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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데 외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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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데 외로워

: 우울증과 동거하는 힘쎈 여자 현주씨

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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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4월 28일
쪽수, 무게, 크기 304쪽 | 324g | 128*188*30mm
ISBN13 9791192357126
ISBN10 1192357124

중고도서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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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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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우울씨가 내게 찾아왔다. “같이 우울해 줄게. 나는 너의 다정한 친구야.” 실연의 슬픔에 허우적대던 나는 우울씨에게 문을 활짝 열었다. 일하다가 뛰쳐나가 화장실에서 울고, 극장에서 병맛 코미디 영화를 보면서도 울었다. 울면서 잠이 들었고 울면서 잠이 깼다. 플라스틱 유선전화를 벽에 던져 깨뜨리고 밥도 안 먹었다. 몇 개월을 그랬는지 모르겠다. 몸이 점점 말라가고 있었다. 어느 날 출근을 하는데 청원경찰이 내게 한 마디 했다. “출입증 어딨어요!” 집에 두고 온 KBS 출입증이 떠올랐다. 사과는 못할망정 “집에 있어요!” 라고 맞받아쳤다. 우울씨가 말했다. “저 사람까지 널 가만두지 않는구나. 세상은 이 모양이야. 늘, 너에게.” 그 순간 깨달았다. 이거 뭔가 잘못 되어가고 있다. 그날 바로 택시를 잡아타고 회사에서 가장 가까운 정신과로 달려갔다. 그때가 나의 공식적인 첫 우울증 진단이었다.
---「우울씨와의 첫 만남」중에서

일상의 작은 일들이 조금씩 조금씩 생채기를 내다 사람들은 어느 순간 마음을 닫는다. 일단 마음이 닫히면 다시 열기가 쉽지 않다. 앙금이란 이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유리가루다. 피부를 스쳤던 유리실을 그냥 놔두면 그것은 언젠가 거대한 톱날이 된다. 우리의 심장을 도려낸다. 이 세상에 내 마음을 알아주는 이가 하나도 없어도 그러나 한 사람이 남아있다. 그것은 나다. 나를 사랑해 줄 수 있는 내가 이 세상에 있다.

나는 나의 유리가루를 봄바람에 털었다. 내가 진심을 소중히 가지고 있는데, 누가 나의 진심을 훔쳐갈 것인가. 진심은 무엇보다 회복탄력성이 강하다. 그래서 진심에 충실해야 한다. 충실하고자 한다. 나는 봄바람 덕에 건강한 마음으로 건강한 하루를 살겠다 마음먹었다. 삶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 유리가루가 내 심장에 박힐지라도 내 삶을 좋아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다. 나의 선택이다.
---「봄바람」중에서

아프기 전에는 불편한 관계는 정리하는 것이 상책이라 믿었다. 상처를 주는 사람은 만나지 않는 것이 옳다고 여겼다. 그런데 지금은 잘 모르겠다. 상대를 차단하는 것이 어쩌면 스스로를 차단하는 것이 아닌가. 더 인내하고 알아가고 포용하는 계단을 올라가지 않는 것이 아닌가. 상대가 아닌 스스로에게 기회를 빼앗는 것은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나는 인연에게는 무어라 말해줘야 할까.

시간이 지나고 나이가 들고 몸이 늙고 보니 인연이 끝나는 게 대단한 일이 아니게 되었다. 인연에도 유통기한이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 인연은 단지 유통기한이 다 되어 돌아갈 곳으로 돌아갔다. 모든 인연은 끝이 있고 저마다의 역할을 다 하면 그 인물은 내 무대에서 퇴장한다. 설사 헤어지지 않더라도 죽음으로도 인연은 갈라진다. 나와 너는 별개의 타자(他者)이고 나와 너의 마음의 질량은 같지 않다. 이제 그만 받아들이고 새로운 인연이 기다리는 곳으로 가면 된다.
---「모든 인연에는 유통기한이 있다」중에서

