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고 나면 남는 건 후회뿐이니, 자네 하고 싶은 대로 후회 없이 하게…”
─비상대책위원 시절 김종인 위원장이 건넨 조언 중에서
별의 순간. 독일어 ‘Sternstunde’에서 비롯되었다는 ‘별의 순간’은 운명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적 순간을 의미한다.
“인간이 살아가는 동안에 ‘별의 순간’이 한 번 밖에 안 온다. 내가 보기엔 별의 순간이 지금 보일 것이다. 본인이 그것을 잘 파악하면 현자가 될 수 있는 거고, 파악을 못 하면 그냥 그걸로 말아버리는 것.”
몇 해 전 문재인 정부 당시 대통령과 각을 세우며 소신 행보를 보인 현직 검찰총장을 향해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꺼낸 ‘별의 순간’이 정치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자타가 공인하는 대한민국 킹메이커가 다음 대권주자로 누구의 손을 드는지 언론의 촉각이 곤두선 시기였다. 그런 그가 꺼내 든 ‘별의 순간’이란 말 한마디는 대통령 선거 내내 회자 되었을 뿐 아니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의 결정적 순간 중 한 장면으로 꼽을 수 있겠다.
당시 나는 김종인 위원장과 함께 비상대책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박원순 시장의 사망, 오거돈 부산시장의 성추문 사퇴로 치러지는 보궐선거에 매진하던 터라 차기 대선까지 관심을 둘 여력이 없었다. 그럼에도 툭툭 던지는 정치 메시지 하나하나에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던 김 위원장의 정치 대화를 가까운 거리에서 지켜보며, 그가 왜 윤석열 총장을 향해 ‘별의 순간’을 언급했는지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돌이켜보면 ‘별의 순간’은 윤석열 총장을 대선후보로 더욱 각광 받게 만들던 핵심 메시지기도 했지만, 이 말을 꺼내 든 김종인 위원장에게도 킹메이커로서의 입지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기에 화자 본인에게도 ‘별의 순간’이 아니었을까.
소중했고 또 중요했던 ‘시간’은 흘러갈 뿐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시간이 흐른 뒤 그때 이런 말을 했었어야 했는데… 하며 후회해도 떠나간 ‘별의 순간’은 다시 붙잡을 길이 없다.
“지나고 나면 남는 건 후회뿐이니, 자네 하고 싶은 대로 후회 없이 하게.”
지난날 비상대책위원으로 당의 가치와 철학이 담긴 정강 정책을 전면 개정하는 중책을 맡이 활동하며 기득권의 벽에 부딪히며 힘겨워할 때 김 위원장이 내게 건넨 조언이다. 중요한 결정을 앞둔 시기, 마음을 움직이는 진솔한 대화는 상상 이상의 영향력을 발휘하곤 한다.
“이봐, 지나고 나면… 남는 건 후회뿐이라고!”
결정적 순간의 대화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행동을 변화시키며, 그 결과로 세상을 바꿔내는 커다란 소용돌이까지 불러일으킬 수 있다. 어느 날 느닷없이 주어지는 ‘별의 순간’, 우리는 어떤 대화를 통해 새로운 미래를 만들 수 있을까. 우리에게 꼭 필요한 대화의 리더십이 궁금하다면, 본격적으로 한 걸음 더 들어가 보자.
---「결정적 순간」중에서
“개인주의가 심해지고, 대화가 단절된 세상으로 빠르게 변해가더라도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그리움마저 사라지는 건 결코 아닐 것이다. 그럴수록 더 식사 한 끼를 함께 나누며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의 정에 목말라하는 것은 아닐는지.”
─윤석열 대통령과의 식사 정치를 회고하며
“김 박사님. 저 윤석열입니다. 식사 한 끼 같이 하시죠.”
2021년 여름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검찰총장을 그만두고, 대권 선언을 한 야권의 유력주자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연락이었다. 그렇게 광화문의 한 중국집에서 단둘이 점심 식사 자리를 가졌다.
살아 있는 권력과 맞서 싸워 온 강인한 이미지 때문일까,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나눌지 첫 만남에 부담이 컸다. 그런데 웬걸. 처음 만난 자리에서 악수를 하고 식탁에 앉은 뒤 한참을 메뉴판만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무슨 맛난 음식을 먹을지 진심을 다해 고민하는 게 아니겠나. 이 사람이 요리와 음식에 진심이었다는 걸 나중에 한 예능에 출연한 계란말이 시연을 보고서야 알았다.
대통령 선거를 앞둔 추석, 명절 밥상머리 민심이 중요한 때였다. 여러 예능에 정치인들이 앞다퉈 나가던 시기였는데, ‘집사부일체’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한 윤 후보의 계란말이가 대박을 터뜨렸다.
예능 촬영을 위해 아무리 준비를 한다 해도, 평소에 하지 않는 일을 능숙하게 해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집사부일체는 요리와 음식에 진심인 사람 윤석열의 모습을 카메라에 진솔하게 담아내었고, 특히 스테인리스 팬을 달구며 만들어 낸 특대 계란말이는 단연 장안의 화제가 되었다.
아내를 위해 정성스레 식사를 마련하는 남편, 주변 지인들을 위해 능숙하게 술안주를 마련해주는 한 중년의 뒷모습에서 검찰총장이라는 무거운 권력의 그림자는 자연스레 사라져버렸다.
대통령 선거 동안 서초동에 있는 윤 대통령의 자택에 여러 차례 드나들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당내 경선 토론이 끝난 어느 날 밤이었다. 시간이 늦었지만 토론 준비로 저녁을 거른 터라 한 차로 자택까지 이동한 캠프 내 소수가 집으로 들어가 야식을 곁들이며 맥주 한 잔을 들었다. 반바지로 편하게 옷을 갈아입은 후보가 부엌으로 들어가더니 냉장고에서 이런저런 재료를 꺼내어 뚝딱 야식을 만들어내는데, 예능에서 보던 그 모습 이상이었다. 본인을 위해 선거 내 고생한 식구들에게 직접 만든 요리로 정을 나누는데 마음이 동하지 않을 정치인이 세상 어디에 있겠는가.
식사 정치는 여의도뿐 아니라 우리 삶 전반에 커다란 효용을 안겨준다고 확신할 수 있다. 대화를 통해 다른 사람의 마음을 내 편으로 깊게 끌어오고 싶다면 따뜻한 정을 나눌 수 있는 식사 정치를 적극 활용하기를 권한다. 어찌 보면 나 역시, 점심 한 끼의 식사 정치에 지난 대선 내 정치 운명을 건 모험에 나선 셈이니 말이다.
---「윤식당이 만든 대통령」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