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이 평온하고 바람도 잔잔하니 보이는 것도 많네요.”
그녀가 숨을 내쉬며 말한다.
“자연에서 얻는 것이 많아요. 처음에는 보이지 않지만 걷고, 뛰고, 달리고, 또 걷고 그러다 보면 보이기 시작해요”.
“어쩜 이곳은 태고의 시간 속 같아요.”
--- p.34
“천국과 지옥은 같은 곳이오. 당신 나이 때는 천국과 지옥이 떨어져 있는 것 같지만 내 나이가 돼서 보면 천국과 지옥은 같은 곳이었소.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면 천국과 지옥을 같이 얻듯이 말이오.”
노인의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아픈 것이지. 사랑하는 것을 가지려면 말이오.”
--- p.58~59
나는 귀촌하고 나서 자연의 세계를 얻었다. 바람, 나무, 달, 태양, 고요, 소리, 잔향, 나비, 산벌레, 산도깨비가 다 내 것이다. 생강나무 군락을 지나니 그 아래로는 제비꽃이 장관이다. 눈이 다 부시다. 홀아비바람꽃도 요정처럼 날아다닌다. 속새, 박새가 반갑게 맞이한다. 참졸방제비꽃과 노랑제비꽃은 계절을 알고 찾아온다. 숲에는 커다란 방과 여러 개의 방이 많다. 하나의 끝은 하나의 시작이다. 걷기는 침묵과 초대, 꿈이다.
--- p.67
“자연은 함께 살아야 몸으로 터득돼요. 지식으로 되는 건 사실 어느 학문적 집합일 뿐이죠.”
그녀는 동의하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자연은 엄마 같아요. 온유하고 모든 걸 다 주는 것 같지만 한번 화가 나면 굉장히 난폭해요. 보란 듯이 매질해요. 모두 주는 것 같다가 하루아침에 정신 차리게 만들죠.”
--- p.133~134
귀여운 스머프 같은 사람들이 사는 미니 행성으로 보인다. 모형의 세계다. 모든 게 장난감 같고 게임 같다. 대열을 정비한다. 까마귀는 V자 세 마리 아래 왼쪽으로 다른 산새들은 오른쪽 아래로 서서 별 모양을 만든다. 자유롭고, 온유하고, 차분하다. 우리가 산을 하나 넘으면 빛이 따라오고 또 다른 산을 넘으면 그림자가 쫓아 온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이 지구라는 행성은 너무나도 평화스럽다.
--- p.203
그날 불은 꺼지지 않았고 새벽이 되어서야 까막딱따구리와 긴점박이올빼미가 칼산에서 날갯짓하며 돌아왔어. 우리는 손을 잡고 닿을 듯 말 듯 잠을 잤어. 새벽녘 그날처럼 푸르고 찬연한 날은 없었지. 그날은 꿈도 없었지.
--- p.262
눈물이 내렸다. 눈이 내렸다. 또 눈이 내렸다. 내 허리까지 눈이 계속 내렸다. 치울 수가 없었다. 흰 고통의 흰 눈이 풀 향처럼 내렸다. 고통스러웠다.
--- p.289
눈과 함께 당신이 다녀갔다. 서걱서걱. 나와 정원을 수십 번 돌고 춤을 추었다. 아무도 없었다. 멍멍 짖는 벨라와 흰 눈만 가득했다.
--- p.2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