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은, 수지 타산이 맞는 모델을 ‘짜잔’ 개발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투자를 늘려 ‘규모의 경제’를 이뤄서 더 싸게 만들어야 한다. 결국, 이윤은 박해지고 투자금은 계속 불어난다. 워런 버핏이 비슷한 얘기를 여러 번 했는데, 항공업계도 다르지 않았다. 버핏은, “자본가 입장에서는 라이트 형제가 첫 비행할 때 총으로 쐈다면 돈을 많이 아꼈을 것”이라고 말했다. 비행기가 혁신인 건 맞지만, 이후 약 100년 가까이 항공산업에 투자해서 돈을 번 사람은 거의 없었다.
---「혁신의 저주」중에서
30대가 되면 인간은 매년 약 1% 가량 근육이 줄어든다고 한다. 평범한 성인 남자로 치면 가만히 있어도 매년 300~400g씩 준다는 의미다. 근육량 1kg 늘리기가 얼마나 힘든가 생각하면, 장년이 되어서도 소싯적 몸을 유지하는 건 대단한 일이다. 이런 일을 무려 20년 넘게 해내는 기적을 이룬 나라가 있다. 일본이다. 일본은 2000년 무렵부터 매년 노동가능인구가 약 1%씩 감소했다. 정점일 때 8700만 명이었던 노동가능인구는 그 사이에 1300만 명 넘게 줄었다. 국가를 움직일 근육이 15%나 감소한 것이다. 놀라운 건, 그 사이 일본 경제의 총생산은 매년 1%씩 증가했다는 사실이다. 우린 예순 살에도 노쇠한 팔로 벤치프레스를 미는 옆집 노인을 보며 비웃는다. 이제 곧 근감소가 시작될 30살 청년이!
---「상실의 시대 저편에」중에서
한동안 자본 시장에서 제기되었던 ‘금리 인상 = 빅테크 약세’ 논리가 흔들린다. 빅테크의 진짜 우위는 뛰어난 자본 조달 능력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세금을 더 걷으려면 의회에서 난장판이 벌어지고 대통령은 떨어지는 지지율에 벌벌 떤다. 반면 애플이나 구글은 구독료를 올려도 트위터에서 잠시 욕을 먹을 뿐이다. 뛰어난 현금 창출 능력을 바탕으로 빅테크는 매우 낮은 금리로 회사채를 발행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애플의 회사채가 어지간한 나라의 국채보다 못할 게 뭔가 싶다.
---「꼰대의 혜안」중에서
한국 유튜브 생태계에 넘치는 ‘능력자’는 모두 잠재적 슈퍼전파자다. 여기에 팬들이 남긴 센스 있는 댓글은 다시 콘텐츠가 돼 전파된다. 케이팝은 따로 자막을 만들어 올리지 않아도 팬들이 나서서 각국 언어로 된 자막을 단다. 팬은 일방향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아이돌에서 콘텐츠가 뻗어나올 뿐 아니라 거꾸로 재가공 콘텐츠가 아이돌의 매력을 더하는 전파가 일어난다. 그렇게 다양한 변이를 거치며 케이팝은 더욱 강해지고 있다. 케이팝의 핵심은 ‘기획’이 아닌 ‘변이’다.
---「케이팝은 어떻게 팬데믹이 되었나」중에서
연주가 절정을 향할 때, 극장 구석에 불이 난 걸 눈치 챈 지휘자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극장을 빼곡히 채운 수천 명의 관객은 음악에 취해 있는 상황이다. 당장 지휘봉을 던지고 모두 나가라고 외쳐야 할까. 그러면 극장은 불이 번지기도 전에 아수라장이 될 게 빤하다. 아마도 베테랑 지휘자라면 청중을 고조시킨 연주를 조금씩 잦아들게 한 뒤 차분한 목소리로 주변을 진정시키며 질서정연한 퇴장을 유도할 것이다. 시장도 다르지 않다. 일촉즉발의 위기에도 음악, 즉 시장의 흐름은 계속 이어져야 한다.
