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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엽 감는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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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엽 감는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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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4년 04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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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용량 EPUB(DRM) | 0.66MB ?
ISBN13 9788994175249

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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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에는 시계가 많았다. 방마다 하나씩, 8일마다 태엽을 감는 추 달린 시계들이 매시 정각과 삼십 분에 종을 쳤다. 시계 여럿이 내는 종소리가 아름답게 어우러졌지만, 태엽 감는 일은 그게 아니었다. ---p.16

“쉬, 쉬.”
그녀가 소리를 냈다.
“칠면조를 산책시키러 나왔나 봐요.”
청년이 말했다.
“칠면조를 죽일 용기를 내는 중이에요.”
“그렇군요. 엘리자베스예요? 내 이름은 티모시 에머슨이에요.
우리가 칠면조 요리를 먹는다는 것은 알았지만, 어머니는 칠면조가 아직 살아 움직인다는 말은 안 하셨는데요.”
“녀석은 영원히 살아 움직일지도 몰라요. 보기보다 힘든 일이네요.”
엘리자베스가 말했다. ---pp.68~69

하지만 처음 신호등에서 그녀는 걸음을 멈추었다. 허리를 굽혀 장화 한 짝을 벗더니 티모시에게 건네며 말했다.
“당신이 신어요. 이걸 신으면 우린 동등해져요.”
그는 장화 한 짝을 신었다.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자, 두 사람은 취한 사람들처럼 비틀비틀 걸었다. 한쪽 구두가 비척비척, 장화가 철벅철벅, 다른 구두가 비척비척. 둘의 그림자가 이쪽에서 저쪽으로 기울어졌다. 축 처져서 발을 질질 끌고 가는 모습이 우스꽝스러웠다. 엘리자베스가 그림자를 손짓하자 티모시는 미소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그가 웃기 시작했고 엘리자베스도 같이 웃었다. 그들은 뻣뻣한 손을 잡고 나머지 길을 누비며 걸었다. 그 모습이 흰 들판에서 비틀대는 검은 종이 인형들 같았다. ---p.127

“모든 사람이 한 달에 하루 날을 잡아서, 다른 일은 하지 않고 울기만 해야 해. 그러면 다들 훨씬 나아질 거야. 범죄도 그치고 전쟁도 그치고, 장군들은 무기를 내려놓고 ….”
“하지만 터무니없는 울음은 아니겠지.” ---p.333

“난 당신이 감탄스러워요.”
마거릿이 말했다.
엘리자베스는 무심히 대꾸했다.
“왜요? 하지만 난 투표 순서를 기다리면서 생각했어요. ‘내가 그 정도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 결정을 내리는 것 말이야. 내 인생을 정돈하는 것 말이야. 한번 부모님이 편안히 숨 쉬게 하는 것 말이야.’ 그래서 노력했고 어떻게 됐는지 당신도 알겠죠. 결승점에서 ‘안 돼, 내가 실수하는 거라면 어떡해?’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가끔 나를 뺀 모든 사람이 내가 모르는 어떤 것을 알까 봐 걱정스러워요. 그들은 궁금해하지 않고 삶을 살아가요. 마치 다른 데 여분 몇 가지를 숨겨둔 것처럼 말이죠. 나는 그렇게 믿어보려고 했지만 그럴 수가 없어요. 사물은 너무도 영원해요. 고칠 수가 없는 피해가 있지요.”
“하지만 오늘 당신이 한 일을 하는 데는 많은 용기가 필요했어요.”마거릿이 말했다. ---p.368

“어쩌다 학교에서 일을 시작하게 됐는지 말해드릴게요. 저는 판매원으로 일하던 공예품점의 유리창을 내다보고 있었어요. 골목 양쪽에 사람들이 몰려들었죠.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어머니들, 아기를 목에 태운 아버지들 …. 그런데 그들을 보자 난 갑자기 깜짝 놀랐어요. 사람들이 얼마나 열심히 자식을 키우는지 정말 놀랍지 않아요? 인간은 너무도 무기력하게 태어나고 아주 오랫동안 무력한 상태로 지내죠. 어른 누구나 한때 최소한 한 명은 데리고 다니고 먹이는 인내심을 발휘할걸요. 밤에 안아서 달래고, 오랜 세월 쉼 없이 그들을 위험에서 지키죠. 그들에게 문명을 익히게 가르치고, 다른 사람들과 이런저런 논쟁을 하는 법도 가르치죠. 또 그들을 동물원, 퍼레이드, 교육적인 행사들에 데려가고, 온갖 동요와 옛이야기를 들려주죠. 놀랍지 않아요? 사람들은 지갑을 오 분도 못 맡길 만큼 남을 믿지 않아요. 그런데도 오랜 세월을 자식을 보살피는 데 쏟아붓고, 그러면서도 그걸 별스럽게 여기지 않아요. 범죄자나 다른 부류의 실패자가 되더라도 그 사람은 그럭저럭 성장하잖아요? 그게 대단한 일이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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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작업을 하다 보면 소설 작품마다 조금씩 다르게 다가온다. 어떤 소설은 등장인물의 캐릭터가 중점적으로 강하게 느껴지고, 어떤 작품은 인물들의 관계와 사연에 초점이 맞춰진다. 이 책을 옮기는 내내 나도 모르게 ‘풍경’을 그리게 됐다. 우선 에머슨 부인의 집이 있는 오래된 동네의 풍경이 떠올랐다. 부인의 외모와 생활을 표현하는 대목마저도 내게는 ‘그녀의 풍경’으로 다가왔다. 에머슨 부인, 엘리자베스, 티모시, 매튜의 각기 다른 삶의 풍경이 때로는 어우러지고 때로는 어긋나면서 이야기가 흘러갔다. 그 흐름에 마음을 맡기고 따라가면, 을씨년스럽고 외로운 풍경 가운데 작은 불이 지펴지고, 마음을 나누고 오해하다가 절망하고 이별하지만, 또 이어지는 풍경이 흑백 사진의 연작처럼 펼쳐졌다. 에머슨 부인과 사연 많고 외로운 일곱 자녀가 엘리자베스를 중심으로 소통과 사랑을 나누는 소설 전체가 한 권의 무채색 사진첩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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