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경이로운 자연을 자개로 표현하고 싶다. 바람, 태풍, 달과 새, 봄, 여름, 가을, 겨울, 비와 눈, 나뭇잎과 계절마다 다른 나무, 구름, 산과 들, 바다와 파도, 고양이와 꽃, 별이 가득한 밤하늘과 우주, 블랙홀과 성단, 별자리, 거대한 향유고래와 하늘을 뒤덮을 상상 속의 용……. 이 모든 것에 대한 나의 공상과 상상을 자개로 표현하고 싶다. 이는 앞으로 내가 가장 집중해서 하고 싶은 일이기도 하다. 앞으로 풀어낼 이야기는 내 공상과 상상을 어떻게 자개로 구현할지 고민했던 내용이다.
---「들어가며」중에서
어떤 이미지를 어떤 기법을 사용하여 표현할지 결정하는 것은 온전히 디자이너의 몫이다. 주름질로 하느냐, 끊음질로 하느냐, 할패법으로 하느냐에 따라 달은 각기 다른 느낌을 준다. 어떤 대상을 표현하는 데 어떤 기법을 써야 한다고 미리 정해져 있는 것은 없다. 디자이너가 다른 느낌과 효과를 의도하면서 대상에 맞고 어울리는 기법을 선택하여 작업하면 되는 것이다.
---「1월, 거친 것은 바람이에요」중에서
아주 작은 존재의 빛도 아름답게 반짝인다는 것을 그때 그 작은 자개 조각을 통해 알게 되자 그 어떤 위로보다 힘이 되었다. 그 아름다운 반짝임을 만나 절망과 슬픔에 가라앉아 있는 것을 멈추고 수면 위로 올라올 수 있었다. 그날의 그 작은 조각은 여전히 내 마음속에서 아름답게 반짝이고 있다. 그리고 아름답게 빛나던 그 작은 자개 조각은 나에게 길고양이를 표상하는 이미지가 되었다. 그날 나는 자개에 완벽하게 매료되었고, 절망을 이겨내기 시작했고, 슬픔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이것이 내가 자개에 매료된 사연이고 지금껏 자개 디자인을 하는, 아니 앞으로도 계속하려는 이유다.
---「3월, 따스한 햇볕을 즐기며 기지개를 켜는 길냥이」중에서
그렇게 새롭게 발견한 아름다움을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자개로 표현하는 것,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느낀 아름다움을 내 방식으로 자개로 표현하는 것, 경이롭게 느끼고 경탄하며 바라보았던 그 모든 아름다운 것을 자개로 표현하는 것, 그것을 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 그것을 하면서 온전히 나로 살 수 있다는 것이 내 자개 디자인 생활의 가장 큰 즐거움이다.
---「4월, 텃밭에 씨앗을 심다」중에서
내 작품을 좋아하고 좋아해주는 이를 만나는 것은 나에게 기쁨이자 이 일을 계속하게 만들어주는 원동력이다. 그들이 없었다면 과연 내가 자개 디자인을 계속할 수 있었을까? 나를 계속 나아가게 했던 이들이여, 그대들이 너무나도 고맙다.
---「6월, ‘붕붕’ 벌들의 날갯짓 소리」중에서
‘문천뢰(聞天?)’ 이후 밤하늘과 우주를 주제로 세 작품을 더 작업했다. 그중 둘만 소개한다. 하나는 여름 밤바다 위로 솟아 있는 은하수를, 다른 하나는 지구 밖에서 우주선과 연결된 줄 하나에 의지하며 유영하고 있는 우주인(宇宙人)을 디자인했다. 앞 작품의 제목은 ‘평(平)’이고 뒤의 것은 ‘휴천균(休天鈞)’이다. 한자 平은 ‘음(音)이 골고루 잘 퍼져나가는 모양’을 상형한 것이라 한다. 여름 밤바다에서 밀려오는 파도소리가 모래사장에서 앉아 있을 그 누군가에게 가장 쾌적한 소리로, 그리고 그 바다 위 밤하늘을 수놓고 있는 은하수까지 그 파도소리가 골고루 퍼지기를, 혹은 은하수에서 퍼져나온 빛이 음파처럼 여름 밤바다로 흘러와 세상을 가득 채우는 그런 모습을 담았다는 의미로 ‘평’을 제목으로 정했다.
---「7월, 여름밤 하늘을 수놓은 은하수」중에서
실패를 하는 것이, 실패가 있는 것이 어쩌면 너무 당연하지 않은가 싶었다. 실패할 수 없다고, 다 성공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성공할 때까지 어떻게든 해보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지금껏 실패를 덮기 위해 계속 칠을 더했던 것이 지금의 나를 그냥 멋지게 포장하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 것임을 깨달았다. 일단은 실패를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패를 인정한 뒤에 천천히 가자, 이런 마음이 들었다. 언젠가는 그 실패 위에서 새로운 성공의 싹을 틔울 수도 있고, 아니면 그냥 실패로 마감할 수도 있겠지. 중요한 것은 기다리는 것이다.
---「9월, 기나긴 기다림 끝에 나팔꽃」중에서
하지만 여전히 마음의 부침은 생긴다. 나는 언제쯤 상칠을 항상 한 번에 끝낼 수 있을까? 나는 언제쯤 온전히 자개 디자인만으로 털뭉치 가족을 부양할 수 있을까? 계속하다보면 언젠가는 상칠과 광내기를 한 번에 완벽하게 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계속하다보면 내 작품을 주문해주는 사람이 많아질 테고, 그러다보면 내 작품 가격을 올릴 수 있는 날도 올 것이다. 그렇게 믿으며 천천히,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계속한다. 나전칠기 공예는 천천히 가는 법을 배우게 한다. 기다림의 연속이다. 지치지 않고 꺾이지 않고 싶다.
---「11월, 기다리던 첫눈이 온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