---「그래도 쇼는 계속돼야 한다」중에서
플랫폼들이 독점을 통해 도달한 희한한 지점이 ‘수익 최소화’다. 이윤이 목표인 기업이 수익을 줄이는 역설이다. 아마존은 규모에 비하면 이익이 턱없이 적다. 검색 시장을 독점하는 구글은 점차 콘텐츠 제작자에 주는 광고료 배분을 높인다. 배달의민족이 수수료 인상에 심각한 어려움을 토로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플랫폼 기업은 시장 지배력이 커질수록 수익화가 어려워지는 역설을 겪는다.
---「착한 독점, 라이언의 불가능한 미션」중에서
“세상에는 흰 영역과 검은 영역이 있는데, 그 사이에 꽤 넓은 회색지대가 있습니다. 큰돈은 이곳을 가야만 벌 수 있어요.” 여기서 ‘회색’은 풀이하기 나름이다. 삐딱하게 보면 불법과 합법 사이의 애매한 영역으로 가라. 다른 말로는 교도소 담장 위를 아슬아슬하게 걸으라는 거다. 긍정적으로 보면, 이미 실현된 현실과 오지 않은 미래 사이, 딱 반걸음 앞서 길을 가라는 얘기다. 여하튼 중요한 건 ‘틈’이다.
---「회색 길을 본 사람들」중에서
한 줌도 안 되는 광석은 우리가 그토록 올인하는 ‘그린 뉴딜’의 성패를 좌우한다. 태양광 발전에는 인듐과 갈륨, 풍력 터빈에는 네오디뮴이 필요하다. 전기차 배터리에는 코발트, 리튬, 니켈 등 20여 가지 희귀금속이 들어간다. 억만장자들이 우주로 간다고 요란을 떠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희귀금속은 지구에서는 희귀하지만 우주에는 넘쳐나기 때문이다. 소행성 하나만 붙잡아도 지구 매장량의 수백 배를 얻을 수 있다.
---「더 더럽고 더 위태로운 세상으로의 초대」중에서
방구석에서 컴퓨터로 온라인 게임을 하든, 헤드셋을 끼고 가상현실로 떠나든 우리는 여전히 모래로 쌓은 세상에서 살고 있다. 이런 정보를 쌓아둔 곳이 데이터센터다. 데이터센터를 가득 메운 서버와 그 안에 든 반도체는 결국 모래로 만들어졌다. 인류는 모래(콘크리트)로 지은 집에 살고, 모래로 지은 디지털을 누리는 존재다.
---「인류가 여전히 모래성을 쌓는 이유」중에서
기이한 사람이 하나면 ‘사건’이지만 여럿이면 ‘현상’이다. 이를테면 ‘트럼프’는 개인이 아니라 현상이고, 미국 역사의 매 순간마다 있어왔다. 트럼피즘의 조상을 찾아 무려 5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거기에 신교도가 있다. 개인의 해석권과 믿음을 존중하는 신교의 특징은 신념 체계도 바꿨다. ‘내가 무언가를 진리라 생각한다면 그 이유나 객관적 타당성 여부와 상관없이 그것은 진리이고, 그 어느 누구도 나에게 네 생각이 틀렸다고 말할 수 없다’는 미국적인 아이디어다.
---「트럼프의 족보를 찾아서」중에서
팩트는 진리도, 자연현상 같은 가치중립적 존재도 아니다. 팩트는 달아오른 철처럼 얼마든지 가공할 수 있다. 팩트와 데이터는 다르다. 팩트는 여러 데이터를 조합해서 도출한 결과물이다. 이 과정에서 ‘의도’가 끼어들 틈이 생긴다. 즉 팩트는 어떤 데이터를 보여주고, 또 숨길지 정하는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가공품인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해는 나의 힘」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