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질문은 우리가 늘 강조해 왔습니다. 수업이 끝나면 교사는 학생들에게 습관처럼 질문이 있는지 묻습니다. 교실이나 타인과 소통하는 상황이 아니라도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기도 하지요. 책을 읽을 때를 떠올려 보세요. ‘이 사람이 하려는 말이 무엇이지?’ 하고 소리 없이 묻는 지금,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이후에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지만, 질문은 지식의 빈자리를 메우려는 인간의 호기심에서 비롯하는 화행(話行)이자, 교육 차원에서는 학습자의 이해 수준을 예측하는 가늠쇠입니다.
--- p.8, 「들어가며」 중에서
우리는 단어와 단어, 문장과 문장을 생각보다 꼼꼼하게 읽지 않습니다. 전체 글에서 첫 한두 문단을 부지런히 읽을 뿐 이하의 문단은 눈으로 빠르게 훑어 읽지요. 스마트폰으로 기 사를 볼 때 자신의 모습을 떠올려 보세요. 보통 제목을 보고 첫 문단의 한두 문장을 읽은 뒤에는 댓글을 확인하려고 스크 롤을 하단으로 내리지 않습니까?
--- p.23
하지만 어떤 때는 질문하지 않기도 합니다. 어쩌면 ‘못한다’는 표현이 더 적확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언가 새로운 지식을 배우거나 누군가의 의견에 반론을 제기하는 상황처럼 꼭 물어야 할 때도 말이지요. 수업이나 강연을 마칠 때면 교 수자는 통과 의례처럼 질문이 있는지 청중에게 묻습니다. 이 런 순간에, 저 또한 손을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누군가 나 대신 손을 들어 침묵을 깨 주거나, 아무도 들지 않아서 수업이 어서 끝나기를 바랄 뿐이었지요. 일상에서는 쉽게 주고받는 질문이 왜 이런 자리에서는 쉽사리 나오지 않는 것일까요?
--- p.35
앎의 과정에서 자신의 역할을 소극적으로 인식하는 사람은 ‘굳이’ 질문하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런 사람은 소박한 인식론적 신념을 가졌을지도 모릅니다. 지식을 절대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서 자신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학생들이 교실에서 질문하지 않는 이유는 여기에 있을 것 같습니다. 경쟁 위주의 경직된 입시 제도 아래서 학생들은 주어진 지식을 그대로 수용해야만 좋 은 성적을 받을 수 있습니다. 논술 평가가 확대되고 고교 학점제로 교육 체제를 개편하는 등 크고 작은 변화가 있습니다 만, 그럼에도 대학에 진학하려면 주요 교과의 지식을 외우고 또 외워야 합니다. 잘 외워서 수능만 잘 보면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다는 믿음은 여전합니다.
--- p.66
인공 지능에 묻고 답하는 질문 과정은 온라인 읽기에서 오랜 시간을 들여야 했던 탐색, 평가, 종합의 과정을 대신합니다. 인공 지능은 독자가 검토할 만한 텍스트를 대규모 데이터로 학습한 상태이기 때문에, 독자는 그저 질문만 던져도, 이전에는 스스로 직접 탐색하고 종합해서 얻어야 했던 잠재 텍스트를 응답의 형태로 단시간에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인공 지능은 한 편의 완결된 에세이를 내어 주는 데 최적화되어 있습니다.
--- p.90
질문은 본능적인 행위입니다. 인간은 학습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쉬지 않고 새로운 지식을 터득해서 주어 진 상황을 개척해 왔고 지금의 현대 문명을 이루었습니다. 질 문 대상이 자연 현상이면 ‘과학’이, 세계와 인간의 삶에 대한 본질을 탐구하면 ‘철학’이 세워집니다. ‘사과는 왜 나무에서 떨어지는가?’라는 물음에서 만유인력의 법칙이 만들어졌습 니다. 같은 사과를 보고도 칸트는 “사과가 빨갛게 ‘보인다’고 해서 정말 빨갛다고 할 수 있을까?”라고 묻습니다. 이 질문은 인간의 이성이 어떻게 세상의 작동 구조를 인식하는지를 설 명하는 토대가 되었습니다. 대단하지 않나요? 질문하기는 인 간이 할 수 있는 주체적이고 열정적인 일입니다. 매체가 바뀌어도 그 본질은 변함이 없지요. 질문은 안주하지 않고 ‘앎’을 한 발 나아가게 하는 삶을 살아가게 합니다.
