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살펴보니, 진(秦)나라와 한나라시대 사람들이 말하는 안자가 죽은 나이는 판본마다 서로 어긋나는 점이 많다. 『열자(列子)』 「역명(力命)」에 “안자의 재주는 보통 사람[衆人] 이하로 떨어지지 않았으나 18세까지 살았다.”라고 했고, 『회남자(淮南子)』 「정신훈(精神訓)」에는 “안연이 요절했다.”라고 했는데, 고유(高誘)의 「주」에 “안연은 18세에 죽었다.”라고 했으며, 『후한서(後漢書)』 「낭의전(郞?傳)」에도 “안자의 나이 18세에 천하 사람들이 모두 인(仁)하다고 칭송했다.”라고 했는데, 모두 안자가 죽은 나이를 18세라고 여긴 것으로, 이는 참으로 이설(異說)이니 근거할 만한 것이 못 된다.
--- p.46
살펴보니, 『시경』 「채숙(采菽)」의 「전」에 “전(殿)은 진정(鎭靜)한다는 뜻이다.”라 했고, 공영달의 「소」에, “군대가 행진할 때 후미에 있는 군대를 전(殿)이라 하니, 진중(鎭重)하다는 뜻을 취한 것이다.”라고 했는데, 내가 생각하기에 볼기[臀]도 사람의 뒤쪽에 처져 있으니, 역시 진중 하기 때문에 그렇게 이름을 붙인 듯싶다. 『춘추좌씨전』 「양공(襄公)」 23년의 「전」에, “제후(齊侯)가 위(衛)나라를 토벌할 때, 대전[大殿: 후군(後軍)]은 상자유(商子游)가 하지어구(夏之御寇)의 전차를 몰았다.”라고 했으니, 이 후군[殿]은 본래 군대의 편제이다. 형병의 「소」에는 『사마법(司馬法)』 「모수(謀帥)」를 인용해서 “‘네 마리 말이 끄는 전차를 탄 후군[大震]’이라고 했는데, ‘대진(大震)’은 바로 ‘대전’이니, 발음이 서로 비슷하다.”라고 했다.
--- p.132
살펴보니, “인(仁)”의 새김은 사랑[愛]이고, “성(聖)”의 새김은 통함[通]인데, 모두 『설문해자』에 보이니, 최초의 정의(情誼)가 된다. 통함[通]이란 말은 의심하여 막힘이 없고, 험난한 장애가 없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천지와 음양(陰陽)과 강유(剛柔)의 도에 통한 뒤에 하늘을 섬기고 땅을 살필 수 있고, 사람과 인의(仁義)의 도리에 통한 뒤에 자기를 완성시킴으로써 남을 완성시킬 수 있다. 만약 내가 이(理)와 의(義)에 아직 분명하게 깨닫지 못함이 있고, 내가 남에 대해 아직 다가가 감싸 주지 못함이 있으면 이는 곧 내가 의심해서 막히고 험난한 장애가 되어 통하지 못함이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사람이 그런 상태로 스스로를 다스리면 실행하는 일마다 어그러지고, 그런 상태로 남을 다스리면 내가 어깃장을 부리고 거스르게 된다.
--- p.212
살펴보니, 『중용』에 “군자의 도는 어렴풋하지만 날로 드러나고, 소인의 도는 반짝하지만 날로 없어진다.”라고 했는데, 군자는 항상된 마음이 있기 때문에 어렴풋하지만 날로 드러나고, 소인은 항상된 마음이 없기 때문에 비록 반짝하지만 날로 없어진다. “반짝[的然]”하는 것이 바로 없으면서 있는 체하는 모습이다. 『송석경(宋石經)』에는 “항(恒)”을 피휘(避諱)해서 “상(常)”으로 되어 있다. 『경전석문』에 “망(亡)은 글자의 본음대로 읽어야 한다. 이 단락은 옛날에는 별도의 장이었으나 지금은 앞 장과 합하는 것이 마땅하다.”라고 했다. 살펴보니, 황간본은 참으로 앞장과 합해 있어서 별도의 장으로 되어 있지 않으니, 더러는 노문초의 『경전석문고증』처럼, 『경전석문』에서 말한 것을 일러 후세 사람들이 교감(校勘)한 말이라고 한다.
--- p.337~3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