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이란 걸 아는지, ‘후회’는?
그걸 누가 모르냐고? 누굴 바보로 아느냐고?
이것은 여러분에게는 조금 미래의 이야기, 나에게는 조금 옛날의 이야기야.
슬픔과 후회가 없었던 시대.
그때는 모두가 갓 구운 빵처럼 말랑말랑하고 행복했지.
평생 굳지 않는 말랑말랑 마법에 걸렸다고 믿는 것처럼.
어때, 끝내주지?
지금부터 내가, 그러니까 3년 전의 내가 들려줄 것은 그 행복한 ‘시대’가 끝나 갈 무렵부터 슬픔이 되돌아올 때까지의 이야기야.
--- p.3~4
네무는 어떻게도 표현할 수 없는, 엷은 얼굴을 했다.
“유령 나라에서는 유령이 점점 줄어들고 있어.”
“유령 나라.”
다시 들으니 이상했다. 상상이 잘 안 됐다.
“그래, 그곳의 유령 인구가 줄어들고 있다고. 인구라고 말하는 게 맞나? 그건 잘 모르겠지만.”
네무는 과장되게 한숨을 내쉬었다.
“올해는 오봉 항공의 비행기를 탄 손님도 스무 명뿐이었어.”
--- p.52
“양배추롤의 양배추를 유령의 나라, 안에 든 다진 고기를 인간의 나라라고 해 봐. 고기를 싸고 있는 바깥의 양배추를 씹을 때는 양배추구나 생각하고, 고기 부분은 고기라고 생각하잖아. 하지만 양배추에는 고기즙이 스며들어 있고, 고기에는 양배추 맛이 스며들어 있어. 유령의 나라와 인간의 나라는 그런 식으로 되어 있는 거야.”
우아, 엄청 맛있는 비유다. 그러고 보니, 저녁 먹을 시간이 다 됐을 텐데 웬일인지 배가 고프지 않았다.
“유령은 양배추 맛처럼 이쪽 세계에 스며드는 거야?”
“맞아. 그러려면 아까 말한 것처럼 숨결의 힘이 필요해. 사람이나 다른 뭔가의 형태로 드러나야 하거든.”
--- p.60
탑은 희미하게 서 있었어요.
망을 보는 이도, 보이는 이도, 모두 형태가 없었기 때문이에요.
형태가 없는 무언가가 형태가 없는 무언가를 살피려고 한 거예요.
그것은 희미한, 헛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무엇보다도 먼저, 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겨났다는 거예요.
“먼저, 보고 싶다, 가 있었어.”
--- p.68-69
혹시 이게 ‘슬픔’?
이유는 모르지만 왠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물론 짜증이 나서 울거나, 소리치거나 하는 아이도 있다. 하지만 누이코는 단지 짜증을 내는 것은 아닐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직 슬픔이란 감정이 남아 있는 사람도 있다는 건가.
기억이 나지 않을 뿐이지 나도 어릴 때는 슬픔이란 걸 알았을까.
--- p.133
“유령이, 자신의 모습을, 드러낼 수 있는 건, 자기 스스로, 생각하는 모습과, 살아 있을 때, 주위 사람들이, 보았던 모습이, 합해져야 한대요.”
그렇게 더듬더듬 말했다.
“그렇지, 네무?”
“우아, 그걸 다 기억하고 있는 거야!”
네무는 말했다.
“똑똑한 학생이네.”
“유령은 자신의 숨결만으로는 모습을 만들어 낼 수 없어요. 그러니까 유령이 멸종되는 것은.”
나는 말했다.
“우리가 죽은 사람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 p.180~181
더는 버티고 서 있을 수가 없었다.
넘쳐 났다, 마음이. 강이었다면 거기에 놓을 다리가 없을 정도로.
겐조와 먀오 타처럼, 나는 쪼그려 앉고 말았다.
이것이 슬픔?
정말로, 이것이, 슬프다, 라는 감정이라면.
나는, 이 감정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
도망치고 싶다.
하지만, 내 안에 있는 것에서, 어떻게 도망칠 수 있을까?
--- p.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