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어떤 면에서는 한 과학자의 일탈과 반항의 기록이다. 나에게 가치 있는 공부를 하라고 끊임없이 압력을 가하는 이 사회에, 단지 나 자신의 기쁨을 위해서도 공부할 자유가 있다고 외치는 목소리이다. 가치를 따지지 않는 공부가 삶을 풍요롭고 아름답고 즐겁게 만들 수 있다는 발칙한 주장이기도 하다.
--- p.9, 「프롤로그 ― 괴로운데 공부를 하라고?」 중에서
숨겨진 변수hidden variable 때문이다. 똑같이 했다고 생각하지만 뭔가 달랐기 때문이다. 그 뭔가가 무엇인지 찾아야 했다. 물의 양일까? 냄비의 크기? 불의 세기? 계란의 개수? 식히는 방식? 생각할 수 있는 변수는 다 생각해서 일정하게 만들어 재현성이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재현성이 확보되면 다시 그 변수 값을 하나하나 바꾸어가면서 어떤 망할 놈의 변수가 계란 껍질을 안 까지게 만드는지 찾아내야 한다. 또 그 변수가 더 이상 중요하게 작용하지 않도록 하는 방법을 발견해야 한다. 즉, 그 변수가 어떤 값을 가지든 항상 껍질이 잘 까지게 하는 결코 실패하지 않는 궁극의 방법 말이다.
--- p.30-31, 「1장. 음식 ― 매일 망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중에서
문자의 기원은 같지만 히브리어와 아랍어는 그리스어와 큰 차이가 있다. 우선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쓴다. 대부분의 문자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쓰는데 말이다(물론 한자와 한글처럼 예전에는 위에서 아래로 쓰는 문자도 있었다). 또 소리 중에 자음만 적는 방식이다. 모음은 외워야(찍어야?) 한다. 한글로 예를 들자면 ㅇㅂㅈ, ㅇㅁㄴ이라고 쓰여있으면 아버지, 어머니라고 읽는 방식이다. 뭐 이런 표기법이 다 있나 싶은데, 사실 표음문자라고 해도 소리의 모든 요소를 기록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예를 들어 한글도 음의 강약과 고저, 장단은 문자로 표시하지 않는다. 이렇게 문자로 표시되지 않는 음의 요소를 비분절음운이라고 하는데, 한마디로 히브리어와 아랍어는 모음을 비분절음운으로 취급하는 것이다.
--- p.77-78, 「2장. 언어 ― 돌아서면 까먹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 중에서
앞에서 매미라는 존재의 본질에 대한 철학적인 질문을 언급했는데, 이 17년 주기와 13년 주기의 매미의 삶에는 수학적인 질문도 있다. 13과 17은 1과 자신 외에는 약수가 없는 소수prime number이다. 땅속에서 오래 버티다가 나오는 것도 신기하지만 아니 왜 하필 13과 17이냔 말이다. 지금은 타계한 전설적인 진화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Stephen Jay Gould의 책 《다윈 이후》에 설명이 나와있다. 진화생물학에서는 포식자의 생애주기와 겹치는 걸 피하다 보니 이렇게 진화했다고 설명한다.
--- p.133, 「3장. 자연 ― 일상에서 발견하는 새로운 세계」 중에서
라틴어로 ‘respondeat superior’라는 표현이 있는데, 번역하자면 ‘주인이 답하게 하라Let the master answer’는 의미이다. 로마제국에서부터 통용되던 관습인데, 노예가 잘못을 해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힐 경우, 그 주인이 보상하도록 하는 규정이었다. 이 규정은 현대 영국과 미국의 관습법에도 그대로 남아있다. 조직의 리더가 명령한 일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의 법적 책임은, 명령을 수행한 실무자가 아닌 그 명령을 내린 리더가 진다.
--- p.176, 「5장. 사회 ― 더 나은 결정을 내리고 싶다면」 중에서
스도쿠가 아닌 어떤 다른 문제일지라도 답이 있다면 반드시 찾을 수 있다고 믿어야 한다. 이건 연구를 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댄 브라운Dan Brown의 소설 《천사와 악마》에서 물리학자 비토리아 베트라 박사는 어려운 문제를 맞닥뜨렸을 때 스스로에게 “기억해 내”라고 말한다. 지금은 답을 모를지라도, 이미 답을 가지고 있으니 기억해 내기만 하면 된다고 스스로를 설득하는 거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깜짝 놀랐다. 댄 브라운은 연구를 해보기라도 한 걸까? 연구를 할 때, “분명 답은 있어, 그렇다면 내가 찾아낼 수 있어”라고 생각해야 그나마 답을 찾을 가능성이 생긴다. 이 사실을 소설가가 어떻게 알았을까 싶었다. 하여간 스도쿠를 풀 때 이걸 잊지 말아야 한다. 반드시 답이 있다.
--- p.220, 「6장. 퍼즐 ― 어려울수록 더 재미있다」 중에서
혹시 이 책을 읽고 나에게도 탐험가 개미의 정신이 있을까 스스로에게 질문을 건네게 되었다면 뜨겁게 응원하고 싶다. 억지로 할 필요도 없고, 무리해서 할 필요도 없다. 그저 새로 알아가는 게 즐거운 분야가 있다면, 더 알아보고 싶다는 호기심을 자극하는 분야가 있다면, 주저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길 바란다. 어쩌면 삶이 더 풍요로워지고 더 아름다워지고 더 알차게 느껴질 수도 있다. 아니면 예상치 못했던 기발한 돌파구를 찾게 될 수도 있다. 물론 그렇게 된다는 보장은 전혀 없다. 끝까지 가치와는 아무 상관없는 나만의 놀이가 될 수도 있다. 그렇게 된다고 해도 괜찮다. 탐험이란 원래 그런 거니까 말이다.
--- p.282, 「에필로그 ― 나에게도 탐험가 개미의 정신이 있을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