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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바로 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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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바로 살아라

: 신정일이 쓴 조선의 진보주의자들

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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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08년 09월 29일
쪽수, 무게, 크기 376쪽 | 508g | 153*224*30mm
ISBN13 9788993285376
ISBN10 8993285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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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조가 하옥됐다는 소식을 들은 성균관과 사학의 유생들이 대궐로 달려왔다. 순식간에 1,000여 명의 유생들이 광화문 밖에 모여들어 연좌 농성을 벌렸고 밀지를 받은 남곤, 심정, 성운成雲 등 훈구파들이 신무문을 통해 궁중에 들어온 후 사림파들과 다투었다. 그 사이 중종은 특명을 내렸다. 남곤을 이조판서에, 김근사金謹思와 성운을 가승지假承旨에, 심사순沈思順을 주서注書에 각각 임명했다. 심사순이 미처 들어오지 못하자 중종은 검열檢閱 채세영蔡世英으로 하여금 조광조 일파에게 죄를 주는 교지를 쓰게 했다. 그러나 주서의 역할을 대신하게 된 채세영이 붓을 쥐고 버텼다.
“이들의 죄가 뚜렷하지 않으므로 차마 빈말을 교지에 쓸 수 없다.”
성운이 붓을 다시 뺏으려 하자 채세영은 다시 소리쳤다.
“이것은 역사를 쓰는 붓이다. 아무나 함부로 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 제2장 「“사약이 떨어졌으니 더 가져오게.” 두 번째 진보주의자 조광조」 중에서

이튿날 집안 살림을 할 3년 치의 비용을 모두 이사종의 집으로 옮겼다. 위로는 그 부모와 처자를 섬기고 아래로는 식솔을 돌보는 데 드는 비용을 모두 자기 집에서 마련했다. 직접 소매를 걷고 가죽 띠를 매고는 첩의 예를 다하며 이사종의 집안에서는 조금도 돕지 못하게 했다. 3년이 지나자 이사종이 진이의 집안을 돌보기를 진이가 한 것과 똑같이 했다. 이후 3년 만에 진이가 말했다.
“이미 약속이 이루어졌고 기일이 됐습니다.”
그리고는 하직하고 갔다. 그런데 당시 사회에서 계약 동거가 가능한 이야기인가? 프랑스 철학자인 샤르트르가 보부아르와 계약 결혼을 한 것이 20세기였다. 계약 결혼이라는 독특한 방식으로 일생의 상호관계를 맺은 실존주의적 사랑도 파격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유교가 국교였던 조선에서 6년간을 함께 살기로 하고 행복하게 지내다 서로가 서로의 책임을 다하고 정해진 기한이 끝나자마자 깨끗이 이별을 한 것이 그들의 계약 동거였다. 오늘날에도 계약 동거나 계약 결혼을 하는 경우가 더러 있지만 그 끝이 좋은 경우는 별로 없다. 시작과 끝이 깨끗했던 이사종과의 계약 동거야말로 파격을 뛰어넘는 하나의 혁명적 시도였고, 황진이를 황진이답게 한 실천적 사랑이었다고 할 수 있다.
--- 제4장 「“내 시체를 길거리에 그냥 두어라.” 네 번째 진보주의자 황진이」 중에서

1608년 허균은 다시 공주목사에 임명됐다. 그러나 공주목사로서의 재임 기간 또한 길지 않았다. 비천한 신분의 사람들과 가까이 사귄다는 이유로 또다시 파직당하게 된 것이다. 부안으로 내려간 허균은 기생 이매창, 그리고 천민 출신의 시인 유희경柳希慶과 어울리며 세월을 보냈다. 그러던 참에 이매창이 38세의 나이로 세상을 뜨자 허균은 글을 남겨 인간에 대한 예의를 표했다.

이매창은 부안의 기생이다. 시에 밝고 글을 잘했으며 노래와 거문고에 능했다. 그러나 절개가 굳어서 색을 좋아하지 않았다. 내가 그 재주를 사랑하고 정이 두터워 서로 농담을 할 정도로 터놓고 지냈지만 도를 넘지 않았으므로 오래도록 우정이 이어졌다. 이제 그녀의 죽음을 듣고 글을 지어 애도한다.
--- 제5장 「“아직 할 말이 남아 있다.” 다섯 번째 진보주의자 허균」 중에서

정약용이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는 이전에 함께 활동하거나 사랑했던 사람들은 이미 세상을 뜬 후였고 남겨진 재산 또한 별로 없었다. 정약용은 회갑을 맞으면서 자신의 일생을 정리한 「자찬묘지명」을 지었는데, 여기에서 그는 “알아주는 사람은 적고 꾸짖는 자가 많으니 만약 천명이 인정해 주지 않는다면 비록 한 횃불로 태워버려도 좋다”며 자신의 삶과 사상이 수용되지 않는 현실을 비판했다. 정약용은 가난 속에서도 지조를 굽히지 않고 더욱 학문을 연마하면서 때로 청평산, 용문산 등지로 유람을 다녔다. 한편 그의 호인 여유당與猶堂처럼 몸가짐을 단속했는데 그가 지은 「여유당기」에 그의 인생이 쓸쓸한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내 병을 나 스스로 잘 알고 있다. 용기만 있지 지략이 없으며, 선을 좋아하지만 가릴 줄을 모르며, 마음 내키는 대로 즉시 행하기만 하지 의심하거나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그만둘 수 있는 일인데도 마음속으로 기쁘게 느껴지기만 하면 그만두지 못하고, 하고 싶지 않은 일인데도 마음속에 꺼림칙하여 불쾌한 일이 있으면 하지 않을 수 없었다.
--- 제8장 「“나의 책들을 횃불로 태워도 좋다.” 여덟 번째 진보주의자 정약용」 중에서

동학의 지도자들 중 확실하게 새로운 세상을 열고자 했던 사람은 김개남뿐이었다. 그는 이름조차 남조선을 열어젖히겠다는 의미로 개남이라고 바꿨고 “개남국왕”이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그가 꿈꾸었던 새로운 세상이 어떤 것이었을까 가늠해 보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그가 믿고 실천했던 동학이 당대를 “천명을 돌보지 않는 난세이며 나쁜 질병이 가득 찬 혼탁퇇 세상”이라고 보았던 것을 보면 그가 꿈꾸었던 세상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김개남은 세상 모든 사람이 더불어 살면서 “사람이 곧 한울”이 되는 세상, 그 중에서도 특히 농민이 주인이 되는 세상을 이루고자 했을 것이다...... 김개남의 휘하였던 영호 대접주 김인배金仁培 부대는 지리산을 넘어 하동, 진주까지 진출했다. 김인배 역시 광양에서 처형되고 말았지만 나머지 세력은 농민혁명이 끝난 후 지리산으로 숨어들었고, 결국 1차, 2차, 3차 지리산 의병 전쟁의 주역이 됐다. 진주 형평사衡平社(일제 강점기에 백정 등 천민 계급이 중심이 되어 평등 사회 운동을 펼쳤던 단체) 운동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던 그들은 고려공산당을 만든 김단야金丹冶에게까지 영향을 미쳤고 민중 운동의 중심 세력으로 오늘날까지 이어졌다.
--- 제10장 「“새로운 남조선을 열어젖히리라.” 열 번째 진보주의자 김개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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