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이론 분야에서 혼란에 빠지지 않고 일정한 방향 감각을 유지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다양한 문화적 시대적 배경 속에서 생성된 여러 문학 이론들이 공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유럽과 북미의 문학 이론을 이해하자면 그것이 생성된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배경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필요한 까닭에 한국 학생들의 어려움은 더욱 클지도 모르겠다. 프랑스 구조주의나 독일 해석학의 발전 과정을 전체적으로 파악하는 것은 까다로운 과제가 될 수 있겠는데, 그 이유는, 프랑스 구조주의는─전부는 아니라 할지라도─프랑스 합리주의 철학 전통을 고려하지 않고는 이해하기 어렵고, 현대 독일 해석학(가다머, 야우스)의 적절한 이해 역시 칸트와 헤겔 철학, 그리고 슐라이어마허의 낭만주의 철학에 대한 인식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이 작은 책에서 중요한 문학 이론의 철학적 미학적 생성 배경을 재구성하는 작업을 시도하는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다. 그 과정에서 대부분의 주요 문학 이론들이 특정한 철학적 전통(칸트주의, 헤겔주의, 낭만주의, 니체주의 등으로 불려질 수 있는)에 연결되어 있음이 드러날 것이다. 철학적 미학적 대립과 논쟁의 배경을 고려하면 문학 이론의 추상성은 경감되고, 이론적인 개념의 적용 역시 좀더 구체성을 띠게 된다.
예컨대 마르크스, 엥겔스에서 루카치와 골드만에 이르기까지 많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예술 작품을 의미 있고 조화로운 전체로 보는 헤겔주의적 미학과 예술 이론을 전개시켰다는 사실에 주목하면, 마르크스주의자들과 러시아 형식주의자들간의 논쟁, 루카치-브레히트 논쟁 등을 새로운 관점에서 조명해볼 수 있을 것이다. 헤겔주의적 마르크스주의자들과는 반대로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은 칸트의 자율성 미학 또는 전위주의(미래파)를 출발점으로 하여 예술의 낯설게 하기, 단편화, 다의성과 같은 측면에 주목한다. 이런 점에서 마르크스주의자 브레히트는 루카치나 골드만과 같은 헤겔주의자보다는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에 더 가까운 입장을 취하고 있다. 롤랑 바르트가 루카치와 골드만의 헤겔주의 미학을 거부한 것은 그의 니체주의적 입장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그는 문예학을 다의적인 기표의 이론으로, “유쾌한 학문”으로 혁신하려고 한다. 데리다, 드 만, 밀러, 하트만의 해체주의 역시 니체의 철학과 낭만주의의 언어관 내지 문학관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짧은 문학 이론 입문은 우선 많은 노력을 들이지 않고 문학 이론 분야에 관한 대략적인 정보를 얻으려는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문학 이론을 좀더 본격적으로 공부하려는 사람은 이 책에 이어서 허창운 교수의 번역으로 수년 전에 출간된 『문예미학』(페터 V. 지마 지음, 을유문화사, 1993)을 읽어보기를 권한다. 『문예미학』에서는 문학 이론, 철학과 미학의 관계, 문예학 논쟁의 정치적 배경 등이 상세하게 논의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세심하게 번역해준 김태환 박사에게 깊은 감사의 뜻을, 한국어로, 전하고 싶다. 감사합니다Kamzahamnida! <2000년 1월, 클라겐푸르트에서, 페터 V. 지마>
--- 저자 서문