 술이나 마시고 가야금 뜯는 소리나 들으며 아름다운 것들을 찾아 노니는 것으로 세월을 보내며 지내게 된 것입니다.” - 20~21쪽
[김가기]
김가기는 신라 사람으로서 당나라에서도 과거를 보아 진사가 되었다. 신라와 당을 오가며 신기한 것을 많이 갖고 오가며 어떤 일이든 해결해준다는 등 신비한 소문이 많이 떠도는 사람이었다. 당나라 임금 이침이 궐에 들어오라 청하니 김가기는 하늘나라 임금이 불러서 올라가야 하므로 올 수 없다고 한다. 이침의 명을 수행하는 신하 중사는 김가기가 허풍을 친다고 생각하고 그 정체를 밝히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그러한 김가기로부터 어느 날 당나라 임금 이침李?의 신하인 중사中使에게 한 통의 편지가 왔다. 중사는 항상 힘써 일하며, 잠시도 맡은 바에 소홀히 하지 않는 성품을 지닌 사람이었다. 중사가 편지를 보니, 편지는 임금인 이침에게 보내는 것이었는데, 그 내용은 이러하였다.
“저, 김가기는 하늘을 다스리는 임금께서 내리신 명령서를 받았습니다. 이 명령서에서, 2월 25일까지 하늘을 다스리는 임금의 궁전에 있는 영문대英文臺라는 곳을 관리하는 직책을 맡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2월 25일까지는 이 나라를 떠나서 하늘로 가야 합니다.”
중사는 그 내용을 보고, 글씨가 아름답고 문장을 꾸민 방법은 정밀하나 내용은 매우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중사가 이침에게 편지를 보여주었더니, 이침은 크게 놀라면서 말없이 먼 곳을 보고 있기만 하였다. 그러다가 한참 만에 이침은 이렇게 말했다.
“이 사람은 필시 신라 사람들이 말하는 현묘지도玄妙之道를 터득한 자가 아니겠는가? 득도得道한 자가 아니라면 어찌 하늘을 다스리는 임금과 말을 주고받고, 시간을 정해서 하늘로 올라간다 하겠는가? 이런 사람은 내가 반드시 가까이 두고 이것저것을 물어보고 싶다. 그러니 많은 재물을 주고서라도, 반드시 대궐 안으로 불러들여보도록 하라.” - 56~57쪽
[지진기]
고구려 달탄 지방에 지진이 일어났다. 별을 보는 기관 중 좌영성실에서는 이 지진을 맞히지 못한 죄를 받게 될 것과 앞으로 일어날 지진을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가 때문에 분주하다. 그러나 별을 보는 관리인 일자가 된 지 오래되었으나 아직 직급이 낮은 소대일자는 해결에 아무런 열의를 보이지 않아 일자대형에게 야단을 맞고 심부름하는 옥저 아이와 함께 바깥으로 돌아다니는 일을 맡게 된다. 소대일자는 시간을 때우려고 호선무를 보고 나서 무희에게 빠져 일도 가정도 소홀히 하기 시작한다. 조정에서는 사자와 차주부를 보내어 지진의 원인과 대책에 대해 듣겠다고 하고, 좌영성실은 점점 바빠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