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뵈올 수 있는 세 가지 길이 있습니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요 1:18)입니다.
둘째,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에서의 가시적 계시(롬 1:19, 20)입니다.
셋째, 제3의 길로서 “형제간의 서로 사랑”입니다(요일 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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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영화’는 몸과 영혼이 함께 구원받는 것이고, 그리스도와 같게 될 것이고, 완전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이 구원은 타락 전 아담의 지위와 상태보다 훨씬 우월할 것입니다. 아담은 오실 그리스도의 모형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은 아담의 의보다 훨씬 우월한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는 아직 몸의 구속을 받지 못하고 그리스도 재림 시 홀연히 변화되어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은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때입니다. 환란 중에도 즐거워할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성화 과정 중에서 고난을 받는 로마의 성도들에게 구원의 영화(榮化) 단계에 대한 소망의 교리를 설명하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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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한쪽 저울에 “현재의 고난”을 올려놓습니다. 성도들의 고난은 현재의 고통에 불과합니다. 유한한 시간을 넘어서지 못하는 가벼운 고통이요 일시적인 고통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 고난이 ‘중량 미달’이라는 판정을 내립니다. 저울에 달아 보니 가볍다는 것입니다. 또 바울은 다른 쪽 저울에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을 올려놓습니다. 거기서 그는 너무 무겁고 영원한 무게를 확인합니다. 우리는 이 영광을 누리고, 그 지식을 아는 데 있어서도 부족합니다. 그것은 장차 나타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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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신자는 세상이 왜 이 모양이냐고 회의할 수 있습니다. 단순히 자연현상의 하나로만 인식합니다. 소위 실존주의 철학자들도 인간의 생로병사를 자연현상의 하나로만 취급하여 자연질서에 운명을 맡기려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전혀 다른 관점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으로 범죄한 인간은 흙으로 돌아가고, 땅도 인간의 범죄로 인하여 저주를 받아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은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으로 인간에게 죽음이 왔고, 그 치료책도 하나님의 명령으로 이루어집니다. 요한복음 12장 50절을 보면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아노라”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모두는 예수님이 ‘영생’인 줄로 믿고,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영접하여 영생을 얻고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계시록 21장 5절에 보면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라는 하나님의 명령으로 피조물은 허무한 데서 해방될 것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계 21:1)에서 속량받을 때까지 피조물은 일시적인 현상으로 허무성을 지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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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아먹고 산다는 것은 신자의 신앙생활 실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비밀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알려진 비밀이요 신자는 반드시 맛보고 살아야 할 그리스도의 신성에 참여하는 삶입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성령의 맛’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미리 맛보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지상의 그리스도인의 삶을 수행하는 동안에 받은 최고의 행복이며 영광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의 심령천국입니다(롬 14:17). ‘성령의 맛’은 진리의 성령이 주시는 맛이므로 진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맛이며, 진리의 말씀의 맛입니다. 여러분이 말씀을 읽거나 듣거나 암송하거나 묵상할 때 임하는 신령한 영적 감각의 맛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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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님의 간구는 탄식을 수반하며 탄식 안에서 표현됩니다. 하나님의 피조물과 하나님의 자녀들이 현재처럼 불완전한 상태이기 때문에 성령님은 탄식하십니다. 그러나 성령님께 불완전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은 우리의 탄식에, 그리고 세상과 교회의 고통에 동참하시며, 또 그들 모두가 최종적인 자유를 누리기를 바라십니다. 우리와 성령님이 함께 탄식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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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우리의 성화,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은 현세에서는 완전에 이르지 못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볼 때, 그리고 우리의 몸이 그리스도의 영광의 몸과 같이 될 때에 완성에 이를 것입니다. 이러한 선택과 예정의 교리는 우리의 자유방종을 가져오는 원리가 아닙니다. 인간의 행복은 거룩함 속에 있습니다. 누구도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는 것 외에는 자신의 택하심에 대해 알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도록 예정되어 있는 우리는 세상과 타협할 수 없습니다. 세상의 모든 유혹을 믿음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복음의 능력으로 물리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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