--- p.93
이는 체계적인 의심과 판단 유보로 가능해집니다. 체계적인 의심은 리터러시 능력이나 행위에 대한 무조건적 회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체계적인 의심은 ‘삼자적 관찰’과정으로, 자신의 해석이 미칠 영향에 대한 통제를 뜻합니다(이준웅, 2009: 24). 나도 모르게 자기중심적으로 상황을 해석하는 데서 비롯한 정제되지 못한 날 것의 느낌을, 이성적으로 다시 돌이켜보는 반성의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일종의 메타 필링(meta feeling)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어떤 대상을 인식할 때 지각의 결과로 ‘느낌’을 갖게 되는데, 이때 형성된 느낌은 생각을 떠올리는 과정에 큰 영향을 주게 됩니다. 우리는 얼른 떠오르는 1차적인 느낌을 재인식하고, 정선된 ‘생각’으 로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비판적으로 텍스트를 읽어 낼 수 있습니다
--- p.120
언어 생성형 인공 지능 기술에서는 데이터를 처리하는 방 식이 곧 ‘좋은 텍스트’를 생성하는 데 제약으로 작용합니다. 생성형 인공 지능은 학습한 대규모 언어 데이터를 토대로 사 용자가 원하는 정보와 관련된 자료를 탐색합니다. 이때 데이터를 선정하는 기준은 ‘질’보다 ‘양’입니다. 정보의 질을 고려 하지 못하고 가능한 한 많은 정보를 끌어모아 분석합니다. 그렇기에 학습한 자료 다수가 ‘오염’되었다면, 결괏값 또한 부정확하고 왜곡될 수밖에 없지요.
--- p.137
대규모 언어 데이터를 질문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은, 답하는 대상이 가진 정보를 비판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일깨워 줍니다. 이는 인공 지능이 생성한 응답의 출 처를 평가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교사가 질문의 대상일 때, 학습자인 독자는 교사가 가진 정보를 신뢰하고 타당하 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다중 텍스트 읽기에서 저자의 권위가 높다고 평가하면 정보의 질을 되묻지 않는 것과도 같습니다.
--- p.138
인공 지능을 활용하는 읽기 맥락에서는 ‘질문’이 읽기를 시작하고 지속하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인공 지능으로부터 텍스트를 받으려면 독자는 질문해야 합니다. 읽기 목적과 과제를 중심으로 내가 원하는 내용이 ‘무엇’이며 ‘왜’ 필요한지를 질문 내용으로 구성해야 하지요. 읽을 텍스트가 이미 주어 진 상태라면 묻지 않았을 테지만, 인공 지능을 활용하는 읽기는 시작부터 문제 해결의 성격을 띱니다.
--- p.170
질문 연속체 개념을 제안한 미국의 교육 연구자 마자노와 심스(Marzano & Simms, 2014)는 효과적인 질문 연속체 요소로 ‘세부 사항’과 ‘범주’ ‘정교화’와 ‘증거’를 제시합니다. 이에 따 르면 학습자는 구체적인 사실(세부 사항)로부터 유사성과 차이 를 인식하며 일반적인 속성을 도출(범주)하고, 그 이유를 떠올 려(정교화) 근거를 마련하는(증거) 과정에서 내용을 깊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 p.187
앞선 응답과 비교해보면, 질문 연속체를 적용했을 때 확연히 더 구체적이고 독자가 구하고자 했던 정보에 가까운 정 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물론 질문 연속체를 적용하는 과정과 그 결과도 한계가 있습니다. 질문을 던진 저는 감염병 관리 체계에 ‘반대’하는 사람의 입장을 얻고 싶었지만, 이안은 긍정적으로 편향된 답을 계속해서 내주기도 했지요. 그래도 어느 정도 보완이 가능했습니다. 우리가 조금 더 끈질기게 매달리면 됩니다.
--- p.206
옛말에 ‘우문현답(愚問賢答)’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리석은 질문을 해도 현명한 답을 내어 주는 것을 말하지요. 인공 지능 시대에는 먼저 현명하게 질문해야 원하는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지금은 인간의 ‘현문현답(賢問賢答)’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 p.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