생각해보면 소아시절부터 우울씨는 나를 따라다녔다. 어머니는 지금 몹시 후회하시지만, 어린 시절 엄마에게 빗자루로 흠씬 얻어맞고 나면 어린 나는 극도의 우울과 절망에 빠졌다. 세상에 아무도 나를 도와줄 사람이 없다는 절망을 사실이라 믿었다. 부모도 나를 지켜주지 않는데 내가 무슨 가치가 있지. 내가 살아야하는 이유가 있나. 아주 어린 시절, 죽음을 처음 생각했던 나이는 일곱 살이었다. 나의 자존감은 가정에서 채워지지 못했기에 당연히 외부로부터 가져와야 했다.
---「죽고 싶었던 건 우울증에 걸리기 전」중에서

누군가 자살했다더라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어떻게 친구와 사랑하는 가족이 있는데 고통을 줄 수 있지 의아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우울씨가 나를 죽음의 문턱에 데려갔을 때 그들을 이해했다. 그들은 살기 위해 죽음을 택했다. 고통이 너무 커서 죽지 않으면 이 고통이 끝나지 않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자살을 선택하는 거였다. 살기 위해서. 제발 좀 살기 위해서.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죽는 거였다. 고통은 나눠질 수 없다. 전염만 시킬 뿐 나눠질 수는 없다. 물론 극단적인 발언이다. 하지만 나의 경우 고통의 한가운데 있을 때만큼은 어느 누구의 위로도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친구가 자살했는데 즐거웠다」중에서

우울증을 앓고 있음을 최근에야 말하고 다니기 시작했다. 아주 가까운 사람부터 털어놓았다. 카톡에 답이 느린 이유도 카톡방을 나온 이유도 우울증이었고 만남을 회피하는 행동도 우울증이라 고백했다. 내 커밍아웃에 가족들은 별말 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친척 모임에 오지 않아도 된다고 배려해주셨고 어머니는 말없이 아니 김치로 반찬으로 과일로 고기로 응원해주셨다. 친구들도 별 반응은 없었다. 오히려 자신도 우울증을 앓고 있다고 말해주었다. 혹은 두려워서 아직 병원엔 못 갔다며 병원 소개를 부탁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렇다고 상대의 고백을 안심이나 동질감으로 이용하지는 않았다. 그냥, 그들이 나를 전과 같이 대해줌에 감사했다.

우울증 환자임을 받아들이고 적극적인 치료를 시작하자 원래의 성격으로 차츰 돌아왔다. 지금은 우울씨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 마치 내가 피해자인양 누군가의 험담을 하고 있는 우울씨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슬슬 짜증이 난다. 우울씨는 나를 감정의 쓰레기통으로 삼고 있는데 그 꼴을 당하고 있는 내 모양새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쓸데없는 소리를 들으며 나를 훼손하고 싶지 않다.
---「나는 우울증 환자입니다」중에서

종종 우울감이 찾아올 때가 여전히 있다. 그럴 때는 우주를 떠올린다. 유튜브에서 우주 다큐를 찾아본다. 인간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거대한 우주를 상상한다. 우주의 크기를 생각하면 마음이 평안해진다. 우리는 별로 만들어졌고 별의 후손이다. 나는 빛나는 별이다. 창백한 푸른 별처럼 나라는 별은 먼지만큼 작아지고 오직 우주의 위대함만이 남는다. 그 순간 신만이 유일하게 내 안에 존재한다. 나는 가고 신만 남는다. 신은 감격으로 다가올 때 나를 왜소하게 하고 그 왜소함은 나를 소박하게 만든다. 그래서 우주가 좋고 경건이 좋고 감격과 겸손이 좋다. 별 거 아닌 묵상이 내 마음을 안정시킨다. 내 문제는 사라지고 위대함만 남는다. 위대함은 우울과 어울리지 않다. 나는 위대한 별의 후손이다.
---「행복은 이성으로 판단한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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